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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프 Mar 14. 2022

옥이 이모

막내 처제 박영옥


몇 살 때인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어릴 때 잠시 살았던 외갓집에 대한 기억은 몇 백 년 묵은 커다란 당수나무에서부터 시작된다. 당수나무 앞, 방이 예닐곱 개 되는 넓은 기와집에 이모, 외삼촌들을 비롯해 많은 식구가 함께 살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 가족이 북적거리며 살다 보면 부대끼는 일도 많이 생길 것이 분명한데 그런 와중에도 작은 이모는 유난히 우리 형제들을 예뻐하고 살뜰하게 챙겨주었다. 거기에 더해 당시 병환으로 누워 지내시던 외할머니 병시중을 혼자 도맡아 했는 걸로 어렴풋이 기억한다. 방문 앞에 작은 종을 달아 줄로 연결해 놓고 외할머니가 줄을 당겨 소리가 울리면 작은 이모가 쪼르르 달려가서 방문을 열며 “엄마, 어디가 불편한가예! 뭐 해드릴까예!” 하던 장면이 단편적으로 떠오른다. 그즈음에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당수나무가 있던 외갓집에 대한 기억은 거기서 끝났다. 그러나 이후로도 한결같은 모습으로 내 기억 속에 각인된 이모는 언제나 살갑고 다정했다. 찌푸린 얼굴이나 거친 언사(言辭)라는 건 적어도 내 기억 속엔 존재하지 않는다. 세 자매 중 유일하게 생존해 계시는 작은 이모는 큰 일 있을 때 한 번씩 밖에 못 뵙지만 그럴 때마다 어린 시절 따뜻했던 이모의 정도 생각나고 돌아가신 어머니도 생각나 가슴이 울컥 차오르기도 한다.


나는 이처럼 이모에 대한 좋았던 일들을 추억하며 지금껏 살아왔다. 그러나 요즈음 시대 태어난 아이들은 이모에 대한 추억이 없는 친구들도 많이 있다.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산아 제안 캠페인을 하던 시절에서부터 시작하여 지금은 출산율이 떨어져 아이가 한 명인 가정도 급격히 늘어나는 바람에 이모가 없는 아이들도 부지기수(不知其數) 일 것이다. 이런 세태에 대한 부작용인지, 반향(反響)인지 모르겠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생활환경 주변에는 이모들이 넘쳐나고 있다. 적당한 호칭을 적용하기 애매한 여성을 가리켜 이모(님)라고 부르는 경향이 있다. 듣는 사람들도 이모라는 호칭이 가진 정감 어린 이미지 때문인지 별 거부감을 갖지 않는다. 학술적으로도 친족 간의 왕래 빈도에 따라 친밀도가 달라질 수는 있으나 일반적으로 아버지와 남매간인 고모보다 어머니와 자매간인 이모와의 친밀도가 훨씬 놓은 경향이 있다고 한다. 


다행히도 우리 아이들은 이모가 둘이나 있다. 

맏이인 아내와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연이어 둘째 처제도 결혼을 했다. 이렇게 딸 둘을 연거푸 혼인시킬 때만 해도 처가에서는 미래에 재앙과 같은 엄청난 일이 벌어질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아내와 둘째 처제는 둘 다 공무원으로, 학교와 시립도서관에 각각 근무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맞벌이 부부 두 쌍이 맺어진 것이었다. 그렇게 맞벌이 부부가 탄생한 후 처음 1년은 별문제 없이 순탄하게 잘 지나가는 듯하였다. 그러나 1년이 조금 지나면서부터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하였다. 아이들이 차례로 태어나면서 육아와의 전쟁이 벌어진 것이다. 사정상 두 집 모두 아이를 돌봐 줄 사람이 마땅히 없어 처가에 맞길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요즈음 같아서는 돈을 싸 들고 와서 사정을 해도 손사래를 치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테이지만, 장모는 별 고민 없이 선뜻 아이를 맡아 주기로 하였다. 그 당시 장모의 흔쾌히 아이를 맡아 주기로 한 그 장렬한 선택은 후에 애꿎은 희생자를 한 명 더 탄생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막내 처제가 그 희생자 중 한 명이었다. 
 내가 결혼하여 막 신혼생활을 시작할 무렵부터, 정확하진 않지만 막내 처제에게는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준비를 하여 공무원이 되고 하는 일련의 일들이 동시다발로 일어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무튼, 얼마 지나지 않은 비슷한 시기에 우리 집 큰아들을 필두로 해서 둘째 처제네 첫째 딸, 일 년 터울로 우리 집 작은 아들, 몇 년 터울로 처제네 둘째 딸이 연이어 태어났고, 불현듯 시작한 네 명의 아이들과 펼치는 드라마틱한 육아와의 전쟁은 단기간에 끝나지 않고 몇 년에 걸쳐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육아과정에서 일어났던 수많은 이야기들은 책으로 펴내도 한 권을 족히 넘을 분량으로 구구절절한 많은 사연이 있었지만, 여기에서는 원치 않게 이 전쟁에 참전한 막내 처제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갓난아이들을 장모 혼자서 돌 본다는 것은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정말 고통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육아 분담의 불똥이 막내 처제에게 까지 자연스럽게 튀었던 것이다. 문제는 낮에 잘 놀던 아이들이 밤만 되면 번갈아 칭얼대면서 밤잠을 제대로 잘 수 없다는 데 있었다. 그래서 궁여지책 끝에 우리 집 아이를 막내 처제가 데리고 자기로 하였다. 이렇게 임시방편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지만 막내 처제도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때이고, 밤에까지 육아 부담을 지우는 것이 여간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어서 아예 처가 근처로 집을 옮기기로 결정하고 퇴근 후에는 아이를 데리고 오기로 하였던 것이다.


그렇게 말로 다 할 수 없는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아이들은 별 탈 없이 잘 자라 주었다. 
 아이들이 한창 제비 새끼처럼 재잘거리며 재롱을 떨던 예닐곱 살쯤 되던 95년경에 TV 드라마 옥이 이모가 공전의 히트를 치며 사람들을 드라마 속으로 빠져들게 하였던 때가 있었다. 마침 막내 처제도 이름이 옥이여서 아이들 네 명이서 막내 처제를 둘러싸고 “옥이 이모!  옥이 이모!” 하면서 경쟁적으로 매달리며 졸졸 따라다녔다. 드라마 영향도 있고 아이들이 워낙 “옥이 이모!” 하고 부르고 다니는 바람에 가족들까지 입에 붙어 막내 처제를 자연스럽게 옥이 이모라 부르게 되었다. 
 옥이 이모는 아이들이 어느 정도 커갈 때까지의 성장과정을 엄마들에 버금갈 정도로 함께 했었다. 그러나 일면 당연할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의 옥이 이모와 있었던 일들은 전혀 기억을 못 하는 듯하였다. 이 같은 일이 벌어질 것을 예견이라도 한 듯 아이들의 성장과정의 주요 부분을 비디오로 다 남겨 두었던 것은 정말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정말 잘된 일이지만 옥이 이모는 좋은 사람 만나 잘 살고 있다. 정년이 좀 남아 있기는 하지만 직장 생활도 여전히 잘하고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장모님은 아이들이 잘 커서 시집 장가가는 것도 보지 못한 채 수년 전에 홀연히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장모는 떠나고 없지만, 옥이 이모네가 아이들에게는 여전히 외갓집같이 느껴지고 있을 것이라 짐작된다. 거기에는 옥이 이모의 체취가 배어 있을 것이고 직접 느끼지는 못하겠지만 갓난아이 때 맡았던 옥이 이모의 체취를 본능적으로 느끼리라 믿기 때문이다.    


작년 명절에 처조카들과 약속한 것이 하나 있었다. 어릴 때 찍어서 모아 두었던 비디오테이프를 디지털로 변환하여 다가오는 명절에 옥이 이모네에 모여서 다 같이 보기로 했던 것이다. 차일피일 미루다가 변환작업을 겨우 마칠 수 있었는데, 명절 때 모여서 보기로 한 약속은 갑자기 일이 생기는 바람에 지킬 수가 없었다. 

듣자 하니, 둘째 처제네 막내는 동서가 복사하고 편집하여 전해준 동영상을 보고 펑펑 울었다고 한다. 기억도 나지 않는 자기의 어릴 때 모습과 힘들여 키워준 외할머니의 생전모습을 보고 가슴이 북받쳐 한 참을 울었다고 한다. 장모가 세상을 떠났을 때도 가장 서럽게 울었던 걸로 기억하고 있다.

이제 아이들은, 자신들은 기억하지도 못하는 유아시절의 파란만장한 성장과정을 겪어내면서 다들 훌륭한 성인이 되었고 시집을 가서 아이를 낳아 엄마가 되고 하는 역사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내 경우에는 어릴 때 이모와의 추억이 있다고는 하지만, 단편 조각에 불과하고 그나마 세월이 지나면서 기억도 가물거리는 한편 편집되고 각색되기도 하여 명확하지 않게 그냥 좋은 기억으로만 자리하고 있는 반면 조카들을 비롯한 우리 아이들은 동영상을 남겨 둠으로 해서 세월이 한참 흘러서 지금의 내 나이쯤 되어서도 옥이 이모와의 추억을 퇴색 없이 고스란히 재생해 낼 수 있어서 정말 다행으로 생각한다. 원컨대, 우리 아이들이 어릴 때 모습이 담긴 영상을 보며 옥이 이모의 따뜻한 마음을 잊지 않기를 바라는 한편, 아무리 세상이 점점 더 각박해진다 해도 옥이 이모를 비롯해 이 세상에는 많은 이모들이 있기에 따뜻한 이야기가 끊임없이 계속해서 전해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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