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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프 Mar 04. 2022

길냥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다

길냥이와 슬기롭게 공존하기



우리가 살아가는 생활공간 주변에서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 찾지 않더라도 쉽게 눈에 띄는 동물이 길고양이들이다. 유구한 역사를 인간과 함께 살아왔던 고양이가 이웃 간의 갈등을 유발하는 등 사회 문제화된 것은 그 긴 공존의 시간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시간에 불과하다. 그 갈등이라는 것도 개개인의 선호에 의한 취향의 문제인 뿐만 아니라 고양이 생태에 대한 왜곡된 정보도 한몫을 했으리라 생각된다. 

따지고 보면, 고양이는 늘 그래 왔듯이 우리 곁에서 별문제 없이 잘 살아왔고, 우리의 생활환경이 단 기간에 급격히 변화하는 바람에 빚어진 문제인데 이것을 감정적으로 접근하거나 특히, 자신의 분노를 고양이에 대한 잔인한 학대로 표출하는 행위는 범죄임을 분명히 인식해야 될 것이다.

현재에 와서, 도시의 힘든 환경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길고양이 입장에서 보면 생태계 질서에 의한 개체수 조절이 자연적으로 될 수 없는 상황이고 그나마, 지자체에서 시행하는 TNR(Trap-Neuter-Retern)과 캣맘(Cat mom)과 캣 대디(Cat daddy)의 헌신적인 보살핌이 생명권을 보장받으면서 공존해 갈 수 있는 몇 안 되는 해결책 중 하나임은 분명하다. 하나의 좋은 예로, 집 근처 대학교 캠퍼스에 학생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고양이가 있는데 길고양이임에도 불구하고 반려묘 못지않게 잘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고 난 뒤에 든 확신이었다. 

언젠가 한 번은, 다른 길고양이와는 달리 경계하는 태세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녀석의 여유로움에 반하여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휴대폰을 꺼내 도도한 모습을 카메라에 연신 담아 보던 중 불현듯 드는 생각이 이 녀석의 시선으로 보이는 세상은 어떤 모습으로 인식되고 있을까? 하는 뜬금없는 궁금증이 생겼다. 






 

오늘은 아침 햇볕이 너무 좋아서 영역 순찰을 대충 마무리하고 건축관 건물 앞 나무벤치에 올라앉아서 꾸벅꾸벅 졸고 있자니 지나가는 낯선 여학생이 슬그머니 다가와 옆에 앉아서 내 얼굴을 쓰다듬어 댔다. 가끔씩은 내가 먼저 무심한 듯 소리 없이 다가가 헤드 번팅(Head bunting)과 뺨과 몸을 비비는 러빙(Rubbing)으로 필살기를 부릴 때도 있지만…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대학교 캠퍼스이다. 기숙사를 주요 거점으로 벚꽃동산, 반대편 기숙사 잔디밭, 건축관과 국제관을 아우르는 광범위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 캠퍼스 내에서도 노른자위 영역이라 할 수 있다는 기숙사와 학생식당을 끼고 있어 다른 길고양이에 비해 비교적 풍요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

내가 이곳에 터를 잡고 산지 얼마나 되었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꽤나 많은 시간이 흘렀으리라 생각된다. 작년에 입학한 행정학과 "민이"서부터 체육학과 복학생 "환이"까지 나를 "두팔이"라 부르며 아는 체를 하는 것을 보니 그렇다.

나는 내가 어떤 고양이인지, 어떤 고양이로 살아가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다. 정체성을 잃었다는 뜻이다. 어느 날인가, 포획틀에 든 참치 통조림 유혹에 넘어가 어디론가 끌려간 일이 있었다. 낯설고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공간이었다. 공포심마저 들었다. 잠시 혼절했다 깨어 보니 복부 아래쪽 통증과 함께 나의 왼쪽 귀가 무참히 잘려 나가 있었다. 그런 일이 있은 후로 주기적으로 뜨겁게 차 오르며 부르던 판타스틱한 욕정의 노래는 더 이상 부를 수 없게 되었다. 

이 엄혹한 회색의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 힘들게 해내야 하는 수고로움이란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여야 하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를 이웃으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과 거친 행동을 감내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나마 우리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 주는 집사를 자처한 사람들 덕분에 삶의 질이 많이 나아졌다. 그리고, 우리를 배척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질병을 퍼트리거나 생태계를 파괴한다는 것도 집사들의 희생으로 오히려 그러한 것들이 예방되는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다툼이 있을 때는 마음이 아프다.


나에게 있어서는 기숙사 비상계단 입구에 학생들이 마련해 준 보금자리가 있어 배를 채우고 목을 축이는 일은 쉽게 해결할 수 있어서 정말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그 덕분에 몇 가지 번거로운 일이 생기기도 했다. 그중 하나는 포만감에 잠시 눈을 감고 쉬고자 할 때 번잡하게 오가는 학생들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호들갑을 떨며 아는 체하는 몇몇 여학생의 지나친 관심이다. 그 정도는 학교 내 셀럽으로서 감내해야 되는 일상적인 일로 치부하더라도 정말 견디기 힘든 것은 반려견과 함께 나의 보금자리 근처까지 스스럼없이 접근해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 때문이다. 지금은 서로 맞닥뜨리지 않게 내가 먼저 피해 버리지만 피가 끓던 시절엔 털을 곤두세우고 발톱에 힘을 잔뜩 주며 맞서기도 하였다.

이제 힘겨운 겨울도 다 지난 듯하다. 입학식을 했는지 새내기들이 몰려와 사진을 찍고 난리법석이다. 그렇게 또 나의 존재를 선배들로부터 대물림하여 전해 들은 새내기들의 마음에 내 이름 "두팔이"가 깊이 각인되어 오랫동안 전해지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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