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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조 Nov 19. 2021

하동 소년이 좋아하는_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2번>

초보자의 클래식 일기 15

  아내의 오랜 친구가 하동 악양 들판이 내려다보이는 동네에 살고 있다. 십여  전쯤  부부가 아들과 함께 우리 집에 놀러 온 적이 있었. 그때 귀여웠던 아이가 지금은 어엿한 소년이 되었다. 마 전에 하동에 다녀온 아내는 "얼마나 맑고 던지~"하며 연신 칭찬을 해댔다.  소년이 피아노를 무척 잘 쳐서 피아노 영재 교육을 받고 있다고 한다.


  소년이 좋아하는 음악가는 라흐마니노프. 아빠의 연구년으로 미국에 1년 머무르는 동안 뉴욕에 있는 라흐마니노프의 묘지를 찾아가 보기도 다고 한. 부디 제2의 조성진 같은 훌륭한 피아니스트로 성장하길 기원한다.



  마지막 낭만주의자로 알려져 있는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Sergey Rachmaninov( 러시아 1873~1943)는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였다. 그는 거의 2m에 이르는 큰 키에 손가락을 쫙 펴면 30cm나 되는 무지막지 손을 가지고 있었다. 그 거구와 큰 손에서 나오는 연주는 힘이 넘치면서도 화려해서 1920~30년대에는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명성을 날렸을 정도였다.


  그런 라흐마니노프가 1901년 4월 스물여덟 살에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완성하고 자신이 직접 피아노를 연주하여 초연하였다. 반응은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곡을 쓰기 전 그는 극심한 슬럼프에 빠져 있었다. 1897년에 발표한 <교향곡 1번>이 비평가들의 무자비한 혹평을 받은 영향이 컸다. 3, 4년간 심한 노이로제와 우울증을 겪었던 것이다. 물론 작곡도 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의사 니콜라이 다르 박사를 만나 집중적인 암시 최면 치료를 받고 우울증에서 극적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세르게이, 당신은 그 어느 것보다도 뛰어나고 훌륭한 최고의 작품을 쓸 것이오!

  다르 박사가 치료하면서 암시한 '뛰어나고 훌륭한 최고의 작품'이 바로 <피아노 협주곡 2>이다. 라흐마니노프를 일약 세계적인 스타의 반열에 올려놓은 기적과 같은 곡이다. 그리고 지금은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클래식이 되었다. (2015 한국인이 사랑하는 클래식 리퀘스트, KBS) 안동림은 그의 책 『이 한 장의 명반』에서 라흐마니노프는 "러시아 낭만과 음악의 완숙한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20세기에 유입한, 풍요하고 감미로운 서정성과 당당하고 스케일 큰 극적인 피아노 협주곡을 남겼다"고 높이 평가했다.



   클라우디오 아바도 Claudio Abbado(이탈리아 1933~2014)는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클래식 드림팀으로 만들어 놓은 세계적인 지휘자다. 그가 '2008년 루체른 페스티벌'에서 피아니스트 엘렌 그리모 Helene Grimaud(프랑스 1969~ )와 함께 라흐마니노프는 <피아노 협주곡 2번>을 협연했다. 마치 '아빠와 딸'처럼.

  

  나이가 서른여섯 살 차이 나는 아바도와 그리모는 부녀지간 이상의 케미를 보여주었다. 지휘자 아바도를 쳐다보는 그리모의 눈빛에는 존경과 신뢰가 완연하고, 지휘하는 아바도의 은 자꾸만 피아노 쪽으로 향한다. '내가 잘 맞춰줄 테니 걱정 말아~'하는 듯한 모습이다. 연주를 마친 후 아바도의 모습은 마치 어여쁘성장한 딸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아빠 같다고 할까?


  오케스트라와 피아노 그 어느 쪽도 자신만을 뽐내려 하지 않는다. 서로에 대한 배려와 신뢰가 좋은 연주를 낳았다.



  엘렌 그리모는 '늑대를 키우는 피아니스트'로 알려져 있다. 프랑스 태생인 그녀가 1991년 미국으로 이주하여 활동하던 중 1999년 '늑대보호센터'를 설립해서 늑대 보호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늑대와 피아니스트', 얼핏 상상하기 어려운 조합이다.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녀의 여행 음악 에세이 특별수업』(엘렌 그리모 지음, 김남주 번역)에서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책에는 연습과 공연이라는 꽉 짜인 일정에서 벗어나 재충전의 여유를 가지려는 '자유에 대한 갈증'이 곳곳에 드러나 있다. 야생의 늑대에 본능으로 잠재하는 (것으로의) 자유, 그 자유를 갈망하고 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썼다.

판에 박힌 일상이 생의 약동과 경이와 열광을 대신하도록 방기했다는, 내 시간에서 날선 감각이 거세되어 버렸다는 자각이 머릿속을 스쳤던 것이다. ~~ 그러자 바닷물 속으로 뛰어들고 싶은 욕구가 몰려왔다. 사우스살렘에 있을 때 가서 늑대들과 함께 달려야 한다는 긴박한 충동에 휘둘렸던 것처럼.(118p.)

'판에 박힌 일상'에 익숙해져 '날선 감각'이 무뎌지는 것을 경계했다.


진정한 행복이란 피상적인 행복에 만족하지 않는 데 있다. 훌륭한 그림이나 시나 노래에 스스로를 헌신하듯 행복에 자신의 삶을 바쳐야 하는 것이다.(248 p.)

그리고 '피상적'이지 않은 '진정한 행복'을 위해 피아노 늑대 보호 활동 '자신의 삶을 바치'고 있.

  


https://youtu.be/uJRHht55E1M?si=WUQ3Qplj02EUZGhZ

2008년 스위스 루체른 페스티벌에서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지휘하는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엘렌 그리모의 연주 


  1악장 Moderato(보통 빠르게) (0:30~)

깊고 묵직한 피아노 독주가 점점 소리를 키우면서 문을 열면 현악기 총주가 굽이치는 황금들녘과 같은 선율을 장엄하게 펼친. 감미롭고 때로는 화려한 피아노와 유려하면서도 웅장한 오케스트라 선율이 악장 내내 이어진다. 후반부에(9:00~) 아스라이 들려오는 호른 소리도 참 아름답다.


  2악장 Adagio sostenuto(느리게 충분히 끌어서) (12:00~)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악장이다. 오케스트라가 느리고 서정적인 멜로디를 조심스레 펼치 피아노는 플루트, 클라리넷과 앙상블하여 고독하고 아련한 선율을 시(詩)처럼 읊는다. 마치 맑은 물에 잉크 방울이 번지 소리가 몸속으로 스며든다. 피안의 세계로 들어가는 듯한 몽환적 분위기다. 오케스트라와 피아노가 주고받는 연주는 아름다움 클라이맥스에 이르고 마침내 끝부분 피아노 독주에는 그만 넋을 잃는다.


  3악장 Allegro scherzando(빠르고 경쾌하게) (23:25~)

시작부터 빠르고 경쾌해서 고개를 까딱이게 한다. 이어 비올라가 연주하는 부분(25:18~)은 2악장의 선율만큼이나 아름답고 매력적이다. 연주의 볼륨은 점점 커지고  을 향해 나아가는 부분(33:15~)에서는 아찔한 신기(神技)의 피아노 테크닉을 보여다. 그리고 마지막 절벽으로 밀어붙이는 피아노와 오케스트라 총주는 거침다. 가슴이 뻥 뚫린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최고의 명반으로 손꼽히는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의 CD(왼쪽)와 라흐마니노프가 1929년 직접 연주한 CD



악장 설명 참고  [더 클래식, 문학수]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 박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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