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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서 울려 퍼진 교향곡 _ 드보르작 <신세계로부터>

초보자의 클래식 일기 7

by 영조

버즈 올드린(Buzz Aldrin, 1930~)이라는 이름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다. 1969년 아폴로 11호를 타고 우주여행을 떠나 인류 두 번째로 달에 발을 내디딘 사람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닐 암스트롱(Neil Armstrong 1930~2012)과 함께 갔지만, 암스트롱 바로 다음에 말이다. 이쯤 되면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하고 억울해하는 개그가 떠오를 법하다.


그런데 웬 아폴로 11호 이야기? 바로 이 버즈 올드린이 아폴로 11호를 타고 달나라에 갈 때 개인 소장품으로 드보르작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 테이프를 가져갔다고 한다. 위 제목에 '우주에서 울려 퍼진 (최초의) 교향곡'이라고 했지만, 우주에는 공기가 없을 테니 소리가 울려 퍼지지는 못했을 거고 아마도 우주선에서 테이프를 틀고 듣지 않았을까 싶다.


1892년, 드보르작은 51살의 당시로서는 적지 않은 나이에 가족을 이끌고 미국으로 향(모험)했고, 1893년 뉴욕에서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를 작곡했다. 그리고 그것은 76년 뒤에 우주로 모험을 떠난 최초의 교향곡이 되었다.



2019년 여름에 체코, 오스트리아, 헝가리, 독일로 여행을 갔다. 패키지 여행사에서 판매하는 일명 '체ㆍ오ㆍ헝'이라는 상품에 개인적으로 독일 자유여행을 추가해서 떠난 보름 정도의 여행이었다.

첫 여행지는 체코의 까를로비 바리. 이 조용한 동네는 유럽에서 유명한 온천 휴양도시인데, 베토벤도 귀가 아플 때 이곳에 찾아와 휴양했었다고 한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물 좋은 곳엔 사람들이 모여든다. 더구나 의학이 발달하지 못했던 시절이니 각종 병을 가진 사람들이 치유의 희망을 가지고 몰려들었을 것이다. 한여름이었는데도 아침에는 선선해서 얇은 긴팔 옷이 필요했고 따뜻한 온천수가 반갑게 느껴질 정도였다. 과연 휴양 도시답게 물도 좋고 기후도 좋은 곳인 듯했다.


그런데 이 동네가 드보르작과 인연이 깊은 곳인 줄은 몰랐다. 그의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의 유럽 대륙 초연도 이곳에서 있었다고 한다. 드보르작 가을 페스티벌(The Music festival Dvorak, Autumn)과 드보르작 국제 성악 콩쿠르(International Antonin Dvorak Contest of Singing)도 이곳 카를로비 바리에서 개최되며, 이밖에도 드보르작 콘서트홀을 비롯하여 드보르작 호텔, 드보르작 예술학교, 드보르작 공원, 드보르작 거리 등 작곡가의 이름을 딴 곳이 많다고 한다. 패키지여행 중이어서 작은 드보르작 공원을 산책하며 사진을 찍은 것이 드보르작과 관련한 여행 일정의 전부였다. 아는 만큼 본다더니, 아는 것이 없어 거의 본 것이 없었다.


체코의 휴양도시 까를로비 바리와 공원의 드보르작 동상



안토닌 드보르작 Antonin Dvorak(체코 1841~1904)은 체코의 수도 프라하 근처 작은 마을에서 푸줏간과 여관업을 겸하는 집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렇지만 그의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미국 뉴욕에서 작곡되었다. 1892년에 뉴욕 내셔널 음악원에서 드보르작을 원장으로 초빙해 갔던 것이다. 그리고 이듬해인 1893년 드보르작은 심한 향수병을 앓던 중 이곡을 작곡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곡에는 드보르작의 고향 보헤미아를 그리는 향토색 짙은 선율(2악장)이 흐른다.

흔히 체코를 보헤미아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보헤미아는 원래 체코의 한 지방인 ‘체히’를 라틴어 문화권에서 부르는 이름이지만 넓게는 체코 전체를 부르는 이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중장년층은 이 2악장의 선율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 학창 시절에 많이 배우고 불렀던 노래 <꿈속의 고향>이 바로 이곡의 2악장에 가사를 붙여 편곡한 <going home>의 번안곡이기 때문이다. '꿈속에 그려라~ 그리운 고향~', 우리 정서와도 상통하는 애틋함을 가지고 있는 선율이다.


그리고 피날레 4악장은 웅대하고 열광적이어서 응원가로도 많이 쓰인다. 누구든지 들어보면 '아! 이게 그거였어?' 할 것이다. 특히 은퇴한 야구 선수인 '바람의 아들' 이종범(1970~)의 응원가로도 유명하다. 지금은 그의 아들 일명 '바람의 손자' 이정후가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아 뛰어난 기량을 보여주고 있다.


https://youtu.be/LfIwtFBBZrQ

야구 선수 이종범의 응원가는 드보르작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 4악장이다(01:00~)



https://youtu.be/UnorZdEBkSY

카라얀이 지휘한 빈 필의 드보르작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


1악장 Adagio(느리게)는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드보르작의 마음을 드러내는 듯하다. 정든 고향을 뒤로하고 떠나는 아쉬움, 신세계에서 맞닥뜨릴 뭔지 모를 불안함, 그리고 새로움에 대한 기대와 흥분 등이 뒤섞여 느껴지는 악장이다. 도입부의 조용한 저현 소리는 대양을 항해하는 커다란 배가 유유히 미끄러져 나아가는 듯하고 이어 뱃고동 소리(호른)도 들려온다. 그러나 잠시 후 모험의 신세계에 대한 불안함인지 흥분인지 모를 천둥 같은 소리(팀파니)도 들려온다.


2악장 Largo(느리고 풍부하게)는 위에서도 말했듯이 널리 알려진 서정적인 악장으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하다. 그중 <꿈속의 고향> '꿈속에 그려라~ 그리운 고향~' 부분을 연주하며 묘한 감정을 일으키는 악기는 '잉글리시 호른'이라는 다소 생소한 악기이다. 뒤에 '호른'이라는 명칭이 붙었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호른(horn 소의 뿔)처럼 둥글게 말려있는 금관 악기가 아니고, 오히려 커다란 오보에처럼 길게 생긴 목관 악기이다. 이 2악장은 편안하고 느긋하게 들을 수 있어 좋다.

생김새가 전혀 다른 '잉글리시 호른'(왼쪽)과 '호른'


3악장 Molto vivace(매우 빠르고 생기 있게)는 스케르초 악장인데, 스케르초는 빠르고 경쾌하며 리드미컬한 것이 특징이다. 즉 춤곡이다. 이 악장은 보헤미아 지방 농부들의 춤을 연상시킨다. 2악장 고향을 향한 그리움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뉴욕 생활에 적응도 했고 때로는 즐겁기도 한 듯하다.


4악장 Allegro con fuoco(정열을 담아서 빠르고 경쾌하게)의 첫 도입부는 베토벤 교향곡 '운명' 1악장의 첫 동기처럼 단박에 청중을 사로잡으려 한다. 옛날 영화 <죠스>에서 난데없이 거대한 상어가 나타나 사람에게 다가올 때 긴장감을 고조시키던 그 소름 돋는 테마송과 비슷하다. 이어서 우리 귀에 너무 익숙한 그 유명한 응원곡(빰~ 빰 빠~ 빠바바~, 빠~ 빠빠빠빠~~)이 웅장하고 박진감 넘치게 터져 나온다. 모험은 성공이었으며 이제는 고향으로 돌아가도 미련이 없다는 벅찬 소식을 신세계로부터 전하며 대미를 장식한다.


https://youtu.be/d6fCxAeJVb8

'신세계로부터' 4악장 도입부를 닮은 영화 <죠스> OST



악장 설명 참고 [나혼자 음악회, 이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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