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는 나를 공감해 줘

큰 아픔은 때론 사람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든다

by Yunna

새벽 근무를 하고 있었다.

한 병실에서 소란이 들렸고, 나는 병실로 향했다.

한 환자분이 흐느끼고 계셨다.

환자분은 여기가 어디인지 헷갈려하셨다.

슬픈 꿈을 꾸신 건가?

슬픔 꿈을 꾼 것이 아니었다.

어디가 아프신 건가 싶어 몸의 이곳저곳을 살폈다.

어디가 아픈 것도 아니었다.

정확히는 몸이 아픈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진정이 되신 것 같아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러다, 다시 환자분은 흐느끼며 울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환자 침상에만 불을 켜고 왜 우시냐 물었다.

알 수 없는 말을 되풀이하셨다.

섬망이 오신 것 같았다.

잘 달래 드리면 주무실까 싶었지만 다시 주무실 생각은 없어 보였다.


새벽 근무 중 소란이 발생하면 심장이 쿵쾅대고 머리가 조여 온다.

다른 환자들을 깨우지 않아야 한다는 마음과 이 상황을 조용히 처리해야 한다는 부담이 날 덮친다.

새벽 근무는 당장 환자들에게 보이진 않지만 간호사로서 해야 할 일들이 참 많다.

아무 일이 없어도 때론 너무 바쁜데, 중간에 이런 이벤트가 터지면

초보간호사인 나는 눈앞이 깜깜해지고 손발이 긴장감에 차가워진다.


제발 다시 조용히 주무시기만을 바라는 마음으로 무엇을 도와드릴지 조용히 여쭈었다.

나의 간절한 마음이 통하지 않았을까 환자분의 흐느끼는 소리는 더 커져만 갔다.

마스크 때문에 표정이 가려진 걸까?

'할머니 제발 어디 아프신 거 아니면 일단 주무시고 내일 말씀해 주시면 안 될까요?'

라는 마음을 숨긴 채

"할머니~ 어디가 불편하셔요? 뭐 도와드릴까요?"

라고 친절히 여쭤보았다.


할머니는 내 손을 잡으시더니 말씀하셨다.

"딸이 보고 싶어."

"따님 내일 오라고 전화하시면 되지!"


생각보다 단순한 요청에 마음이 다시 차분해지며 손발이 따뜻해졌다.

그리고 다시 밝은 표정으로 내일 아침 되자마자 꼭 전화드리겠다 자신만만하게 말씀드렸다.

그러자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근데 그 딸이 죽어서 없어."


"... 네?"


내 손발은 다시 차가워지고 머릿속 어딘가에 저장된(아무튼 한 번은 보았던) 보호자 목록을 뒤졌다.

'분명 따님이 계셨던 것 같은데 왜 죽었다 하시는 거지?'


"환자분, 따님이랑 같이 오신 거 아니에요? 집에서 주무실 텐데!"

"그 딸 말고... 하나 더 있어. 근데 죽었어. 그 딸이 너무 보고 싶어. 너무 미안해."


할머니는 다시 우셨다.

딸이 젊은 시절 사고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자식을 먼저 보낸 어머니의 마음을 감히 헤아릴 수는 없었다.

위로는 더더욱 할 수 없었다.

나는 새벽에 딸을 먼저 보낸 환자의 슬픔을 헤아려야 했다.

우리 엄마는 자식이란 당연히 목숨도 내놓을 수 있는 존재라고 했다.

내 목숨도 아깝지 않은 자식을 먼저 잃은 슬픔을 나 따위가 헤아릴 수는 없었다.

할머니의 정신은 온전하지 않았다.

여기가 병원인지도 인지하지 못했다.

그저 계속 우셨다.


순간 내 처지에 화가 났다.

나는 분명 대학시절 치료적 의사소통에 대해 배웠다.

그러나 당장 눈앞에 일을 쳐내기도 벅찬 현실에

공감은커녕 제발 주무시기만을 바라게 되는 현실에 화가 났다.

일을 더 빨리 할 수 있어지면 좀 다를까?

아직 내가 부족하다고만 느껴졌다.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냥 이야기를 들어드릴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는 그러다 주무셨다.

그리고 다음날 밤에도 우셨다.

낮이 되면 그 기억을 잃으시는 것 같았다.

할머님도 모르는 할머니를 공감해야 한다.

오히려 이 사실이 할머니께는 다행인 것 같았다.

상실의 고통을 계속 느껴야 한다는 건 정말 잔인한 일이기에

낮시간이라도 그 고통을 잊을 수 있는 건 다행인 것 같았다.


큰 슬픔은 나를 완전히 바꿔놓는 것 같다.

부디 기억의 상실이 할머니에게는 좀 더 머물기를 바랐다.

인지저하는 소중한 기억을 빼앗는 절망스러운 질환이지만

때론, 나를 고통 속에서 살리기도 하는 모순적인 질환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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