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

이제야 그립고 죄송한 아버지께

by 대나무 숲

내가 38살 되던 해, 5월에 아버지는 75세로 돌아가셨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아버지께 해드린 걸 아무리 떠올리려 해도

아무것도 없다 (왜 눈물은 자꾸 나는지)

심지어 엄마, 아버지는 생신이 같은 날이 셔서 꼴랑 드리는 용돈도 엄마에게로

드렸다. 우리 집에 오셔서 가실 때라도 택시비 한 번 드린 적 없으니...

참 철딱서니 없는 막내딸이다. 작은 아이 봐 달라고 하시면 성남에서 첫 차로 오셔서

데려가셨다. 용현동 버스 터미널까지 가는 택시비라도 드렸으면 이렇게 맘이

아프지 않을 텐데, 식사는커녕 달랑 커피 한 잔 드리고 가셔도 된다고 했으니....

유구무언이다

아버지의 마음을 많이 아프게 해 드리면서 한 결혼이었다

8월의 커피숍에서 우리 부모님과 시부모 3:3으로 만났다

요즘으로 치면 일종의 상견례였다

엄마는 그 더위에도 한복에, 버선까지 신으셨고 시어머니는 민소매 원피스 차림이었다

어색하고, 어려운 형식적인 시간이 한 시간가량 흐르고 ,

10월 결혼식에서 뵙겠다고 인사를 하고 일어서는데

남편이 커피값을 계산하려고 제일 먼저 일어서는 순간,

시어머니가 남편을 붙잡았다

뜬금없이 시동생의 비즈니스 상대인 아무개 사장 안부를 물었다

남편이 본인은 잘 모른다고 하자, 이런저런 말로 남편을 붙잡았다

아버지가 아무 말 안 하시고 카운터로 가서 커피 6잔 값을 계산하셨다

그 뒤를 말리는 시늉도 안 하는 시아버지가 따르고....

나중에 엄마에게 들었다

시장에서 장사로 뼈가 굳어도 그렇게 계산이 빠르게 돌기 힘들겠다며

사부인 성품이 어째하시며 걱정하셨단다

그런 염려가 기우가 아님은 한복감 바꿔 오라는 듣도 보도 못한 무례함이 있었으니

이 사태로 아버지가 처음으로 눈에 눈물을 보이셨다

ㅇㅇ아 미안하다 아버지가 미안하구나

생전 처음 보고 듣는 아버지의 약한 모습이었다

아버지는 주위 사람들에게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라는 소리를 들으시던 분이셨다

집에서 큰소리나 , 거친 욕설 한 번 내신적이 없으셨다

자라면서 계집애 소리 한 번 안 듣고 이불 밟고 다니다 엄마한테 야단맞을까

딸내미 이불을 개어 벽장에 넣어 주시던 분이셨다

요즘 아빠들처럼 다정한 말은 들은 적 없었어도 덮고 있으면 묵직하게 따뜻해지는 솜이불 같으셨다

평생을 제조업을 하시면서 젊어서는 나름 부를 이루기도 하셨지만 나이가 들어가시면서는

투자하신 게 별 성과는 나지 않았고, 친척 보증이라는 덫에도 걸리셨다

아버지 뻘 되는 나의 사촌 오빠, 즉 아버지의 열몇 살 차이 나는 조카는 아버지께 어음을 바꾸고

일주일 후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나중에서야 부도난 어음인 걸 알았고, 아버지의 형님, 사촌오빠의 아버지이신 큰아버지께 얼마라도

변상을 해주십사 하는 엄마의 간절한 당부를 `주고받는 손을 본 적 없으니 난 모른다'라고 하셨단다

그 당시 큰아버지는 세운상가아파트에 사셨다. 지금의 타워 팰리스쯤????

우리는 초2, 중, 고, 4남매가 쪼르르 학교엘 다녔다

그때부터 우리 집의 경제는 예전처럼 쉽게 나아지질 않았다

늦게 자식을 둔 우리 부모님의 고생이 어지간했을 터

나는 그걸 모르고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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