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야 조용필의 팬이 되었다

잊혀진 사랑

by 대나무 숲

밴드의 연주 소리가 귀에서 떠나질 않는다

다 씻고 자려고 눕기 전 tv를 틀어 유튜브를 보면 조용필의 공연이 노래 제목별로 올라와 있다

2~30분쯤 보다가 잠자리에 드는 게 요즘 루틴이다.

가지 말라고~, 가지 말라고 ~

거의 발악에 가까운 떼창이 터져 나오고 있다

응원봉을 휘두르며 눈을 감고 마치 접신이라도 된 듯 열창을 하며 따라 부르고 있다

중년의 아저씨, 아줌마들께서

잊혀진 사랑의 후렴 부분에서는 유난히 떼창의 소리가 컸다.

가지 말라고~~~~~~~~~가지 말라고, 잊을 수는 없다 했는데

고백도 못해보고 보낸 첫사랑

말했다 요샛말로 까인 첫사랑

사랑하다 헤어 진 첫사랑

각자의 사연만큼 아쉬움에 목이 터져라 부르는 잊혀진 사랑

응원봉을 흔드는 머리 위로 봄날의 꽃잎 같은 추억이 떠다니고 있었다


대학을 안 가도 청춘은 청춘

그 당시 교회에서는 12월에 고등부를 졸업하니 1월부턴 청년부다

예배가 끝나고 나면 교회 오빠들이 교회 근처 다방에서 커피를 사 줬다 ㅎㅎㅎ

궁다방, 녹지 다방

머리를 올리고 한복 입은 마담아줌마가 어서 오세요~~~ㅇ 하며 반기는 신기했던 풍경

노래는 어느 다방을 가던 다 다른 조용필의 노래였다

제목을 외우거나, 가사를 외우려 하지 않아도 하도 많이 들어서 저절로 외워지던 노래들이다

마치 새 학기가 되면 받아 들던 국어 교과서 같은 노래며, 가수였다

국어 교과서를 애지중지하며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교과목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기에

공부해야 하는 , 그런 상황과 같았다

음악이 귀했던 시절 아니 들을 도구도 라디오와 lp판이 전부였던 그 시절에는

버스 정류장 앞 전파사에서 내놓은 스피커에선 쿵작쿵작 노래가 흘러나오고

좋아하는 노래와 버스가 같이 오면 노래를 듣고자 버스를 보내던 그 시절이 있었다

19살 소녀에서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어도 TV에서는 여전히 조용필의 시대였다

조용필을 아쉬워할 일이 없는 조용필의 천하무적 시대였다

오랜만에 방송을 통해 보여 준 이번 공연에서 그의 노력은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노력이었다

당연히 얻어진 결과라 여겼었는데 하루도 쉬지 않는 그의 노력이 있었음을 느꼈기에

지금의 그가 있는 것이다


나의 아이돌, 우리들의 우상

FOR EVER YONG PIL 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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