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이 이븐 하게 익지 않았어요"

한국인은 밥에 진심이다

by Yunna

갱년기가 온 우리 엄마는 자신도 모르게 분노가 차오른다고 한다.

다혈질이 심해진다고 한다.

난 한국인 모두가 성별에 상관없이 평생 갱년기를 앓는다고 생각한다.

때론 조용하게 넘어가기도 하고,

때론 미친 듯이 온 나의 마음을 집어삼키기도 하는 것 같다.

호르몬은 인간을 참 부끄럽게 만든다.


병원에 있다 보면 호르몬과 싸우는 우리 엄마 나이대 환자분들을 볼 수 있다.

죽을병까진 아니지만, 자신의 처지가 한스럽게 느껴진다고 한다.


'내가 왜 아파서' '내가 왜 다쳐서 수술까지...' '잠도 안 오고 미치겠네'


매일 얼굴을 뵙지만, 웃는 얼굴을 보기 힘들다.

주사도 맞기 싫고 집에 가고 싶다고 하신다.

어린애처럼 칭얼대기도 하신다.

마음은 그게 아닌데 괜히 심술이 난다 하신다.


방금까지 간식 드실 생각에 신나던 표정이

몇 분 되지 않아 흥미를 잃은 표정으로 바뀌기도 한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내가 아니듯,

방금의 내가 지금의 나는 아닌 것이다.


그러다,

일이 터졌다.

환자의 밥 신청을 놓쳤다.


퇴원 예정이 떠 있어 식사를 모두 취소했는데 퇴원이 취소된 것이다.

바로 밥을 시켜야 했으나, 급한 일을 처리하느라 까먹고 말았다.

밥차 냄새가 났고, 식후 약을 드리기 위해 병동을 향하던 중 나는 샤우팅을 들었다.

내 밥 어디 있냐는 사자후였다.


바로 죄송하다 사과드렸다.

병원에서는 밥이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중요하다.

결국 밥을 맛있게 잘 먹어야 퇴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중대하고 예민한 부분을 놓쳤으니 할 말이 없었다.

사정을 설명했고 추가 신청을 했으니 곧 나올 것이라 설명드렸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환자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일을 왜 그렇게 하냐며, 왜 꼼꼼히 보지 못하냐며

왜 내 밥만 나오지 않냐며, 민원을 넣겠다고 소리 질렀다.


화내는 사이 밥이 도착했다.

우선 식사하시라 설명드리고 자리를 피했다.

슬쩍 가 보니 환자는 밥을 잘 드셨다.

식사를 마치신 후 기분이 풀리셨는지

아깐 내가 좀 이상했다며, 요즘 갑자기 화가 난다고 맘에 담아두지 말라 하셨다.


나는 괜찮다 설명드렸다.

분위기가 다시 말랑해졌고 앞에 계시던 다른 환자분께서 한 마디 얹어주셨다.


"밥 하니까 생각났는데 나 오늘 밥이 좀 설익었던 것 같아.

그래서 배가 아픈가? 확인 좀 해줘요."


역시 우리가 어떤 민족인가.

밥의 민족으로서 나는 내가 담당했던 환자들의 식사 만족도 조사를 실시했다.

다들 살림을 하시던 어머니 분들이라 밥에 대한 전문가적 소견을 말씀해 주셨다.

의견을 모아 영양실에 전달했다.

확인하겠다 하셨다.

그리고 난 그날 밥을 먹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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