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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조 Dec 18. 2021

신의 날_막스 브루흐<콜 니드라이 Kol Nidrei>

초보자의 클래식 일기 17

이 밖에 알아내지 못한 죄도
모두 용서하여 주십시오.


몇 년 전 신부님 강론이 마음 깊이 들어왔다.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모퉁이에 있는 커다란 돌은 하나만 빼내도 단박에 티가 나지만 길가의 무수한 잔돌은 몇 개쯤 주머니에 담아 간다 해도 아무런 티도 나지 않습니다. 우리의 작은 잘못(죄)이 그럴 수 있습니다. 무서운 것은 그것이 습관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살면서 의도하든 의도치 않든 이런저런 잘못(죄)을 저지르게 된다. 그런데 겉으로 드러나는 커다란 죄는 그에 합당하게 세상의 벌도 받고 반성도 하게 되지만, 자잘한 죄는 본인만 알거나 또는 본인도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도 많다. 당연히 그에 합당한 벌도 받지 않는다. 그러니 그런 잘못은 잘못인지도 모르면서 수없이 많이 저지르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무섭다는 것이다.



"이 밖에 알아내지 못한 죄도 모두 용서하여 주십시오."


이 말은 가톨릭 교회에서 고해성사를 할 때 고해자(신자)가 사제에게 모든 죄를 고백하고 나서 덧붙이는 말이다. 고해성사에서 빼놓아서는 안될 말이다.

  


<콜 니드라이 Kol Nidrei>는 우리말로 <신의 날>이라는 뜻이다. 유대인이 '속죄의 날'에 부르던 히브리 성가 <콜 니드레 Kol Nidre> - 우리말로는 <모든 서약들> - 를 막스 브루흐가 "관현악과 하프가 함께하는 첼로를 위한 아다지오"로 만든 협주곡이다.


유대인들은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못했는데, '속죄의 날'인 '욤 키푸르(Yom Kippur)'날에 대제사장이 성전에 들어가 1년에 딱 한 번 하느님의 이름을 불렀다고 한다. 그 '속죄의 날'에 그들은 자기들이 지키지 못한 <모든 서약들>에 대해 반성하고 용서를 빌며 새로운 출발 다짐했다고 한다.


그러니 '속죄의 날' 은 '새 날'이다.



막스 브루흐 Max Bruch (독일 1838~1920)는 <바이올린 협주곡 1번>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그는 낭만주의 시대 작곡가답게 감정의 아름다운 표현에 충실했지만 과하지 않았고, 오히려 종교적 열정과 온화하고 우아한 멜로디를 보여주는 작곡가였다.


43살이던 1881년 그는 <콜 니드라이>로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나중에는 그로 인해 명예가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했었다. 이 곡이 유대교 성가 선율을 주제로 한 곡이었기 때문에 그에게 유대인의 피가 흐를 것이라고 의심받았던 것이다. 실제로 그가 죽고 난 후 나치 정권 아래서는 그의 곡 연주가 전면 금지를 당하는 수모를 기도 했었다. 그러면서 그에 대한 자료도 많이 없어졌다고 하니 지금까지 브루흐가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콜 니드라이>는 약 10분 남짓한 짧은 곡으로 종교적 성스러움과 동양적 애절함이 깃들어 있다. 짧지만 듣고 나면 막 고해성사를 마친 듯 경건하면서도 편안한 마음이 된다.

 

https://youtu.be/_Fo13wIkFKM

안갯속에서도 뚜렷이 드러나는 목련 같은 첼로 연주가 돋보이는 피에르 푸르니에 PIERRE FOURNIER 연주


<콜 니드라이>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전반부]

오케스트라의 현과 목관이 느리고 비통하게 시작하면 곧바로 첼로가 이어받아 기도하듯 경건하게 주제를 연주한다. 이 경건한 주제는 이윽고 오케스트라의 장엄하고 풍부한 선율로 이어지며 첼로는 깊고 호소력 있는 음색을 그대로 드러낸다.


[후반부(5:30)]

하프 연주를 배경으로 전반부보다는 한결 환해지고 약간은 격한 느낌도 든다. 마치 고해성사를 마치고 난 후 한결 홀가분하면서도 깨끗해진 마음과 같다. 마지막은 쓸쓸히 끝난다.



커버 이미지 _ 폴 고갱 <신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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