불량주부 성장기
첫째가 대학생이 되고 둘째가 중3이 되니 이제야 나도 다른 일을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업주부 경력 24년 차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나는 뭘 잘하나?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뭘까?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딸아이가 알바를 구한다고 보던 알바몬을 들어가 봤다. 각종 프랜차이즈 커피숍에서 사람을 구했다.
"오! 나도 커피숍에서 알바를 해볼까" 하며 커피를 뽑고 고객을 응대하는 모습을 상상해 봤다. 내 나이는 잊은 채 말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프랜차이즈 커피숍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젊은 아이들이었다. '참네 주책맞게 젊은 아이들 일자리를 탐했네.' 했더랬다.
매일 아침 길을 나선다.
첫째 날은 눈까지 와서 긴장하고 일찍 집을 나섰다. 이제 나도 매일 9시까지 도착해야 하는 곳이 생겼다. 출근이라고 해야 하나? 뭐라 해야 하나?
일자리를 구하려고 마음을 먹고 나니 이런 저런 연결고리 우연적으로 일어났다. 마치 내가 뭔가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은 마음을 알기라도 한 듯.
시에서 하는 직업교육훈련에 서류를 내보라는 제안을 받았고, 서류전형 합격에 이어 3.5대 1의 쟁쟁한 면접에서 합격을 했다. 앞으로 55일간 교육을 받으러 다닌다. 매일 아침 9시까지.
전업주부로써 가족들을 내보내기만 했지 내가 이렇게 매일 아침마다 나선적은 없다. 항상 식구들이 어서 나가기만을 바라고 식구들이 모두 나가고 나면 '만세'를 부르며 나만의 자유 시간을 누렸었다. 이제는 그 자유시간이 없어졌다.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으면 한숨 더자고, 만나자는 사람들 있으면 아이들 올 때까지 수다 떨며 맛있는 것 먹으러 다녔는데 이런저런 과거의 생활과 단박에 이별을 했다.
내가 막상 아침마다 나가보니 매일 나가는 우리 가족들이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남편이 몇십 년간 꾸준히 회사를 다닌 것도 대단하고, 큰아이와 작은 아이도 매일 학교를 다니고 무사히 졸업을 했다는 것이 기특하기만 했다. 엄마인 나만 세상 물정 모르고 온실 속 화초로 살았다.
이런 마음이 들다 보니 가족들에게 '매일 아침 나가는 여러분 멋있다'라고 말해 주게 되었다. 가족들에게 짜증을 내는 일도 줄었다. 오히려 지금까지 잘 다닌 가족들에게 감사하고, 저녁에 한집에 모이는 것에 감사하게 되었다.
이렇게 내가 막상 닥쳐보니 그동안 얼마나 게으르게 살았나 하고 반성하게 되고, 힘들다고 가족들에게 하소연했던 일들도 부끄럽다.
여기까지는 훈훈한 이야기다. 수업이야기를 해보겠다.
막상 신나는 마음으로 수업을 갔는데 웬걸 너무 어렵다. AI에 관련된 수업이다 보니 컴퓨터로 하는 작업이 많다. 파이썬, VS CODE 등 프로그램을 쓰고, 새로운 AI 툴은 다 다뤄보는 듯하다. 챗GPT 안다고 잘난 척을 했는데 어느새 이렇게 많은 AI들이 등장을 했는지 놀랍다.
수업을 받는 사람들의 나이대는 다양하다. 확실히 어린 나이일수록 잘 따라간다. 나는 스무 명의 참가자 중 세 번째 왕언니다. 마음은 20대인데 아직 철도 덜 들었는데 왕언니 대열에 끼다니 서글프다.
나름 블로그도 하고, 브런치에 글도 남기고, 자기 계발 모임에서 줌 화상회의도 하고 직접 진행도 해봤다고 이번 직업교육훈련을 만만하게 생각했었다. 이틀째에는 포기를 할까도 생각했었다. 잘 따라가는 젊은 친구들에게 자꾸 질문을 하게 되니 그들의 수업에도 내가 방해가 되는 것 같아 미안했다.
정말 세월이 신기하다. 내가 젊었을 적 어떤 모임에 가면 내 또래랑만 친하게 지내고, 지금의 내 나이 언니들이랑은 말도 잘 안 했는데 내가 그런 존재가 되었다. 좀 서글픈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일주일을 맞이한 오늘은 완주는 해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이제는 아침마다 나가는 일도 적응이 된듯 하고, 수업도 두 세번 묻던 일도 많이 줄어들었다. 그러니 나의 목표는 완주다. 55일 완주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