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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조 Oct 15. 2021

가을 옥정호, 쓸쓸한 빈집_브람스 <교향곡 4번>

초보자의 클래식 일기 13

  10월 초 오후, 인천을 출발한 차 기울어가 해를 놓치지 않으려고 쉼 없이 달렸다. 하지만 서해안고속도로 부안 톨게이트를 빠져나오기도 전부터 는 이내 어둠을 밀고 가야만 했다. 여름 내내 길었던 해의 길이가 하지(夏至)를 지나면서 노루꼬리만큼씩 짧아져 결국에는 낮과 밤의 길이를 역전시켜 놓았던 것이다.

  

  시골에서 더 시골로 향하는 도로는 한산했는데 황금들녘일 그 좋은 경치를 볼 수 없어 아쉬웠다. 목적지인 S의 처가는 옥정호반 근처로, 경치가 매우 아름답다는 자랑을 많이 들었다. 그렇지만 저녁에라도 옥상에 올라가 그 멋진 옥정호를 구경하려던 계획은 틀어졌다. 이미 해 넘어간 시골은 너무 어두웠기 때문이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넓은 옥상 한편에 불을 밝히고 식탁을 차려 늦은 저녁을 먹었다. 더없이 훌륭한 만찬이다. 캠핑 경력도 많고 손이 야무져서 무슨 일이든 뚝딱 잘 해내는 S덕분이었다. 막힘없는 밤하늘과 상쾌한 가을 공기 그리고 적당한 취기는 네 남자의 감성의 문을 열어놓았다.


  급기야 K가 핸드폰에서 음악을 틀었다. 크리스 보티 Chris Botti(미국 1962~)의 트럼펫 연주. 트럼펫 소리가 가을밤과 이렇게 잘 어울리는지 몰랐다. 이어지는 노래들 <가을 우체국 앞에서>,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향수>,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 등등. 그리고 <잊혀진 계절>로 '10월의 마지막 밤'에까지 이르고 나서도 아재들의 감성 발산은 오래도록 계속되었다.



  다음날 아침, 물안개 피어오르는 옥정호를 앞마당처럼 품은 마을은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어젯밤 어둠 속에 있던 S의 처가도 그제야 온전한 모습을 드러냈다.


물안개 피어오르는 아침 옥정호

  얼마 전까지만 해도 두 어르신들이 사셨었 자식과 손주들이 왁자지껄 드나들었을 시골집. 이제는 누구라도 와서 사람의 온기만이라도 넣어주기를 기다리는 쓸쓸한 빈집이 되어 버렸다.


  자식들이 출가하여 집을 떠난지는 오래전이었다. 할머니가 건강이 나빠져 요양원에 가시게 되었고 홀로 남게 된 할아버지는 식사도 제대로 못하시더니 급기야는 병이 나셔서 먼저 돌아가셨던 것이다.


  지어진지 십 수년이 지났지만, 집은 어르신들의 부지런하고 깔끔했던 손길을 그리워하듯 여전히 단정하고 깨끗했다. 아련한 추억을 간직한 채.

 

   '한여름 소나기 쏟아져도 굳세게 버틴 꽃들'과 '지난겨울 눈보라에도 우뚝 서있는 나무들'같았던 어르신들과 그들이 사셨던 '세상에 아름다운' 이 쓸쓸한 빈집들은 '얼마나 오래 남을까'. (<가을 우체국 앞에서> 가사 인용)



  빈집은 그냥 빈집이 아니다.


  그 어린 자식들의 온세계이고 부모의 인생이며 집안의 내력이자 마을의 역사이다. 추억의 장소이고 돌아와 쉴 수 있는 영육(靈肉)의 보금자리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엄마의 가슴이다. 지금은 사라진 나의 시골집도 그랬다. 


  돈만 된다면 미련 없이 팔아버리고 갈아타는 도시의 아파트와는 차원이 다르다. 아파트 키즈들은 영원히 가질 수 없다.


S의 처가로 향하는 도로(왼쪽)와 단정한 모습의 처가(가운데) 그리고 옥상에서 보는 옥정호
옥정호는  전라북도 임실군과 정읍시에 걸쳐있는 호수로 1965년 섬진강 다목적댐을 만들면서 생긴 거대한 인공호수이다. 유역면적이 763㎢이며 만수위 면적이 26.3㎢로 총저수량은 4억 6천만 톤에 달하여 호남평야를 적셔 곡창지대로 만드는 다목적 댐이다.
명칭 유래: 섬진강댐 근처에 옥정리가 있다. 조선 중기 한 스님이 이곳을 지나다가 '머지않아 맑은 호수, 즉 옥정이 될 것'이라고 예언하여 옥정리라 하였다. 여기에서 유래하여 옛날에 운암호라 부르던 것을 옥정호라고 부르게 되었다.
[Daum 백과, 출처_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https://youtu.be/7tSdrL7PZBM

CHRIS BOTTI IN BOSTON (LIVE)


https://youtu.be/cCyJNklLauw

<가을 우체국 앞에서>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 OST



 가을이면 많은 사람들이 브람스를 꺼내 들으며 여름내 지친 마음을 다독인다.


  독일 음악의 3B(바흐, 베토벤, 브람스)로 일컬어지기까지 하는 요하네스 브람스 Johannes Brahms (독일 1833~1897). 그는 자기가 써놓은 곡에 대해서도 자신 없어했던 내향적이고 소심한 사람이었다. 심지어 그는 첫 교향곡을 완성하는데 (베토벤을 의식해서인지) 거의 20년이란 긴 세월이 걸리기도 했다.


  그는 스승 슈만 Schumann(독일 1810~1856)의 부인 클라라 Clara(독일 1819~1896)를 사모했고 클라라 역시 그를 사랑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슈만이 일찍 죽은 뒤에도(당시 클라라는 37세의 젊은 나이였고 77세에 사망했다), 둘은 서로 애틋해하면서도 선을 넘지 않는 음악적 동지이자 평생지기로 남았다.


  사모하던 한 여인을 두고 독신으로 살았던 브람스. 그는 평생 외롭고 쓸쓸하게 살았다. 그래서 '자유롭게 그러나 고독하게'(F.A.E. _ Frei Aber Einsam의 약자)가 브람스의 모토로 알려졌는지 모르겠다. (사실 'Frei Aber Einsam'은 브람스의 절친인 유명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요아힘이 자주 입에 오르내렸던 말이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브람스의 음악에는 유독 쓸쓸하고 가을 냄새를 물씬 풍기는 곡들이 많다. 예를 들면 <교향곡 3번> 3악장은 옷깃을 세우게 하는 소슬바람 같은 쓸쓸한 서정으로 가득하다. <교향곡 4번> 1악장의 도입부는 또 어떤가? 아련한 추억을 되새기게 하는 애수에 찬 선율을 쏟아낸다. 가을 한복판에서 쓸쓸히 걸어가는 남자의 뒷모습 같다.  



  <교향곡 4번>은 브람스의 나이 52세인 1885년에 완성한 그의 마지막 교향곡이다. 자신의 지향이자 넘어야 할 산으로 여겼던 베토벤 교향곡 같은 환희의 휘날레는 없다. 대신 브람스의 삶을 관통했던 쓸쓸함이 그대로 녹아있다. 1악장의 앞부분만 들어도 가을 속으로 깊숙이 빠지게 된다.


https://youtu.be/uUV5K20xuN4?si=znRVc1VIExUJqVK-

만년의 카를로스 클라이버가 1996년에 지휘한 바이에른 방송 관현악단의 브람스 <교향곡 4번>


  1악장 Allegro non troppo(빠르지만 지나치지 않게)는 현악기가 애수에 찬 비장한 선율을 연주하며 시작한다. 악장 전체적으로 체념과 슬픈 분위기가 감돈다.


  2악장 Andante moderato(적당히 느리게)는 저 멀리 들려오는 호른에 이어 목관이 합세하며 주제를 연주한다. 2악장답게 느리면서도 아름다운 악장으로 현악기와 관악기의 앙상블을 귀여겨들을 만하다.


  3악장 Allegro giocoso(빠르고 즐겁게)는 트라이앵글까지 사용한 밝고 쾌활한 악장이다. 이전의 1, 2악장과 뒤이어 나올 4악장과는 뚜렷한 대비를 이루는 리드미컬하고 활달한 분위기로 축제를 방불케 한다. 지휘자 클라이버도 밝게 웃음을 짓고 있으며 허공을 가르는 지휘봉은 한결 가볍고 힘차다.


  4악장 Allegro energico e passionato(빠르고 힘차게, 그리고 열정적으로) 흥겨운 축제는 끝났다. 트럼본이 비통하지만 장엄하게 문을 연다. 뒤이어 지휘자의 명확한 지시에 따라, 비장하게 걸어 나가는 발걸음을 연상시키는 주제를 연주한다. 중간에 여릿한 관악기 솔로가 있지만 전체적으로 비장하고 단호하다. 곡의 하이라이트이며 브람스의 예술성을 집약하고 있는 악장이.



악장 설명 참고  [더 클래식, 문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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