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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프 Mar 11. 2022

귀 얇은 후배 S


홈쇼핑 채널을 보고 있자면, 쇼호스트들의 현란한 말솜씨와 소비자의 구매 욕구를 자극하는 방송기술에 솔깃해 빨리 주문하지 않으면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착각에 충동구매를 해 본 경험들이 한 번씩은 있으리라 생각된다.

사람들 중에는 소위, 귀가 얇아 남의 말을 잘 듣고 꼬임에 잘 넘어가는 이가 더러 있다. 예전에 같이 근무했던 직장 후배 S가 그런 부류의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시대가 변해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예전에는 한때, 각종 물품을 판매하는 영업행위가 직장을 비롯해 고속버스, 휴게소등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면 어디든 성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고속버스가 휴게소에 잠시 정차하는 동안 승객에게 번호표를 재빨리 나누어 주고는 특정번호를 부르며 당첨을 축하한다면서 “우리 회사는 외국에 OEM으로 수출하던 xx시계회사인데 갑자기 수출길이 막혀   국내 판촉을 위해 손해를 무릅쓰고 고급시계를 공짜로 드리는 겁니다” 공짜라는 말에 사람들은 받았던 번호표를 슬쩍 확인해 보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시중에 얼마에 판매되고 있는데 세금 얼마만 내시면 고급시계를 공짜로 드립니다.” 이런 식이었다. 현재의 시각으로 볼 때는 누가 그런 물건을 사겠냐고 생각되겠지만 스마트폰도 없었고 각종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없었던 시절이라 세금(?) 1~2만 원을 선뜻 주고 시계를 받아가는 사람이 가끔 눈에 띄기도 했다.

후배 S는 시계뿐만 아니라 가죽(?) 점퍼, 지갑, 심지어 백화점에 납품된다는 수산물 선물세트까지 그가 구매를 당한 제품들은 실로 다양했다. 그는 그러한 제품들을 엄청나게 싸게 샀다며 무용담을 자랑삼아 늘어놓곤 했는데, 제 값 주고 샀거나 아님 사기를 당했다는 것을 알아채고도 그의 구매행위는 계속되었다.

내가 보기에, 그는 사기꾼의 말에 쉽게 속을 정도로 어리숙하지도 않거니와 직장 내에서도 성실하기로 소문이 났고, 노인복지센터 등에서 봉사활동도 열정적으로 하던 친구라 나로선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아서 도대체 왜 그러냐고 물어봤을 때 그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사람들이 안쓰럽고 딱해 보여서요…” 여러 가지 상황으로 봤을 때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심성을 가진 친구이다고 생각했는데 나의 이런 생각은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어떤 일을 계기로 한 순간에 바뀌어 버렸다.

때는 IMF 외환위기 이후 폭락했던 주식시장이 정부의 벤처기업 육성책의 결과로 IT기업 등이 코스닥시장에서 일명 닷컴 버블이 한창이던 시절이었다. 골드뱅크, 장미디어 등, 지금은 상장 폐지되어 이름조차 생소한 기업들이 당시에는 자고 일어나면 상한가를 치는 등 코스닥 열풍이 불던 시기였다. 

그러던 어느 날, 후배 S가 상기된 얼굴로 전화기를 붙들고 번호를 열심히 눌러댔다. 주식거래의 수단이라고는 증권회사 직원을 통하거나 유선전화 ARS 정도였고, 주식에 대한 정보도 제한적일 뿐 아니라 묻지 마 투자가 횡횡하던 시절이었다. 

번호를 누르는 중에도 “어떡해야 돼요? 팔까요?” 사무실에 있는 몇 명의 동료에게 다급하게 연신 물어댔다.  “어! 막 오르는데? 빨리, 빨리 팔아야 되겠는걸” 동료의 말에 S는 벌겋게 상기된 얼굴과 다급해하면서 확신에 찬 목소리로 증권회사 직원에게 이렇게 말했다.

“상한가에서 플러스 100 원해서 팔아 주세요!!!” 

주위에 있던 몇 명의 동료들은 배를 잡고 뒤집어졌고, 역시 그는 귀가 얇았다는 나의 생각을 굳히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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