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주부의 홀로서기
5월 초 연휴가 길기도 길다. 주부는 가족들이 있는 연휴나 주말이 부담스럽다. 어디 여행을 떠나는 계획이 없는 연휴나 주말은 더더욱 싫다. 주부가 다 그런 건지 나만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싫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가족들이 반강제적으로 집에만 머무르면서 생긴 증상인 듯하다. 특히나 남편과 종일 붙어 있어야 하는 그 시간이 너무도 갑갑했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아이들이 대학생과 중3이 되어서 인지 슬슬 나는 혼자 있고 싶어진다. 가족들에게서 엄마의 자리, 부인의 자리를 벗어나고 싶어졌다.
연휴에 나는 가족들에게 말했다. 며칠 친정으로 다녀오겠다며 엄마 없이 마누라 없이도 밥 굶지 말고 잘 지내고들 있으라고... 아들은 오히려 좋아했고, 남편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처가에 같이 가자고 하지 않았으니 오히려 땡큐 아닌가? 어버이날 효도까지 내가 혼자 다하고 오겠다며 길을 나섰다.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아이들이 시험이 끝나고 쉬는 주말이라 두고 가겠다고 사위도 쉬라하고 나 혼자 살랑살랑 가겠다고 했다. 친정 부모님도 다 같이 와도 반갑고 딸만 와도 좋다고 하신다.
친정집으로 가려고 하니 엄마가 친정집 근처 이쁜 커피숍을 알고 계신다고 그곳으로 바로 오라고 하신다.
카페는 웅장하고 초록초록 하고 정말 이뻤다. 분위기에 취해 엄마 아빠와 빵과 커피를 마시며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눴다. 아빠의 살아온 인생 이야기를 처음으로 자세히 들었다. 엄마랑은 종종 수다를 떠니 엄마의 인생이야기는 거의 다 들었다고 본다. 하지만 아빠의 인생이야기는 처음 들어본다. 그리고 아빠가 이렇게 오랜 시간 이야기를 하시는 모습도 낯설다.
체면을 차려야 하는 사위와 손주들이 없어서 그런가 아빠의 어린 시절부터 아빠 형제들 이야기 나에겐 친할머니 친할아버지 이야기까지 길고 길게 이야기를 하신다.
나도 아이들 없이 와서 그런지 아빠 이야기를 집중해서 듣게 되었다. 아빠 딸로 살던 50 평생 이렇게 아빠와 진지하게 긴 대화를 나눈 것은 처음이다.
올망졸망 4남매를 낳고 키우신 엄마 정말 수고 많으셨다. 나는 딸 둘을 키우면서도 참 힘들다 하는데 풍족하지 못한 형편에 아이들 네 명을 키우시느라 엄마도 아빠도 고생 많으셨겠다 싶다. 부모 마음은 부모가 되어서야 조금이나마 이해를 할 수 있다는 말이 맞다.
대화를 나누고 우리는 카페를 산책하고 또 엄마가 알려주신 맛집으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 70대이신 엄마가 나보다 더 핫 플레이스도 알고 계신다. 또 두 분이 지하철 타고 이리저리 잘 다니시는 게 그냥 마냥 감사하다.
나는 내 자식 품에 안고 있느라 엄마 아빠를 내 시선에서 멀리 두었었나 보다. 이렇게 아이들 두고 오롯이 나 혼자 엄마 아빠 앞에 있으니 부모님 모습이 더 잘 보이고 부모님 이야기가 더 잘 들린다. 엄마 아빠 건강하실 때 함께 하는 시간을 종종 가져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엄마는 다음에는 어디 어디로 또 가보자고 벌써 다 계획이 있으시다. 시간이 되는대로 부모님과 함께 하는 찐한 시간을 많이 가져야겠다.
70대 중반의 부모님이 항상 건강하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들이를 마무리하고, 친정집으로 다 함께 귀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