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 절정'이라는 심리학 용어가 있다. 삶을 회고해 볼 때 가장 많은 기억이 남아 있는 기간을 말하는데, 자아형성이 가장 활발하게 일어나는청소년기 후반에서 성년기 초반까지가 그 시기이다. 이때의 경험은 자신에게 특별히 소중하게 느껴지고 따라서 기억의 깊은 곳에 새겨지는 것이다. 그래서 어른들이 "라떼는 말이야~"하고 이야기를 시작하면 십중팔구는 그 회고 절정기의 이야기라고 한다. 아저씨들의 군대 무용담이 바로 그 예이다. 아무리 힘들었던 경험도 아름다운 추억이 되곤 한다.
추억은 나를 있게 한다.
치매가 두려운 이유는 벽에 똥칠을 하기 때문이 아니다. 평생 동안 켜켜이 쌓아온 추억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에게서 추억이 사라지면 내용 없는 빈 껍데기만 남게 된다. 한껏 부풀었다가 바람 빠져 쭈글쭈글해진 풍선처럼. 이웃도 친구도 식구도 심지어 나 자신도 사라지는 것이다. 아무런 의미는 없는 살덩어리만 남을 뿐.
<대부 1,2,3>은 영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화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이탈리아계 가족이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건너가 정착하는 과정에서의 역경과 상처, 성공과 좌절 그리고 차가운 폭력을 보여주는 영화다.
이 영화 3편에는 주인공 알 파치노(마이클 콜레오네 역)의 아들이 아버지 사업(마피아 보스)을 물려받지 않고 성악을 전공하여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에 데뷔하는 장면이 나온다. 성공적인 공연을 마치고 가족들이 계단을 내려오는데 두 발의 총성이 울린다. 그리고 그중 한 발이 마이클이 애지중지하는 딸의 가슴에 박힌다. 손쓸 틈도 없이 눈앞에서 죽어가는 - 사랑하는 그래서 반드시 지켜내고자 했던 - 딸을 보며 숨도 쉬지 못하고 오열하다가 대성통곡하는 마이클.
그 장면에 음악이 흐른다. 그리고 그 서정성 가득한 음악 위로 사랑했던 세 여인과의 아름다웠던 추억이 지나간다.
폭력에 의존해 가족을 지키려 할수록 오히려 육친을 하나씩 잃어버려야만 하는 아이러니, 그것을 알면서도 피가 피를 부르는 모순된 폭력으로 가족을 지키려는 몸부림이 부질없고 허망하다. 자신은 돈과 명예를 손에 쥐었지만 정작 사랑하는 가족을 하나 둘 떠나보내야만 하는...
추억하는 장면에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곡이 있을까? 피에트로 마스카니의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간주곡(Intermezzo)이다.
간주곡이란 극적인 오페라의 막간에 삽입되는 서정적인 음악으로 관객의 고양된 기분을 차분하게 전환시켜 주는 역할을 하는 곡이다.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는 단막 오페라인데도 클라이맥스 바로 앞에 이 곡을 삽입했다.
영화 대부 3편 중 알 파치노(마이클 콜레오네 역)의 대성통곡 장면 위로 흐르는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간주곡
영화 <대부>가 이탈리아의 섬 시칠리아 출신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는데, 오페라 작곡가 피에트로 마스카니 Pietro Mascani(1863~1945)도 이탈리아 사람이고 오페라 배경도 시칠리아다.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Cavalleria rusticana>는 우리말로 '시골 기사'라는 뜻이다. 시골 젊은이들이 마치 자기들이 귀족 기사라도 된 것처럼 (목숨을 걸 일도 아닌 것에) '목숨을 걸고 결투해서 결국 한 명이 죽고 마는 바보 같은 비극을 맞이한다'는 것을 비아냥거리는 제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