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가 탄다', '애끊는다', '애간장이 끊어진다'는 말이 있다. 참으로 무서운 말이다. '애'란 뱃속 장기들 가운데 창자를 말하고 '간장'은 간을 말한다.
그러므로 '애'와 '간장'이 합쳐 만들어진 ‘애간장이 끊어진다’는 말은 ‘창자가 끊어질 듯한 슬픔’을 비유하는 말이다. 한자로는 단장(斷腸)의 슬픔이다. 우리 옛 노래 ‘단장(斷腸)의 미아리 고개’라는 노래가 있는데 이런 이별의 슬픔을 담고 있는 노래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중 한산도에서 남긴 시도 있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차에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애를 끊나니.”
단장(斷腸)이라는 말이 유래한 고사(故事)는 다음과 같다. 옛날 중국 진나라의 환온이 촉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군사를 배에 싣고 양자강 협곡인 삼협을 지날 때였다. 배가 잠시 육지에 닿았을 때 부하 하나가 원숭이 새끼 한 마리를 붙잡아 배에 실었다.
배가 떠나자 뒤따라온 어미 원숭이는 배에 오르지 못하고 필사적으로 배를 쫓아왔다. 배가 100여 리를 나아간 뒤 강기슭에 닿았을 때 어미 원숭이는 서슴없이 배에 뛰어올랐으나 그대로 죽고 말았다.
그 어미 원숭이의 배를 갈라 보니 너무 애통한 나머지 창자가 토막토막 끊어져 있었다.
사람들은 비탈리의 <샤콘느>에 '세상에서 제일 슬픈 클래식'이라는 별칭을 붙여놓았다.
하지만 나는 오펜바흐의 <재클린의 눈물>이 제일 슬프게 느껴진다. 딸내미에게 물었더니 “나는 동요 <섬집 아기>가 제일 슬프던데.”라고 했다. 엄마가 아기를 혼자 두고 일하러 나간 사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잠이 든다는 가사다. 생각해 보면 아기에게 엄마의 상실보다 더 큰 슬픔이 어디 있을까 싶어 공감이 간다.
아마 딸내미에게도 이와 비슷한 경험이 있었나 보다. 사실 감정이란 게 사람마다 또 그때그때의 기분에 따라 다른 것이니 감정에 순서를 매기는 “제일”이라는 말 자체가 어폐 있는 말일 것이다.
베르너 토마스 미푸네의 <재클린의 눈물> CD 재킷
재클린 뒤프레 Jacqeline Dupre(영국 1945~1987)는 20세기 중반 뛰어난 재능과 청초한 외모로 인기를 누렸던 첼리스트다. 그러나 그녀는 영화 주인공처럼 불꽃같은 짧은 삶을 살았다.
1945년 영국 옥스퍼드에서 태어나 다섯 살 때부터 첼로를 시작하고 열여섯 살에 런던에서 데뷔했다. 그녀는 완벽한 테크닉과 풍부한 음악성 그리고 당당하고 큰 스케일을 가지고 있어서 당시 천재 첼리스트의 반열에 올랐다.
1967년 스물세 살에 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인 다니엘 바렌보임과의 결혼으로(재클린은 유대인인 바렌보임과 결혼하기 위해서 기독교에서 유대교로 개종까지 했다.) 세상의 모든 행복을 한 몸에 독차지하는 듯했다.
그러나 한창 전성기이던 스물일곱 살에 다발성 뇌척수 경화증(온몸이 굳어지는 병)이 나타나 스물여덟 살부터는 연주 활동을 중단해야만 했다. 피아니스트인 라두 루프의 부인인 라이자 윌슨은 당시를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그녀는 혼자서 외출하는 일이 잦았어요. 쇼핑을 하거나 들판을 거닐거나 했죠. 그러다가 넘어지면 지나가는 사람이 도와줄 때까지 움직이지 못했답니다. 그러나 늦게 돌아온 데 대해 남편이 화를 내면 ‘쇼핑하다 보니 입고 싶은 옷이 많았어요.’라고 거짓말로 둘러대곤 했어요...”
결국 그녀는 길거리에서 쓰러진 뒤에야 병원에서 제대로 된 검사를 받고 다발성 경화증이라는 병명을 진단을 받았다. 그녀는 이제 투병이라는 가혹한 터널을 걸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인생의 화양연화와 같은 시기에 하필이면 온몸이 굳어지는 병으로 분신과도 같은 첼로를 내려놓아야만 했던 것이다.
사랑하는 남편으로부터도 외면당하는 비극을 겪어야만 했던 재클린은 얼마나 억울하고 원망스럽고 비참했을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후 14년 동안 고독한 병과의 싸움 끝에 남편 바렌보임까지 곁을 떠나고, 결국 1987년 42년이라는 짧은 생을 마쳤다. 천재는 단명인가?
그녀의 이름을 제목으로 한 <재클린의 눈물>은 시대적으로 재클린 뒤프레(1945~1987) 보다 훨씬 오래전에 살았던 오펜바흐(1818~1880)가 작곡한 곡이다. 타임머신을 타지 않는 한 시간적으로 말이 안 되는 것이다.
사실은 이렇다. 베르너 토마스 미푸네(1941~)라는 독일의 첼리스트가 오펜바흐가 이미 작곡해 놓은 이 곡을 연주하여 재클린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했고, <재클린의 눈물(Jacqueline’s Tears)>이라는 이름을 붙여 세상에 알렸던것이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애잔함과 특히 가슴 밑바닥을 훑어내며 터질 듯이 쏟아져 나오는 마지막 부분은 생명의 불꽃을 놓지 않으려 몸부림치다가 끝내 놓을 수밖에 없었던 재클린의 가혹한 운명을 연상케 한다. 재클린의 안타까운 사연을 생각하며 이 연주를 들으면 그 애잔함에 눈가가 촉촉해질 때가 있다.
한창 전성기인 젊은 나이에 하늘나라로 간 재클린은 이 곡을 듣고 있을까?
재클린이 불꽃같이 사랑했던 남자, 다니엘 바렌보임 Daniel Barenboim(아르헨티나 1942~)은 몸이 말을 듣지 않는 재클린의 남편을 향한 끊임없는 갈구에도 불구하고 병든 그녀에게 무관심했으며, 이후 임종과 장례식에도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바렌보임은 재혼하였고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로 승승장구하여 현재는 유럽 최고의 예술 권력자로 군림하고 있다.
'마지막까지 사랑을 지켜갈 수 있는 것은 죽음'일 때가 있다. 그러나 재클린은 죽음으로도 사랑을 지키지 못했다. 아니, 재클린은 사랑을 지켜냈다. 나머지는 살아남은 자의 몫일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