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를 보내며
나이는 한 살 어리지만 많이 아프던 친구 같은 동생이 하늘로 떠났다. 긴 투병생활을 함께 했다. 중간엔 거의 건강을 찾기도 해서 머리도 기르고 정상인들 못지않은 생활도 했는데 급격히 나빠지더니 결국엔 이렇게 떠났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본 친구의 모습은 충격적일 만큼 말라 있었고 얼굴 또한 낯설었다. 건강했던 아니 조금 덜 아팠을 때의 모습은 찾아볼 수 가 없었다.
이름 가운데 ‘은’자가 들어가는 또 한 명의 친구와 나 그리고 아픈친구 이렇게 셋은 자매처럼 삼총사로 지냈다.
이 친구가 투병생활을 하면서 더 친해졌다.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을 했을 때 생일을 맞이한 그 친구를 위해 선물로 추억앨범을 만들어 갔고 나름 조촐하게 파티를 해주려고 했지만 고통으로 눈을 뜨지 못해 결국 앨범을 보여주지 못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이렇게 부고 소식을 들었다.
부고 소식이 온날 아침 내 꿈에 아픈 친구가 나왔다. 우리는 즐겁게 수다를 떨었고 헤어질때 그 친구는 가는데 내 신발이 없어져서 신발을 찾다가 꿈을 깼다. 기분이 이상했다. 이 꿈은 무슨 의미지? 마음이 심란했다. 카톡이 울릴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무 소식이 없기를 바라면서도 혹시나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두려웠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잠자리에 들려고 하는 순간 카톡을 보고 너무 놀랐다.
이 친구의 부고 소식이 와 있었다.
나와 또 한 명이 친구는 아침이 되자마자 장례식장을 찾았고, 아직 준비가 덜된 상태의 장례식장에서 친구의 사진을 보고 오열을 했다. 병문안을 갈 때마다 만났던 남편분도 함께 눈물을 흘리며 우리를 맞이했다.
끝내 보여주지 못한 우리의 추억앨범은 그 친구의 사진 앞에 놓아주었다.
우리는 떠난 친구의 입관식도 지켜보며 친구를 떠나보냈다. 나는 장례의 경험이 없던 터라 두렵기도 했다. 한편으론 친구의 마지막 가는 모습도 보고 싶은 양가감정이 있었지만 입관식이 시작된다는 말에 몸이 자동으로 반응했다. 입관식에 참여했다.
입관식이 끝나고 참여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발인이다. 오늘까지 친구를 잘 보내주려고 한다. 이따 만나자 친구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