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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조 Sep 10. 2021

광복절, 프라하의 봄 _ 스메타나 교향시 <나의 조국>

초보자의 클래식 일기 10

  광복절 저녁, 라디오에서 'FM 실황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다. 세계 각지의 실황 녹음을 설명과 함께 들려주는 프로그램이다. 오늘은 매년 5월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서 열리는 음악제인 '프라하의 봄' 2021년 실황 <나의 조국>을 들려준다고 한다. 스메타나가 조국 체코에 대한 찬미를 담아 바친 애국적인 교향시로 광복절에 어울리는 곡이라는 설명과 함께. 그동안 전체 6곡 중 두 번째 곡인 <블타바(몰다우)>를 많이 들었었는데 전곡(全曲)을 감상할 기회다. 우리에게 익숙한 몰다우 Moldau는 독일어 이름이고 체코어로는 블타바 Vltava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블타바'라고 부르자.

 

교향시는 '교향적(symphonic)'과 '시(poem)'라는 두 가지 개념이 결합된 것으로 시(詩)적인 내용을 관현악 곡으로 만든 것을 말한다. 이러한 문학적 요소의 도입으로 훗날 국민주의적 정신을 지닌 작곡가들은 역사상의 인물이나 사건을 음악에 결부시켜 표현했다.
참고  [네이버 지식백과] (문학비평용어사전, 한국문학평론가협회)



 베드리히 스메타나 Bedrich Smetana(체코 1824-1884)는 보헤미아 지방에서 맥주 양조업자의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음악을 공부했다. 청년 스메타나는 당시 오스트리아의 지배하에 있던 조국의 민족의식에 눈떠, 독립운동을 격려하고 정체성을 고양하는 민족음악을 세웠다. 그리고 그 결정체가 교향시 <나의 조국>이다. 세계적으로는 드보르작이 더 유명하지만 스메타나가 지금까지도 체코 민족음악의 아버지로 추앙받고 있는 이유가 이 때문이기도 하다. 이후에도 체코는 독일과 소련의 계속된 간섭과 침공으로 고난을 겪었지만 그들의 민족 정체성을 지켜왔다.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스메타나는 50세였던 1873년부터 무려 7년에 걸쳐 이 곡을 작곡했는데, 그 기간 대부분은 들을 수 없는 상태였다. 베토벤처럼 오래도록 귓병을 앓아서 1874년 말부터는 완전히 청각을 잃었던 것이다. 그러니 <나의 조국>은 청각을 잃은 상태에서 완성한 장대한 민족 서사시인 것이다.


내 귀는 이제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
그렇지만, 내 나라를 위해 이 작품만큼은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 베드리히 스메타나 -



  외세의 침략과 압제 속에서도 민족적 자긍심과 정체성을 지켜왔다는 자부심을 확인하는 '프라하의 봄' 국민 음악 축제는 매년 스메타나의 기일인 5월 12일에 열린다. 물론 오프닝 곡은 <나의 조국>이다. 1946년에 시작되었으니 지금까지 75년을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문화적 저력이 부럽다.


  광복절에 들은 <나의 조국>은 대한민국이 아니라 체코다. 내 기억으로 우리 모두가 한마음으로 즐겼던 축제는 2002월드컵 밖에는 없었다. 올해는 광복 76주년. 이미 한참 늦었지만 우리도 이제는 이념, 학업, 과잉노동 그리고 부동산 투기라는 악순환의 고단함에서 광복(해방)하고, 8.15 광복절 즈음에 대한민국의 [나.의. 조.국.]을 가져보길 희망해 본다.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은 라파엘 쿠벨리크 Rafael Kubelik (체코 1914~1996)가 1990년 '프라하의 봄'축제에서 지휘한 라이브 녹음으들어보길 바란다.


스메타나(왼쪽)와 1990년 '프라하의 봄' 음악 축제에서 라파엘 쿠벨리크가 지휘한 체코 필하모닉 <나의 조국> 라이브의 음반

 

  라파엘 쿠벨리크는 스물두 살의 젊은 나이에 체코 최고의 오케스트라인 체코 필하모닉 지휘자가 되었다. 그리고 10년 뒤인 1946년 5월 12일에는 프라하 시민회관인 오베츠니둠의 스메타나 홀에서 <나의 조국>을 지휘한다. 역사적인 '프라하의 봄' 음악제가 첫 발을 내디딘 것이다. 그런데 소련의 주도하에 공산 정권이 들어서고 음악 활동이 억압받자 1948년 그는 영국 공연 길에서 망명을 선택한다.


그로부터 42년 뒤인 1990년 5월 12일 일흔여섯 백발이 된 그는 스메타나 홀의 지휘대에 다시 섰다. 길고도 외로웠던 망명 생활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미 은퇴한 뒤였지만 민주화를 이끈 바츨라프 하벨 대통령(프라하 국제공항의 이름도 바츨라프 하벨 공항이다)의 요청으로 44년 전 자신이 시작했던 '프라하의 봄' 무대에 다시 선 것이다.


  1989년 벨벳 혁명으로 드디어 민주화를 달성한 체코. 그리고 1990년, 민주화 이후 첫 '프라하의 봄' 음악 축제. 청중들은 벌써 감격해 있었고 지휘봉을 잡은 쿠벨리크의 가슴은 벅차올랐다. 그리고 그의 눈은 이미 촉촉해졌다. 오케스트라와 지휘자 그리고 청중이 혼연일체가 된 뜨거운 감동의 연주다. 인생 음반이다. 

벨벳 혁명은 1989년 체코(당시 체코슬로바키아)의 공산정권 붕괴를 불러온 시민혁명을 말한다. '벨벳 혁명'이라 부르는 까닭은 부드러운 천인 벨벳처럼 피를 흘리지 않고 평화적 시위로 정권 교체를 이뤄냈기 때문이다.



https://youtu.be/76R0N2GN6Jo

현장의 생생한 분위기와 뜨거운 감동이 그대로 전해지는 1990년 '프라하의 봄'에서 라파엘 쿠벨리크가 지휘한 체코 필하모닉의 <나의 조국> 라이브 영상


1곡. 비셰흐라트 Vyshrad (영상 05:15~)

  비셰흐라트는 몰다우강 연안에 우뚝 솟아 있는 고성으로 옛 영웅들의 전설이 숨 쉬고 있다. 영웅들의 무용담이 위풍당당하게 연주된다.


2곡. 블타바 Vltava (21:00~)

  우리가 제일 많이 듣는 제2곡 <블타바>는 프라하를 관통하는 강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은 <몰다우>지만 체코 이름으로는 <블타바>다. 이 강은 두 개의 물이 합쳐져서 하나의 강을 이루는데 마치 북한강과 남한강이 양수리(兩水里 두 개의 물이 만나는 동네)에서 만나 한강이 되는 것과 닮았다. 곡의 도입부에서 플루트클라리넷이 두 개의 작은 샘에서 흐르는 냇물을 묘사한다. 이내 합쳐진 두 냇물은 어엿한 강줄기를 이루며 도도하게(현악기의 유려한 연주) 흘러간다. 농부의 결혼식에서 흥겹게 춤을 추고 시골 들판을 지나 전설 속 요정들이 달빛 아래서 춤춘다. 이윽고 급류가 한바탕 격하게 소용돌이치다가 다시 장대한 흐름으로 제1곡의 비셰흐라트 성에 당당하게 도달한다.


그림엽서 속 블타바강(체코관광청 사진 제공)과, 블타바강의 유명한 다리인 카를교 위의 악사들(직접 촬영)


3곡. 샤르카 Sarka (32:45~)

  전설 속에 등장하는 조국을 구한 여전사다.


4곡. 보헤미아의 숲과 초원에서 (44:25~)

  체코의 아름다운 자연을 풍경화처럼 묘사한다.


5곡. 타보르 Tabor (58:25~)

  얀 후스 Jan Hus (1372~1415)는 고위 성직자들의 세속화를 강력히 비판하다가 화형 당한 종교 개혁가로 후에 마르틴 루터(1483~1546)에게도 영향을 준 인물이다. 뿐만 아니라 보헤미아의 독일화 정책에 저항했던 민족운동의 영웅적 지도자이기도 했다. 그래서 체코인들은 얀 후스를 그들 정체성의 상징, 자유의 억압에 대한 저항의 상징으로 여기고 있다. 보르는 그런 후스를 추종하던 교도들의 본거지였다.

체코 여행의 시발지인 구시가 광장에 있는 얀 후스 동상(직접 촬영)


6곡. 블라니크 Blanik (1:11:20~)

  블라니크 역시 후스 교도의 영웅들이 잠들어 있는 곳인데 이 6곡은 역사의 영웅들이 다시 부활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곡 해설 참고  [네이버 지식백과] (클래식 명곡 명연주, 황진규)  [더 클래식, 문학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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