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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조 Nov 05. 2021

2020 평창대관령 음악제_베토벤 교향곡 6번 <전원>

초보자의 클래식 일기 14

  오래전부터 가봐야겠다고 생각만 하고 있었던 평창대관령 음악제가 올해(2020년)로 벌써 17회 째라고 한. 음악제 주제는 탄생 250주년을 맞는 베토벤(1770~1827)이 했다는 말 ‘그래야만 한다!’ 당연히 음악제의 많은 레퍼토리는 베토벤이다.

 

  음악제 예매는 일찌감치 했는데 하필이면 장마와 겹쳐서 매일 비가 내렸다. 공연 당일에도 강원 지역에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진다는 일기예보 때문에 많이 망설였지만 결국 가기로 했다. 가는 날은 다행히 폭우가 쏟아지지는 않고 가랑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장소는 평창 알펜시아 리조트. 알펜시아는 동계 올림픽이 열렸던 곳으로 우뚝 솟은 스키점프대가 보이는 널찍한 곳이었다. 숙소에 짐을 풀고 아내와 함께 속을 산책했다. 비는 부드럽고 순하게 내렸다. 코로나에 갇혀 잔뜩 움츠러들었던 마음이 누그러지며 한결 넉넉해졌다.


  그런데 알펜시아 음악 텐트 연주회장은 실망스럽게도 야외라기보다는 거의 실내와 다를 바 없었다. 연주자와 관객들 모두 텐트 안에 있어야 하고 게다가 텐트는 유리문으로 닫히는 구조였다. 덕분에 비가 와도 큰 불편은 없었지만, 내가 기대했던 하얀 텐트와 파란 잔디밭 야외무대는 아니었다.


  아주 오래 미국 연수 중 야외 음악회를 관람한 후 잔디밭 야외 음악회에 대한 로망이 생겼다. 워싱턴 D.C. 였는데, 근교 어디의 공연장이어서 몇몇이 전철을 타고 같이 갔었다. 오케스트라는 커다란 하얀 텐트 아래서 연주하고 관객들은 경사진 언덕 잔디밭에 삼삼오오 자리를 잡고 연주를 듣는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평창 알펜시아 야외 음악 텐트 내외부 모습 - 오른쪽 사진의 멀리 보이는 흰 기둥이 스키점프대(사진_평창대관령 음악제 홈페이지)



  드디어 연주회장 입장. 음악 텐트가 아주 넓지는 않았는데도 오케스트라와 관객의 거리를 좁힌다고 오케스트라가 무대가 아닌 관객석 앞에 자리했다. 그리고 지휘자는 관객석 쪽을 바라보았고 대신 무대에는 관객이 앉도록 했다. 내 자리는 무대가 아닌 정상적인 관객석이었다.


  연주회 첫 곡은 아드리앙 페뤼숑 Adrien Perruchon(1983~ )이 지휘하는 평창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윤이상 <인상(Impressions)>이었다. 처음 듣는 <인상>낯설고 독특했다. 이해하기도 어려웠다. 마치 연주 시작 전에 연주자들이 각자 악기를 튜닝하고 연습하며 내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뭔가 일치감 없이 부조화한 듯하고 새들이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지저귀는 것처럼 악기 소리가 날아다니는 것 같기도 했다. 당황한 마음을 추스르고 좀 들어보려고 하는데 연주가 끝나 버렸다. 온통 날씨에만 신경 쓰느라 낯선 레퍼토리인데도 미리 들어보지도 않고 갔으니 내 잘못이다.


https://youtu.be/UZ9g908-r8s 

2020년 평창대관령 음악제 연주 실황_ 윤이상 <인상>



  두 번째 곡인 베토벤 교향곡 6번 <전원 Pastorale> 역시 페뤼숑이 지휘했다. 친숙한 선율이 시작되자마자 <인상>에서 당황했던 마음이 확 풀렸다. 안도감마저 들었다. 아드리앙 페뤼숑은 젊은 프랑스 음악가인데 팀파니 연주자에서 지휘자로 변신한 이력의 지휘자다. 그래서인지 팀파니 연주자가 무척 열심이고 실력도 뛰어났다. 특히 4악장 ‘천둥·폭풍우’에서 팀파니 연주는 훌륭했다.


  빗속의 <전원>은 축축한 연주회장 분위기를 이내 보송보송하고 맑게 바꾸어 놓았다. 연주가 끝나고 열심히 박수를 보냈지만 오케스트라는 앙코르 없이 바로 퇴장했다. 공연장을 나오면서 피아니스트 손열음과 우연히 마주쳐 얼굴을 보며 인사를 하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고 숙소로 돌아왔다. 아내는 손열음 사인을 받지 않은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평창대관령 음악제의 음악예술감독인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고향은 강원도 원주다. 음악과 강원도에 대한 사랑으로 이 음악제를 맡고 있는 듯하다. 손열음도 어디에선가 말했듯이 "평창대관령 음악제가 루체른 페스티벌 같은 훌륭한 세계적인 음악제로 발전하기"를 기대한다.



  교향곡 5번 <운명>과 6번 <전원>을 연이어 작곡한 1807~8년은 베토벤의 나이 서른 일고 여덟이었다. 그리고 귓병은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치명적인 상태였다. 오죽하면 이미 1802년에 요양지 하일리겐슈타트 Heiligenstadt에서 동생 앞으로 유서를 써놓았었을까?


  로맹 롤랑은 베토벤에 대해서 이렇게 썼다. "베토벤의 일생은 태풍이 몰아치는 하루와도 같았다." 유서를 작성했었던 바로 그 하일리겐슈타트 '전원'을 산책하며 자연과 벗하지 않았다면 고통의 무게를 견뎌낼 수 없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고난의 '운명'에서 잠시 벗어나 자연의 교향곡 <전원>을 잉태하고 낳았다. 


유리우스 슈미트가 베토벤의 산책하는 모습을 상상해서 그린  [산책하는 베토벤]  (사진_wikipedia)


  음악 전문기자 문학수는 그의 책 『더 클래식』에서 <전원>을 설명하며 베토벤의 교향곡 5번과 6번은 '이란성쌍생아'라고 했다. 1808년 12월 베토벤이 직접 지휘하여 두 곡을 한꺼번에 초연해서 탄생했지만, 두 곡의 분위기가 사뭇 다르기 때문에 '쌍둥이'지만 '이란성'이라고 한 것이다.  <운명>은 '인간의 투쟁과 승리'를 <전원>은 '자연에서 받은 감동'을 표현하고 있다.



https://youtu.be/AbIQB7TwMeY

내가 관람했던 2020년 평창대관령 음악제 연주 실황_베토벤 교향곡 6번 <전원>


  <운명>은 후대 사람들이 붙인 별칭이지만, <전원> 베토벤이 직접 붙인 제목이다. 그리고 각 악장에도 제목을 붙여 놓았다.


1악장 '전원에 도착했을 때의 상쾌한 기분'
2악장 '시냇가의 정경'
3악장 '농부들의 즐거운 모임'
4악장 '천둥·폭풍우'
5악장 '목동의 노래·폭풍우가 지난 뒤의 감사와 기쁨'


  1, 2악장 끝에는 잠깐 쉬는 시간(휴지부)이 있지만 3악장부터 5악장 까지는 쉬지 않고 이어서 연주된다. 별도의 악장 설명 없이 위의 악장 제목만 참고로 해서 들어도 충분한 감상이 될 듯하다. 다만 베토벤이 <전원>을 작곡을 하면서도  청력 이상 때문에 들을 수 없었던 자연의 소리(바람 소리, 시냇물 소리, 꾀꼬리와 뻐꾸기 등 각종 새소리, 천둥소리)에 귀 기울이면 감사와 감동이 더할 듯하다. 짜증 나거나 답답할 땐 <전원>을 들어보자. 마음 한복판에 평온이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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