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보내는 반성문 2
아이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엄마들이
정작 본인의 행복에 대해서는 무심한 경우가 꽤 많다.
아니,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나 아이의 행복과 자신의 행복을
동일시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자식과 자신을 구속한다.
엄마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아이는 반드시 행복해져야 한다.
혹시라도 내가 행복하게 살지 못하면 엄마까지 행복해지지 못하니까.
아이는 아주 어릴 적부터 엄마의 행복까지 책임져야 하는 짐이
너무 무겁게 느껴지진 않을까.
-오십이 된 너에게 박혜란-
큰 아이를 키우고 여섯 살 터울의 동생을 키워보니 내가 그 어린것을 왜 그리 혼내며 키웠을까? 싶어 마음이 아플 때가 있었다.
둘째는 초등 입학한 것만으로도 기특하고, 등하교만 하고 오는 것도 신기했는데, 큰 아이는 공부도 잘해야 하고, 학원도 잘 가야 하고, 발표도 잘해야 하고, 영어도 수학도 체육도 다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둘째 초등학교 때 가만히 큰아이 어릴 적을 생각하니 우리 큰 아이도 이렇게 작디작은 아이였는데, 엄마의 기대 어린 눈초리가 얼마나 부담스러웠을까? 하는 마음이 들어 가슴이 시렸다.
나는 아이의 행복과 나의 행복을 동일시한 못난 엄마였다.
윤에게 ~
스물한 살이 된 나의 큰 딸 윤.
너의 이름을 부르지 말라고 나에게 부탁을 했기에 '윤에게'라고 쓴다. 엄마가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게 얼마나 싫었으면 이런 부탁을 할까? 서운해서 눈물도 낫지만 이해도 간다.
어릴 적 엄마는
"ㅇㅇ 아! 공부했어?"
"ㅇㅇ아! 숙제했어?"
"ㅇㅇ아! 준비됐어?"
등등 늘 너를 재촉할 때 너의 이름을 다급하게 불러댔던 것 같아. 그러니 너는 엄마가 네 이름을 부르면 심장이 두근두근거린다고 하는 말이 이해가 된다.
항상 '내가 뭘 잘못했나?' 하는 마음으로 마음 졸이며 살았겠지. 그 어린것이... ㅠ
오늘의 반성문은 네가 초등 때 개학을 앞두고 방학숙제 점검을 하던 날에 대한 반성이야.
그때 엄마는 방학숙제를 보란 듯이 해가야 한다는 욕심이 있었다. 하지만 내가 대신해 줄 수는 없으니 너의 손을 빌어서 내 머릿속에서 구상한 작품을 만들려고 했어. 하지만 맘처럼 되지 않았지.
당연한 결과야 구상은 엄마인 내가 하고 너는 뭣도 모른 체 내가 지시하는 데로 작업을 했으니 말이다.
그러면서 왜 내 말을 못 알아듣느냐고 소리 지르고 왜 못 그리냐고 혼내고, 정말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던 거 같다. 그놈의 방학숙제 어설프게 해 가면 어때서 왜 그렇게 목숨 걸고 개학전날 너를 잡았는지.
그때는 그렇게 해야 하는 줄 알았던 나도 너무 못났었고, 욕심 많은 엄마였다고 생각한다. 밤늦게 너를 재우고 엄마는 미안한 마음보다 내일 학교 가서 방학 숙제를 펼쳤을 때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우와" 하고 놀라기를 기대했다.
항상 너는 모든 일등을 했으면 좋겠고, 눈에 띄었으면 좋겠고, 모든 이에게 사랑받았으면 좋겠고 했던 엄마의 이기적인 생각과 욕심이 아주 하늘을 찔렀어.
너에 대한 환상은 스무 살이 될 때까지 벗겨지지 않았어. 엄마가 너로 인해 행복을 얻는다는 걸 너는 이미 알고 있었나 봐.
그래서 너는 아주 어릴 적부터 엄마의 행복까지 책임져 주며 엄마의 환상이 벗겨지지 않도록 노력을 했을 테고, 어린것이 얼마나 부담스러웠을까? ㅠ
미안하다. 딸아 이 엄마가 지금이라도 이렇게 반성을 하게 되어 다행이다. 죽을 때까지 너에게 사과 한마디 안 하고 갈 뻔 했다. 엄마는 너에게 사과할 게 너무나 많다. 앞으로도 하나하나 반성하며 사과편지 남길게.
앞으로의 너의 인생은 너 하나만 바라보며 자유롭길 바란다. 못난 엄마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