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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조 Jan 28. 2022

두 천재의 치열한 삶_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

초보자의 클래식 일기 20

출근하지 않는 날엔 한껏 게으름을 부릴 수 있어서 좋다. 그 게으름의 시작은 늦잠이다. 핸드폰 알람이 아니라 생체 시계가 일어나라고 알려주는 시간에 눈 뜨고 반응하는 게 다. 특히 한겨울 아침엔 눈을 뜨고도 한동안 이불속에서 뒤척이며 게으름을 부린다. 언제쯤 이 게으름을 이길 수 있을지.


오늘은 4주 차 일요일, 새해 첫 봉사활동을 가는 날이다. 알람을 맞춰 놨는데 그보다 이른 시간에 스스로 눈을 떴다. 추울 땐 이불속이 안전하다지만 꽁꽁 싸매고 나가면 이불 밖이라고 불안전하지도 않다. 이불속에서 게으름 부리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그 잠깐의 유혹을 뿌리치고 나면 즐겁게 봉사할 수 있다. 다른 봉사자들의 얼굴도 하나같이 환하다. 그래서 활동을 마치고 나면 항상 '그래, 오길 잘했지'라는 생각이 든다. 마음은 뿌듯하고 몸은 가뿐해진다.


차를 몰아 집으로 돌아오는 창 밖으로 보이는 햇살은 언제 동장군이 있었냐는 듯 살갑다. 미처 1월이 다 가지도 않았는데 가슴속에는 벌써 봄이 자리하려고 한다.



감상해야 할 곡들은 많아서 성큼성큼 나아가며 글을 쓰고 싶은데 글재주가 받쳐주지 않아 실제로 앞으로 나아가는 속도는 아장아장 답답한 걸음마이다.


앞 글에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의 느낌이 <20번>과 사뭇 다른 이유를 대략 알았다. 이번에는 내친김에 <피아노 협주곡 20번>을 들어보려 한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Wolfgang Amadeus Mozart (오스트리아 1756~1791)는 35세라는 짧은 생애를 살았다. 하지만 그가 남긴 곡들은 다양하고도 많은데 하나같이 듣기 좋은 걸작이. 쾨헬 번호(K.)가 626번 까지 나갔으니, 모차르트는 그야말로 신(神)이 내린 넘사벽 음악 천재다. 게다가 대부분이 밝고 화려한 장조의 곡들이어서 들을 땐 편안하고 듣고 나면 앤돌핀이 샘솟는다. 피아노 협주곡만도 27곡을 작곡했는데 그중 25곡이 장조(major)고 단 2곡 만이 단조(minor)다. 그 단조의 피아노 협주곡이 바로 <20번>과 <24번>이다. 단조는 어둡고 슬픈 느낌이 든다. 장조인 <피아노 협주곡 21번>과 비교해서 들어보면 그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쾨헬 번호_오스트리아의 식물학자이자 음악 연구가인 루트비히 폰 쾨헬(Ludwig von Köchel 1800~1877)이 모차르트의 작품들을 연구하여 붙인 분류 번호이다. 곡 번호 앞에 'K.' 또는 'KV.'라는 문자를 붙이고 '쾨헬 00번'이라고 읽는다. K.1은 1762년 작곡한 <미뉴에트 G장조〉이고 마지막 K.626은〈레퀴엠 d단조〉이다. (참고_위키백과)



여기서 한 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모차르트의 삶은 매우 고단하고 녹록지 않은 삶이었다는데, 어떻게 이렇게 밝고 명랑한 장조의 곡들을 많이 썼을까? 모차르트의 성격과 취향이 큰 영향을 주었겠지만 그가 처했던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모차르트의 천재성이 폭발하며 창작이 가장 활발했던 이른바 '빈(Wien)에서의 10년' 시절로 돌아가 보자. 1781년 25살의 모차르트는 잘츠부르크에서 빈으로 이사했고 이듬해에는 코스탄째와 결혼했다. 가장이 되었으니 돈은 더 많이 벌어야 했는데 돈벌이 환경은 만만치 않았다. 악장으로 있으면서 월급을 받던 잘츠부르크 시절과는 달랐다. 교회와 귀족의 후원은 점점 줄거나 끊어져 자신의 노동과 실력만으로 돈을 벌어야 했다. 본의 아니게 요즘으로 치면 프리랜서가 되었던 것이다. 그는 매우 궁핍한 삶을 살아야 했다. “급히 필요하니 얼마 간의 돈을 빌려주었으면 합니다. 아무쪼록 빠른 시일 안에 도착했으면 합니다.” 모차르트가 출판업자 호프마이스터에게 보낸 편지 내용이었다고 한다.


모차르트는 밤낮없이 피아노 레슨을 했고 또한 자작곡 연주회를 열어 돈을 벌었다. 당연히 작품과 연주는 귀족과 새롭게 등장하고 있던 부유한 상인 고객들이 좋아하는 것이어야 했다. 당시 빈 음악계의 대세는 피아노 협주곡이었는데, 밝고 화려하며 피아니스트의 현란한 기교가 들어있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어김없이 다가오는 끼니를 스스로 해결해야만 했던 모차르트. 그러니 경제적 어려움과 끊임없는 스트레스 속에서도 그는 아름답 명랑한 장조의 곡들을 작곡했야 했을 것이다.


<피아노 협주곡 20번> d단조를 작곡했던 1785년에는 그나마경제 사정이 나아졌던 때였지만 모차르트의 마음속 깊이 자리하고 있던 어둠과 격정을 엿볼 수 있는 곡이 아닐까 한다. 천재 예술가의 팍팍했던 삶을 생각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들어 보자.



클라라 하스킬 Clara Haskil(루마니아 1895~1960)은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에서 태어난 유대계 피아니스트이다. 그녀는 항상 음악 천재라는 말을 달고 다녔다. 그녀 나이 5살 때 부쿠레슈티 음악원 교수가 집을 방문해서 모차르트 소나타를 연주했는데, 그것을 듣자마자 즉석에서 그대로 연주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7살에 빈에서 데뷔했고 14살에는 파리 음악원을 수석 졸업했다. 그녀와 친분이 있었던 영화배우 찰리 채플린이 한 말이 전해진다. "나는 평생 동안 진정한 천재를 세 명 만났다. 한 사람은 알버트 안슈타인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처칠, 그리고 나머지 한 사람은 클라라 하스킬이었다."


그녀는 외모 또한 수려했다. 그러나 한창나이 18세, 그녀에게 날벼락같은 불행이 닥쳤다. '다발성 경화증'이라는 불치병에 걸린 것이다. 모든 신경과 근육과 뼈가 엉겨 붙는 무서운 병이다. 그녀의 몸은 점점 쪼그라들고 뒤틀리고 등은 굽어져 꼽추가 되었다. 설상가상 그녀를 돌보던 어머니조차 하스킬 나이 23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혈혈단신 그녀에게 남은 것은 고독과 절망뿐이었으리라. 20대의 나이에 수려했던 외모는 이미 노인으로 변해 버렸고 머리도 반백이 되었다. 그녀는 온몸에 보조기를 찬 채 고독 속에서 세계대전을 겪었다. 특히 2차 대전 중에는 유대인 탄압을 피해 프랑스 마르세이유로 피신하던 중 뇌졸중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병마가 덮치기 전 청순한 외모의 하스킬(출처_나무위키)과 병을 겪고난 후 만년의 하스킬(출처_네이버 이미지)


병에 굴하지 않고 천신만고 끝에 살아난 그녀는 스위스로 망명했다. 그녀는 '불치병', '1, 2차 세계대전' 그리고 '인종차별'이라는 거대한 고난에 굴하지 않았다. 1947년(그녀 나이 52세) 그녀는 다시 연주 활동을 시작했다. 꺼지려던 불꽃을 다시 살려 활활 태웠다. 시대의 고난을 음악으로 승화시킨 피아노의 성녀다.

같은 '다발성 경화증'을 앓았던 첼리스트 재클린 뒤프레 Jacqueline Du Pre (영국 1945~1987)에게 <재클린의 눈물 Jacqueline's Tears>이 있다면 클라라 하스킬에게는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이 있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은 하스킬의 피아노, 이고르 마르케비치가 지휘하는 라무뢰 오케스트라의 음반으로 들어보길 권한다. 하스킬이 죽기 1개월 전(1960.11.14.~18.) 녹으로 하스킬의 마지막 자취가 남아 있다. 건반 하나 누르는 것조차 어려웠을 하스킬이 고난을 어떻게 내면화하고 승화시켰는지 들어볼 일이다.

클라라 하스킬이 죽기 1개월 전에 녹음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 CD


https://youtu.be/eF74h_WhLiI

클라라 하스킬이 죽기 1개월 전에 녹음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


1악장 Allegro (빠르게)

궁핍한 삶의 무게를 지탱하듯 또는 병마와 싸우는 하스킬의 고통에 공감하듯 비극적이고 음산하게 시작한다. 한참을 지나서야(2:20) 나오는 피아노는 그나마 얌전하게 시작하지만 뒤로 갈수록 빠르고 화려해진다. 막바지에 카덴차가 펼쳐지고 난 후 조용히 끝나는 데 전체적으로 긴장감과 고뇌가 느껴진다


2악장 Romance, Andante (로망스, 느리게) (3:30~)

어둠은 사라지고 모차르트의 천진한 아름다움이 제 자리로 돌아온 듯하다. 피아노가 우아하게 시작하면 오케스트라가 부드럽게 감싸 안기를 여러 번 반복한다. 중반부에서는 오케스트라와 피아노의 감정이 격해지다가 이내 다시 화해하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감미롭게 끝난다.  


3악장 Allegro Assai (아주 빠르게) (23:04~)

1악장의 고뇌와 어두움으로 돌아온 듯하지만, 거기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처럼 피아노가 빠르고 경쾌한 독주로 시작하면 오케스트라도 여기에 적극 동조한다.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주고받는 선율은 옆 사람들의 조용한 대화를 듣는 듯 재미있다. 걱정은 어느새 희망으로 바뀌었고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는 고뇌에서 탈출한 듯 활기차게 끝낸다. 마치 어둠에서 광명으로 나아가는 베토벤의 곡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다.

하스킬은 끔찍한 병과 싸우며 재기했다.



참고   [미디어오늘_이채훈의 음악편지 (2012.09.)]

[이 한 장의 명반, 안동림]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 2, 박종호]

[더 클래식, 문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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