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하며 성장하기
-오십이 된 너에게 박혜란-
오월은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공존하는 달이다. 우리처럼 자식도 챙겨야 하고 부모님도 챙겨하는 세대는 참으로 바쁘다. 마음도 바쁘고 지갑도 바쁜 달이다.
하지만 올해 우리 집의 풍경은 달랐다. 나는 남편과 아이들을 두고 친정으로 홀가분하게 떠났다. 이제 둘째의 나이가 중3이다. 할머니집도 안 따라다니려고 하는 나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양쪽 할머니 할아버지를 찾아봬야 한다며 데리고 다녔다. 어릴 적 아이들은 꽃을 사들고 아장아장 잘도 따라나서더니 언제부턴가 조금씩 싫은 내색을 하는 모습을 보는 게 나도 점점 버거워졌다.
'핵 개인의 사회라던데 그래 우리도 각자 좋은 거 하자' 싶었다. 바로 얼마 전 중간고사를 치른 두 딸에게 자유를 주겠다고 했고, 남편에게도 불편한 자리 가서 억지로 기분 맞추는 거 하지 않아도 되니 나 혼자 친정을 다녀오겠다고 했다. 아이들은 집에서 드라마 정주행을 허락하는 걸로 어린이날 선물을 대신한다고 하니 좋아했다.
친정으로 가는 길 뭔가 허전하기도 했지만 늘 아이들과 남편 기분 살피며 가던 길이 아닌 홀가분하고 가벼운 마음이었다. '앗 이거 무슨 기분이지? 기분 좋은데?' 묘한 기분을 안고 친정으로 갔다. 연휴 동안 나를 찾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훌훌 친정을 갔다.
이번에 그동안 엄마가 가고 싶어 하던 근교나들이를 함께 다녀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멋지고 좋은 곳은 못 모시고 가더라도 근교로 나들이라도 시켜드리고 싶은 마음에 길을 나섰다.
어버이날이라고 큰 맘먹고 엄마 아빠와 함께 했지만 엄마 아빠 앞에서 나는 어린이였다. 엄마 아빠는 뭐든 내가 먼저다. 음식도 내가 먹고 싶은 걸 먹으라 하시고, 내가 힘들까 봐 쉬라고 하시고, 바람이 조금이라도 불면 추울까 걱정이시고, 마스크를 하라고 가방에서 꺼내주시고, 지하철에 자리가 나면 나부터 앉으라고 하시고, 가방도 들어주시고..... 정말 끝이 없다.
나는 괜찮다고 해도 뭐든 내가 우선이다. 손주들을 안 데리고 오니 더더욱 내가 애기가 된다.
"엄마 아빠 나 50이어요"라고 해도 엄마 아빠는 웃으신다. 나이가 어떻든 부모는 자식이 늘 아기 같다고 하시면서... 그 와중에 나는 '우리 애들이 밥은 먹었나? 잘 있나?'를 걱정하고 있었다.
이처럼 부모는 늘 자식 걱정이다. 우리 부모님은 나를 걱정하고 나는 내 자식들을 걱정하는 마음이 공존한 시간이었다.
어버이날이라고 부모님 뵈러 친정에 갔지만 나는 차려주는 밥 먹고, 깎아주는 과일을 받아먹으며 50의 어린이날을 보내고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