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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프 Mar 07. 2022

정답은 없다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말 중에는 습관적으로 오류를 범하는 단어가 있다. 그것은 같고, 다름, 그리고 맞고, 틀림을 정확히 구분하지 않고 같지 않음을 틀렸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이런 언어습관이 어디에서부터 비롯된 것인지, 학문적으로 연구된 바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름 상식선에서 유추하고 고민해 본 바에 의하면 과거 획일화된 암기 위주의 주입식 교육이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생각한다.


우리는 학교에서 교육을 받기 시작한 이후로 계속해서 특정된 정답만을 선택할 것을 강요받아 왔다. 객관식 사지선다형의 문제를 푸는 과정에서 정답 이외는 전부 틀린 답이기 때문에 맞거나 틀리거나 하는 두 가지 이외에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이러한 정형화된 학습효과가 뿌리 깊게 뇌리 속에 각인되어 개개인의 의견이나 생각이 서로 상반되면 틀렸다고 표현하는 오류를 범하고 마는 것이다.

이러한 언어적 오류가 단순히 언어습관에만 한정된다면 개인의 문제로 치부해 버릴 수도 있겠지만, 이미 우리의 생활문화 전반에 걸쳐 깊숙이 뿌리내려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주지한다면 심각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각종 미디어 매체에서 접하는 토론회나 국회에서 이러한 현상을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일이 자주 벌어진다. 예, 아니요 아니면 ○X로 답하라고 강요하는, 경찰서 취조실에서나 있을 법한 상황을 자주 연출한다. 뿐만 아니라 정치, 문화, 종교 등 전반적으로 흑백논리와 진영논리에 빠져 네 편 내 편을 가르고 내편이 아니면 적으로 간주하는 고질적인 병폐가 선진국에 접어든 이 시점까지 완전히 없어지지 않고 있음이 답답하기만 하다.

위에서 언급한 내용들은 특별히 관심이 없으면 피부에 와닿지 않을 수 있지만 내 주변에서 다름을 인정하지 않음으로 벌어지는 많은 일 들은 각자의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부모 자식 간 부부간 친구 간 등 모든 사회 구성원 간 상호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대립이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틀렸다고 단정해 버리는 순간, 마찰이 생기고 만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특히, 부부 상호 간 나만 일방적으로 옳고 상대방은 틀렸다고 질책하고 자신의 주장만이 정답인 것 마냥 강요하기를 일삼으면 그런 관계는 원만하게 지속될 수 없을 것이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정답이 있다. 우리의 삶에서 고려해야 되는 것은 다수가 선망하고 추구하는 특정한 삶만이 정답은 아니다는 것이다. 맞다. 틀리다가 아닌 다름을 인정할 때 우리는 비로소 욕망의 굴레에서 벗어나 삶의 자유를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삶일까? 하는 우리의 삶의 방식을 논하는 문제에 있어서 

정답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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