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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조 Jan 01. 2022

냉정과 열정 _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초보자의 클래식 일기 18

나의 어릴 적 성탄절 이브는 산타 할아버지를 기다리는 밤이 아니었다. 엄마와 함께 공소에 다녀와야 하는 날이었다. 예수님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엄마가 가자하니 따라나서긴 했지만, 미사에 간다는 생각보다는 사탕과 과자를 얻어먹을 수 있다는 설렘이 앞섰다.

(공소_신자수가 적어서 신부가 상주하지 않는 작은 천주교 건물로 교우들이 본당 신부를 대리하는 공소회장을 중심으로 공소예절(성찬의 전례가 빠져 미사는 아니다)을 행하는 곳


엄마와 엄마 또래의 서너 명 아주머니들과 함께 공소까지 오가는 길을 걷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왕복 20여 리가 훌쩍 넘는 거리였는데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에게는 꽤 먼 길이었다. 길은 나름 널찍한 신작로였지만 차는 물론 오가는 사람 하나 없이 눈 밟는 소리만 뽀드득뽀드득 크게 들렸다. 하얗게 쌓인 눈이 달빛을 받아 어둠을 밝혀 주었고 뽀드득뽀드득 눈 밟는 소리에 장단 맞춰 걷다 보면 무서움도 추위도 사그라들었다.


산타 할아버지가 썰매를 타고 다닌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산타의 선물을 받아본 적은 없었던 나는 그 할아버지가 착한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누어 주려고 돌아다닌다는 건 몰랐다. 그래서 성탄 전야 행사를 마치고 늦은 밤 집으로 돌아갈 그 할아버지 썰매를 얻어 타고 집까지 갈 수 있으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핀란드는 '순록', '오로라', '가문비나무와 쭉쭉 뻗은 전나무 숲', '평등에 기반한 선진 교육의 롤모델'을 연상시키는 나라다. 그리고 얼마 전까지는 '노키아' 핸드폰을 떠올리게 했던 나라였지만 무엇보다도 눈과 호수의 나라.


역사적으로는 러시아와 스웨덴 사이에 끼어 가혹한 고난을 겪어야 했던 나라였다. 그런 핀란드의 신화와 역사, 신비로운 자연, 그리고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음악을 작곡한 사람이 시벨리우스다. 그는 핀란드 국민 음악의 아버지가 되었고 국부(國父)로 추앙받고 있다.


사진 출처_픽사베이



시벨리우스 두상 조각상_시벨리우스 공원 직접 촬영


벨리우스 Jean Sibelius (1865~1957)는 1903년 가을에 <바이올린 협주곡>을 완성했다. 그리고 이듬해 2월 헬싱키에서 자신이 직접 지휘하여 초연했지만 큰 실패로 돌아갔다. 그는 '연주 불가'를 선언하고 대폭 손질하기 시작했다. 1악장은 거의 새로 쓸 정도였다고 한다.


드디어 2년 뒤인 1905년 베를린에서 개정판 <바이올린 협주곡>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Richard Strauss의 지휘로 두 번째 '초연'했고 드디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


세계 4대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일컬어지는 베토벤, 멘델스존, 브람스, 차이콥스키 등의 대를 잇는 바이올린 협주곡이 20세기 초에 탄생한 것이다.



작곡가이면서 훌륭한 바이올리니스트 이기도 했던 시벨리우스는 아쉽게도 이 한 곡의 <바이올린 협주곡>만을 남겼다. 하지만 너무 아쉬워할 것은 없다. 그는 이 한 곡의 협주곡에 바이올린을 통해서만 나타낼 수 있는 아름다움을 아주 잘 담아 놓았기 때문이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북구의 이성과 가슴속에 타오르는 뜨거운 열정을 잘 드러낸 곡이다.


그러나 이 곡의 매력은 독주 바이올린에만 있지 않다. 바이올린과 어우러지는 웅장한 관현악 사운드는 어느 협주곡에서도 맛볼 수 없는 호쾌한 감동을 준다.



곡이 매력적인 만큼 야사 하이페츠, 오이스트라흐를 비롯한 명반도 많다. 정경화도 당당히 명반에 이름을 올렸는데, 여기서는 사라 장의 연주를 소개한다.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하는 사라 장(한국계 미국인 1980~, 한국 이름 장영주)의 연주는 무림의 고수처럼 시원시원한 쾌도난마의 솜씨를 보여준다. 현을 긋는 그녀의 활은 마치 무사의 서슬 퍼런 칼과 같다. 치고 들어가는 공격은 날쌔고 폭발적인 반면 한숨 돌리는 수비는 여유롭고 부드럽다. 곳곳에 극한의 기교가 낭자하지만 넘치는 자신감과 카리스마에서 뿜어 나오는 그녀의 명인기 덕분에 그 아슬아슬한 곡예를 마음 졸이지 않고 편안하게 들을 수 있다.


https://youtu.be/gpS_u5RvMpM

넘치는 자신감과 카리스마로 극한의 기교를 거침없이 구사하는 사라 장의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1악장 Allegro Moderato (적당히 빠르게) 01:10~

곡의 절반을 차지하는 악장으로 북구의 신비한 빛 오로라에서 새어 나오는 듯한 아주 작은 바이올린 소리로 시작한다. 그 위에 독주 바이올린이 가슴 시린 선율을 연주하면 바순이 잠시 들어와 시린 가슴을 따뜻하게 감싸고 나간다. 중간에 카덴차(반주 없이 독주 악기가 기량을 과시하는 부분)가 이어지고 웅장하면서도 서정적인 관현악과 바이올린이 기교를 뽐내며 전진한다. 마침내 오케스트라와 바이올린은 켜켜이 쌓인 만년설을 뚫고 솟구치는 화산처럼 폭발하며 악장을 끝낸다.


2악장 Adagio di molto (매우 느리게) 17:22~

목관 파트가 느릿하게 북유럽 서정을 펼치면 바이올린이 아련한 옛날을 그리는 듯, 서정적 선율을 노래한다. 음악 평론가 황장원은 클래식 명곡 명연주 해설에서 "바이올린 독주의 서정적 선율선에는 인간 영혼의 진솔한 고백과 깊숙한 내면의 토로가 서려있는 듯하다."라고 2악장을 평했다. 깊이 공감한다.


3악장 Allegro, ma non tanto (빠르게 그러나 너무 지나치지 않게) 25:13~

2악장에서 쉼 없이 이어지는 3악장은 팀파니가 빠르고 약하게 '둥두두 둥두둥, 둥두두 둥두둥'하고 주제를 유도하면 곧바로 바이올린이 '빱빠람빠 빠빠빠'를 반복하며 주제를 연주한다. 이 리드미컬한 반복구에 몸을 맡기면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며 따라가게 된다. 초절정 기교를 부리면서도 힐끔힐끔 웃음을 보이는 사라 장의 신들린 연주는 짜릿한 쾌감을 넘어 카타르시스에 이르게 한다.



커버 이미지 _시벨리우스 공원 직접 촬영

악장 설명 참고   [네이버, (클래식 명곡 명연주, 황장원)]  [더 클래식, 문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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