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말러는 듣기 까다롭고 어렵다고 한다. 그의 교향곡 2번 <부활>(Resurrection)도 끝까지 듣기 쉽지 않다. 하지만 <부활>은 신선하고 충격적이면서도 끝내는 감동적이다. 처음부터 전 곡을 다 듣기 힘들다면 1악장, 또는 5악장 피날레를 여러 번 들어 보면 좋을 듯싶다. 일단 1악장 첫 도입부를 듣고 전율을 느꼈다면 성공이다. 식구들이 모두 잠든 한밤중에 헤드폰을 끼고 큰소리로 들어보기 바란다. 약 한 시간 반 뒤면 감동을 넘어 종교적 카타르시스를 체험할 수 있다.
그런데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부활> 음반은 내로라하는 지휘자의 것이 아니다. 빈 필하모니를 지휘한 길버트 카플란의 음반이다. 연주도 좋지만 넘사벽 유명 지휘자의 것이 아니라 음악을 전공하지 않은 평범한 사람이 꿈을 이뤄냈다는 일종의 대리 만족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1965년 뉴욕, 아직 소년티를 벗지 못한 스물세 살의 경영대학원 학생 카플란은 뉴욕 카네기홀에서 레오폴트 스토코프스키가 지휘하는 아메리칸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말러 교향곡 2번 <부활>을 들었다. 지휘자의 카리스마 넘치는 지휘봉이 침묵을 가르며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 이 학생은 놀라움과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마치 번개가 몸을 관통하는”듯한 경험을 한 것이다. 이때부터 카플란은 모두가 비웃을 무모한 꿈을 키워갔다. 바로 자신이 직접 교향곡 <부활>을 지휘하겠다는 꿈이다. 경영인이자 저널리스트였던 그는 서른아홉 살에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비로소 음악 공부를 시작한다. 그리고 20여 년이 지나 드디어 꿈을 이룬 위대한 사람이다. '돈도 많고 시간을 내기도 수월했겠지.'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지휘라는 게 돈과 시간만으로 되는 일인가? 그것도 한 시간 반이나 되는 대작, 말러의 <부활>을. 그는 결국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로 빈 필을 지휘했고 음반을 냈다. 그야말로 제대로 사고?를 친 것이다. 이 음반은 17만여 장 이상 팔리며 말러 음반 중 가장 많이 팔린 역사적 음반이 되었다. 그는 아름다운 열정으로 자신의 꿈을 이룬 실로 위대한 인물이다. 박종호의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 2』에서 이 이야기를 읽었다. 나는 귀가 아니라 눈으로, 소리가 아니라 글로 먼저 <부활>을 들은 셈이다.
길버트 카플란이 빈 필을 지휘한 말러의 <부활> CD
유달리 삶과 죽음의 문제에 끊임없이 집착했던 말러(사진_wikipedia)
구스타프 말러 Gustav Mahler(오스트리아 1860~1911)는 삶과 죽음의 문제에 집착하고 끊임없이 고민한 작곡가다. 죽음에 대한 고민과 인간 존재의 근원에 관한 철학적 탐구 결과를 음악으로 표현한 가장 훌륭한 음악가일 것이다. 그의 <부활>은 대규모 악단 편성을 통해 강렬한 선율과 다채로운 표정을 나타낸다. 항상 베토벤을 존경하며 의식했던 말러는 마지막 악장이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을 따라 하는 듯한 것이 영 못마땅했다. 하지만 결국에는 두 명의 독창자와 혼성합창단의 “부활하라, 부활하라, 용서받을 것이다”라는 가사의 노래를 통해 천국과 부활에 대한 그의 확고한 믿음을 웅장하게 그려냈다. ‘사람은 죽으면 영원히 살 수 있다.’는 생각으로 사후세계에 영원한 이상을 두었다. 하지만, 부활을 확신한다면 현세에서 이를 이렇게 애절하게 동경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5악장 피날레를 성악과 함께 듣노라면 천국의 세계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듯한 황홀한 감동을 경험한다. 하늘이 허락한다면 마지막 5악장 피날레를 들으며 임종하고 싶다. 더없는 위안이 될 듯하다.
나, 날아오르리라!
내가 얻어낸 날개를 달고
나 죽으리라! 살기 위하여!
부활하라! 그래, 일어나라!
너, 나의 마음이여, 일순간에 일어나라!
네가 극복해낸 고통이
그것이 너를 신에게 인도하리라!
지휘는 물론 겸손함까지 겸비한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보화, 마리스 얀손스(2019년 11월 심장마비로 타계)가 지휘한 로열 콘세르트 헤바우의 <부활>
리카르도 샤이가 지휘한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말러 교향곡 2번 <부활> 마지막 합창 피날레(한글 자막)
1악장 - Allegro Maestoso(빠르고 장엄하게)
바이올린과 비올라의 격렬한 트레몰로(빠르게 반복해서 떨듯이 하는 연주)로 시작하는 1악장은 말러 교향곡 1번 <거인>의 장례식으로, ‘Todtenfeier’(장례 제전)이라는 제목으로 따로 작곡한 것이지만 교향곡 2번의 1악장이 된 곡이다. 이 악장은 인생과 죽음에 대한 물음으로 시작하는데 이에 대한 답은 마지막 악장에 나타난다.
2악장 - Andante moderato(보통으로 느리게. 여유 있게 서두르지 않고)
‘한 순간 비추었던 햇빛’과도 같이 찬란하고 아름다웠지만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진 영웅의 일생을 회상한다. 1악장과 2악장의 분위기가 너무나 대조적이기 때문인지, 말러는 1악장을 연주한 뒤 최소한 5분을 쉬고 2악장으로 진행할 것을 지시했을 정도다.
3악장 – Scherzo(부드럽게 흘러가는 움직임으로)
인생이 그렇듯이 아름다운 순간은 그리 오래가지 않고 인간은 꿈에서 깨어나 현실 생활의 혼돈으로 돌아온다. 2악장과는 상반되는 음산한 아이러니를 연출함으로써 혼란스럽고 황폐한 삶을 그려낸다.
4악장 -Sehr feierlich, aber schlicht(아주 장엄하게 그러나 간결하게)
이 악장은 ‘Urlicht’(태초의 빛)이라는 알토 독창이 있는 악장으로 “하느님이 너에게 빛을 주실 것이다”라는 내용을 노래한다. 3악장의 음산하고 뒤틀린 분위기가 가시기도 전에 콘트랄토가 따뜻한 음색으로 나지막하게 노래를 시작한다. 이 악장에서 말러는 1악장에서 던진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나는 신에게서 왔으니 신에게로 돌아가리라”라는 절실한 신앙고백이 제시된다.
5악장 - Im Tempo des Scherzo. Wild herausfahrend(스케르죠 빠르기로. 거칠게 폭발하듯이. 느리고 신비롭게)
1부 Im Tempo des Scherzos (스케르초 템포로), 2부 Molto ritenuto. Maestoso, 3부 소프라노, 알토, 합창의 피날레의 3부로 나눌 수 있는 대단히 장대한 스케일의 피날레 악장이며 가장 감동적이며 중요한 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