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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과 헤드벵잉을 _ 베토벤 <교향곡 7번>

초보자의 클래식 일기 8

by 영조

오래전부터 운전하며 출근하는 중에 루틴으로 하는 일이 두 가지 생겼다. 하나는 묵주기도를 하는 일이고 또 하나는 라디오를 듣는 일이다. 출근 시간이 일정하니까 듣는 방송도 거의 일정하다. KBS FM의 ‘출발 FM과 함께’다. 이 프로그램은 출근하는 30여 분 동안 밖에는 듣지 못하지만 출근길 마음을 가볍고 기쁘게 해 준다.


선곡도 좋지만 청취자와의 공감능력이 뛰어난 진행자 이재후 아나운서가 듣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어떤 때는 이 프로그램을 듣는 게 출근보다 더 중요한 일이 된듯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일용할 양식'을 책임질 일터로 향하는 출근이 오히려 덤이 된 듯한...


특히 목요일 날 이 프로그램은 (진행자의 말대로) ‘소소한 즐거움’을 준다. 어렵지 않은 퀴즈를 내고 상품을 주는데 오늘 상품이 탐난다. 테오도르 쿠렌치스라는 지휘자의 베토벤 <교향곡 7번> CD를 준다고 하는데 유럽에서는 아주 핫한 지휘자라고 한다. 드디어 퀴즈.

베토벤이 했다는 말 “나는 인류를 위해 술을 빚는 ( )며 그렇게 빚은 술로 사람들을 취하게 한다.”에서 ( )에 들어갈 그리스 신화 속 신(神)은 누구일까요?


신의 이름을 맞추는 건데 객관식이다. 진행자는 당첨자 5명 외에도 아차상 2명에게 어학 수강권을 줄 테니 당첨이 안되었다고 ‘긴장의 끈을 놓지 말라’는 멘트를 날린다. 그러나 나는 어학 수강권엔 관심이 없다.


정답은 술(포도주)의 신 디오니소스. 보통 때 같으면 신호대기 중에 급하게 “1번 디오니소스”라고 간단히 답을 보냈겠지만, 오늘은 욕심이 생겨 잠시 골목에 차를 세우고 정성스레(?) 답을 보낸다. 애교 섞인 멘트와 함께.


“1번 디오니소스
이번엔 꼭~~, 당첨자 발표 후 긴장의 끈을 놓고 싶어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술(포도주)의 신 디오니소스 Dionysos는 로마 신화의 바쿠스 Bacchus와 같은 신이다. 디오니소스나 바쿠스보다는 피로회복 음료 '박카스'로 더 잘 알려진 바로 그 이름인데, 베토벤 교향곡 7번을 소개할 때면 단골로 나오는 이야기다. "술의 신 디오니소스의 향연, 광란의 춤곡"이라는 제목과 함께.


돌아온 것은 참여해 줘서 고맙다는 문자 메시지뿐. 역시나 떨어졌지만 쿠렌치스라는 핫한 지휘자의 열정적인 연주를 들었고, 게다가 또 하나의 클래식 관련 추억을 만들었으니 아쉬움은 없다.


테오도르 쿠렌치스 Teodor Currentzis(1972~ )는 그리스 아테네에서 태어나고 러시아에서 활동하는 지휘자다. 현재 유럽에서 가장 핫한 지휘자라는데 그가 30대 초반인 2005년에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했다는 말이 맘에 든다. “내게 10년의 시간을 준다면 클래식을 구원하겠다.” 참으로 호기로운 말이다. 젊음의 패기와 자신감이 부럽다. 모름지기 젊을 때는 이 정도의 호연지기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아무튼, 러시아에 유학한 그는 모스크바로부터 1,300여 km 떨어진 지방 도시 페름의 오페라 극장에 터를 잡고, 러시아 전역을 뒤져 선발한 단원들로 자신만의 오케스트라인 무지카 에테르나 MusicAeterna를 조직했다. 그리고 그 시골 악단을 조율하여 함께 음반을 만들어 냈다.


오늘 라디오에서 들었던 음원도 그중 하나다. ‘클래식의 구원자’를 자처한 지휘계의 신성 쿠렌치스가 2018년에 녹음했다는 그 음반을 사서 들어 봐야겠다. 호방하고 신선한 해석을 기대하며... 흥분을 줄까? 감동을 줄까? 둘 다였으면 좋겠다.

며칠 뒤 도착한 쿠렌치스의 음반을 들었다.
기존에 듣던 유명 지휘자의 연주가 신문 사설을 읽는 느낌이었다면, 쿠렌치스의 음반은 자유 기고가의 칼럼을 읽는 듯한 느낌이었다. 열정적이면서 밝고 경쾌하다.



베토벤 <7번 교향곡>은 엄청난 대작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그의 교향곡보다 덜 알려진 감이 없지 않다. 다른 교향곡들처럼 표제가 없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3번 <영웅>, 5번 <운명>, 6번 <전원>, 9번 <합창>처럼. 사실 나는 베토벤 교향곡 중에 어떤 때는 5번 <운명>이 제일 좋고, 또 어떤 때는 7번이 좋을 때도 있다.

리스트는 이곡을 가리켜 '리듬을 신격화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 정도로 리드미컬한 곡인데 듣고 있으면 없던 에너지도 생기고 특히 4악장에서는 저절로 헤드벵잉을 하게 된다.


흔히 베토벤 교향곡 7번을 술의 신 '디오니소스의 음악'이라고도 하는데,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디오니소스적'이라는 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예술에 있어서 음악적(音樂的)이고 동적(動的)이며, 격정(激情), 도취(陶醉), 열광(熱狂) 따위의 특징이 있는.

이 곡의 해설에 군더더기 없이 딱 맞는 말이다.



1악장 Poco sostenuto - Vivace(음 길이를 충분히 늘여서 - 쾌활하게)

아무래도 이 곡은 리듬에 몸을 맡기는 게 가장 좋은 감상 포인트일 듯하다. 플루트가 주제를 제시하고 여기에 바이올린과 목관 그리고 팀파니까지 가세해서 같은 리듬을 집요하게 반복하며 분위기를 격동적 춤곡으로 끌고 간다.


https://youtu.be/bM2hEffL37o

쿠렌치스가 지휘한 뮤지카 에테르나의 베토벤 교향곡 7번 1악장


2악장 Allegretto(조금 빠르게)

장중한 현악기 저음으로 조용히 시작하여 느릿하게 뚜벅뚜벅 걸어가는 느낌이다. 약간은 우울한 느낌도 드는 게 장송 행진을 연상시키며 감정을 고조시킨다.

이 악장은 TV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도 나왔었다. 예림이 위치 추적으로 남편의 불륜을 알아내고 절망하는 장면인데, 음악 감독은 이 곡을 사용한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불륜의 비정함을 나타내는데 이곡이 제격이라고 생각했다. 불륜을 알게 된 후의 복잡한 감정을 잘 나타내 준다."


https://youtu.be/TP6yaEm7Bik

쿠렌치스가 지휘한 뮤지카 에테르나의 베토벤 교향곡 7번 2악장


3악장 Presto(매우 빠르게)

스케르초(굳이 우리말로 하자면 '해학곡'인데 템포가 빠르고 명랑 쾌활하다) 악장이다. 2악장의 우울하고 느린 장송곡풍은 사라지고 밝고 빠른 템포의 흥겨운 악장이다. 중간에 약간 느리고 따뜻한 목가적인 부분이 있으나 이내 다시 빠르고 흥겨운 주제로 돌아간다.


https://youtu.be/lgPAl39JGnI

쿠렌치스가 지휘한 뮤지카 에테르나의 베토벤 교향곡 7번 3악장


4악장 Allegro con brio(힘차고 빠르게)

어마어마한 빠르기로 '빰빠라밤'하는 화음을 던지며 시작한다. 벌써 이 부분만 들어도 고개가 들썩인다. '리듬을 신격화했다'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몸이 먼저 알게 된다. 역동적으로 반복되는 신나는 리듬에 몸을 맡기고 푹 빠지면 된다. 디오니소스적인 격정과 열광에 도취하게 된다.


https://youtu.be/h48IolZNSv8

쿠렌치스가 지휘한 뮤지카 에테르나의 베토벤 교향곡 7번 4악장




베토벤 <교향곡 7번>의 명반 중의 명반인 클라이버가 지휘한 빈 필 연주로 들어 보자.


https://youtu.be/xuzRkGqJx_U

클라이버가 지휘한 빈 필의 베토벤 교향곡 7번



악장 설명 참고 [더 클래식, 문학수] [네이버 지식백과, (클래식 명곡 명연주, 최은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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