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그리고 박제된 하루

비둘기가 되다

by 제프


꿈을 꾸었다.
익숙하지만 정확히 어딘지 단정 지을 수 없는 넓은 광장 한가운데에 남루한 옷차림의 남자가 고개를 숙인 채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마치 유체이탈을 한 듯, 내려다 보이며 한눈에 들어온 남자의 실루엣이 왠지 낯설지가 않았다. 천천히 클로즈업되며 또렷하게 인식되는 그 사람은 당황스럽게도 나였다. 동시에, 한 아이가 다가왔다. “아저씬 비둘기 같아요!” 싸늘한 표정으로 한마디 던지고는 연기처럼 사라졌다.


비둘기의 이미지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아이의 표정 때문에 꿈을 깨고도 한동안 머릿속이 복잡했다. 꿈속 아이의 한마디가 흐려지기는커녕 마치 화두를 던진 듯 자꾸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한동안 생각을 한 끝에, 무슨 이유에 선가 비둘기에 대한 나의 인식이 변했음을 방증한 결과물인 동시에 현재 비둘기가 처한 상황과 나를 빗대어 보라는 창조적 인식의 오류에 기인한 것이라 결론지었다.


도시에 삶의 뿌리를 내린 비둘기는 안타깝게도 더 이상 평화의 상징이 아니었다. 한 때, 모두에게 사랑받으며 -월계수 잎, 광장, 비둘기, 그리고 환하게 웃는 아이와 가족- 그렇게 행복과 평화의 상징으로 숱한 포스터와 인쇄물을 장식하던 그 이미지는 이제 빛바랜 옛날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회색빛 콘크리트 숲을 헤매고 다니며 도시의 노숙자가 되어버린 천덕꾸러기 새, 비둘기…


나는 나도 모르게 비둘기가 되어 있었다. 한아름의 꽃다발과 환송의 박수를 받으며 수십 년의 노고를 뒤로하고 새로운 여정을 시작했을 때, 녹녹지 않으리라 예상하고 단단히 마음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생각했던 거보다 훨씬 더 빠르고 냉정하게 나의 여정을 흩뜨려 버렸다. 그래서, 나는 체념하듯 스스로 비둘기 처지가 되고 말았다.


이렇듯 나와 세상 이야기는 작은 실마리 하나로 인해 시작되었다. 이 길이 아닐 것이다 몇 번이고 곱씹어 봐도 나의 여정은 내 의사와 상관없이도 물 흐르듯 잘만 흘러가고, 이것 저것 돌아볼 겨를도 없이 무료하던 아니든 시간은 빛과 같이 지나가는 듯하여 남은 인생을 가늠하기조차 두려워진다.


그래서, 창조적인 시선과 엉뚱한 상상으로 피폐해진 비둘기의 유쾌한 반란을 꿈꾸며 오늘 하루를 조심스럽게 박제해 본다.




데카르트를 향한 유감

데카르트를 향한 유감

어느 도시 비둘기는 나란히 앉아서 같은 곳을 지향하는 방법을 깨우쳤다. 같은 곳을 보니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단순하고 순진한 생각이었는지는 깃털이 허옇게 변하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그제야 비로소 한탄하듯 허탈하게 한마디 내뱉었다.

“나는 착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그럼에도 나는 꿈을 꾼다.

그럼에도 나는 꿈을 꾼다.

그럼에도 나는 행복을 꿈꾸며 또다시 오늘 하루를 기억 속에 박제해 둔다.




관심과 무관심

관심과 무관심

관계는 관심과 무관심 사이의 위태로운 줄다리기와 같다. 누구든 관심이 사랑이라 지나치게 믿는다면 어느 날 즈음에는 당신의 그것은 집착이었다는 기분 나쁜 충고를 들을 수도 있을 것이다.




배려와 공존

배려와 공존

선뜻 자리를 내어주고 한쪽으로 비켜나는 배려 만으로도 세상이 평화롭고 아름답게 공존하며 유지될 것 같지만 이 복잡하고 무서운 세상은 동화 속 이야기처럼 교훈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박제된 오늘 이 순간만큼은 배려와 공존이 아름다운 서사로 보인다.




김광섭 시인의 "성북동 비둘기"를 되뇌어 보며…

성북동 비둘기

김광섭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지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돈다.


성북동 메마른 골짜기에는
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 먹을
널찍한 마당은커녕 가는데 마다
채석장 포성이 메아리쳐서
피난하듯 지붕에 올라앉아

아침 구공탄 굴뚝 연기에서 향수를 느끼다가
산 1번지 채석장에 도로 가서
금방 따낸 돌 온기에 입을 닦는다.


예전에는 사람을 성자처럼 보고
사람과 가까이서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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