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보내는 반성문 1
-오십이 된 너에게 박혜란-
내가 아이들을 대하는 가장 기본적인 자세는
'너희들이 나한테 손님으로 와 줘서 너무 고맙다'라는 것이다.
이 지구상에 사는 수많은 부모들 가운데 바로 나에게, 이처럼 못나고, 변덕이 죽 끓듯 하고, 욕심 많고, 심술 많고, 그러면서 잘난 척하고 게으른 엄마한테 와 주어서 너무 고맙다.
나는 아이들이 나름의 완성된 어떤 미래를 자기 안에 갖고 태어난다고 보고, 아이들이 크는 과정은 그것이 바깥으로 어떻게 드러나는가 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즉 아이는 키워지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크는 존재라고 굳게 믿는다.
박혜란 님이 말처럼 아이는 스스로 크는 존재인 게 맞다. 이걸 진즉 알았으면 나는 우리 큰아이를 힘들게 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위의 글처럼 나는 못나고, 변덕이 죽 끓고, 욕심 많고, 심술 많고, 그러면서 잘난 척하고 게으른 엄마다. 그런 엄마에게 찾아와 준 우리 아이들에게 고마워할 줄 모르고 아이를 잡고 이리저리 휘둘렀다. 특히 큰아이에게 그렇게 했다.
우리 큰아이는 22살이 되었다. 지금 나는 큰아이와 눈도 못 마주친다. 말도 제대로 못 건다. 눈치를 본다. 아이의 요청으로 이름도 못 부른다.
너무 슬픈 현실이고 가슴 아프지만 다 내가 지은 업이다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중이다. 하지만 가슴은 미어진다. 하루 열두 번 눈물이 고인다.
아이가 성인이 되면 독립을 시켜야 한다지만 이렇게 독립시켜 헤어지기는 싫다. 하지만 지금은 나도 어찔할 바를 모르겠다. 내가 뭔가를 해보려다가는 우리의 관계가 더 악화될 까봐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
이렇게 브런치에 나마 나의 마음을 털어놓으며 아이에게 지난날을 사과하고 싶다. 누구에게도 말로는 할 수가 없다. 브런치는 처음이라 읽을 사람도 없을 것 같고, 나를 아는 사람도 없는 거 같아 맘 편히 털어놔 보기로 한다.
먼 훗날 아이의 마음이 풀어지면 보여 줄 날이 올까 싶지만 그래도 적어놓지 않으면 다 날아갈 거 같다.
첫 아이를 낳고 나는 이 아이를 최고로 행복하고 풍족하게 키우리라 마음을 먹었었던 같다. ( 엄마가 되면 그랬겠지만) 사실 뭔가 결심한 거 같지는 않은데 은연중에 그랬던 거 같다.
핫하다는 육아용품은 다 사주려고 했고, 좋다는 교육교재는 다 사주려고 했다. 백일 갓 지난 아이에게 그 당시 유행했던 몬테소리 교재를 사고 비싼 영어 교재도 사고 등등 지금 생각하니 웃기지만 그때는 미친 듯이 샀다.
그 모든 걸 사면 마치 아이가 저절로 천재가 될 거라는 생각을 한 거 같다.
아이를 둘러메고 문화센터를 다녔고 동네 문화센터는 맘에 안든다며 목동으로 유명하고 비싼 원에 데리고 다녔다. 나 말고도 이렇게 키운 엄마들이 있겠지만 나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비싸면 무조건 좋은걸 꺼란 생각으로 아이를 데리고 다닌 게 한심스럽다.
그래도 어린 우리 딸은 잘 따라갔고 선생님들에게 칭찬도 받으니 나는 더더 힘을 내서 이 똑똑한 아이를 내가 잘 키워야한다고 두 주먹 불끈 쥐었다.
아이를 키워보니 어릴 적 모든 아이들은 천재고 영재였던 것을 내 아이만 잘 난 줄 알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이리저리 데리고 다녔다.
비싼 교재를 사면 뭐 해? 활용을 해줘야지
비싼 원에만 데리고 다니면 뭐 해. 나는 그곳에서 만난 엄마들과 수다를 더 좋아했는데...
비싼 옷만 입히면 뭐 해? 애가 이 옷이 싫고 불편하다고 하는데도 남들에게 보이기 위해 입힌 것을...
모든 것이 후회스럽다. 딸아 미안하다.
그래도 엄마는 이때는 이렇게 하는 것이 잘하는 것인 줄 알았다.
너는 영특하게도 수업에 잘 따라와 주었고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발표도 잘했단다.
그리고 너는 엄마 아빠를 안 닮아 어찌 그렇게 이쁘게 생겼는지 주변에서도 이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단다. 그래서 엄마는 똑소리 나고 이쁜 너를 데리고 다니며 우쭐했단다.
당연히 기억나겠지만 주변에서 제안을 받고 한솔표지모델에 합격하여 촬영까지 했으니 엄마는 더더더 기세 등등 해졌었단다. 네가 다니는 브레인 스쿨에 너의 사진이 있는 주간지가 널려있고 길에서 한솔 홍보팀에서 너의 사진을 나에게 줄 때 엄마는 이 아이가 너라며 너를 보여주며 또 기분이 좋았지.
어릴 적부터 두각을 나타내는 너를 데리고 다니며 엄마는 엄마가 세상의 주인공인줄 알고 살았단다. 그게 너의 불행의 씨앗인 것을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