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주부 성장기
비 오는 날 아침 9시까지 어디론가 가야 하는 일상을 살아본 게 언제 적이었을까? 22년 전일까? 23년 전일까?
오늘 아침 비가 왔다. 매일 나가는 가족들의 우산만 챙겨주며 전업주부로 살아왔다. 하지만 오늘 아침은 아이들보다 먼저 우산을 들고 길을 나섰다. 기분이 묘했다.
얼마 전에 읽은 책 《즐거운 어른》이 생각났다.
'비바람 부는 날 식구들은
다 학교에 가고
나는 집에 있어도 되는 게
아주 맘에 들었다.
-즐거운 어른 이옥선-'
나 또한 그랬다. 비가 오는 날이면 가족들을 다 내보내고 한숨 더 잔다던가 커피 한 잔과 조용한 영화를 한편 보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런 내가 우산을 들고 만원 버스를 기다린다. 그런 내 모습이 낯설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하지만 가야 할 곳이 있다는 것에 나쁘지만은 않다.
시에서 하는 55일간의 직업교육 프로젝트에 참여 중이다. 눈 오는 날을 시작으로 비 오는 오늘까지 25일간의 불량 주부의 매일 아침 기록이다. 아직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 지각도 조퇴도 없다. 불량주부지만 은근 모범생이다. (나에게 이런 면이 ~ ^^)
마침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시즌에 시작을 해서 매일 아침 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즐겁게 길을 나서고 있다.
수업 중에 창밖으로 들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우리 아이들도 이 빗소리를 들으며 수업을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23년간 나에게 비 오는 날은 휴식이었고, 급하지 않으면 밖에 나가지 않아도 되는 날이었다. 아침에 길을 나서 보니 출근하는 사람들 학교 가는 학생들 날이 좋으나 궂으나 모두 자기 갈 길로 매일같이 가는 사람들이 모두 대단해 보였다.
비가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다. 마치 비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