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조 Feb 12. 2022

 때로 음악은 정치적이다 _ 시벨리우스 <핀란디아>

초보자의 클래식 일기 21

KBS교향악단 제774회 정기 연주회는 새 음악감독 피에타리 잉키넨 Pietari Inkinen (핀란드 1980~ )의 취임 연주회다. 레퍼토리는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그리고 시벨리우스의 [카렐리아] 서곡과 '투오넬라의 백조'로 유명한 [레민카이넨] 모음곡. 핀란드 출신 지휘자답게? 북유럽 정취가 물씬 풍기는 곡들이다.


러시아 작곡가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 2010년 제16회 쇼팽 피아노 콩쿠르 우승자인 러시아 피아니스트  율리아나 아브제예바 Yulianna Avdeeva (러시아 1985~ )가 연주했고, 핀란드 작곡가 시벨리우스의 곡들은 핀란드 지휘자 피에타리 잉키넨이 지휘했다.


잉키넨이 취임 연주회 레퍼토리로 선택한 작곡가 시벨리우스는 핀란드의 국부로 추앙받는 국가적 영웅이다. 핀란드의 젊은 지휘자 잉키넨은 어느 인터뷰에서 "시벨리우스는 제 DNA나 다름없습니다."라고 말했었다.


그러면 혹시 앙코르시벨리우스의 <핀란디아>?



북극에 가까워 오로라를 볼 수 있는 북유럽에는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등 세 나라가 나란히 있다. 이 중 가장 오른편에 있는 핀란드 만 개의 호수가 있어서 '호수의 나라'라는 뜻의 '수오미(Suomi)'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핀란드 사람들은 그들의 나라가 이렇게 불리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가 국토의 최남단에 있는데도 북위 60도가 넘으니 이 나라의 추위는 혹독할 것이다. 하지만 핀란드 국민들이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혹독한 추위보다는 외세의 침략이었다.


강대국 스웨덴과 러시아 사이에 끼어 있는 핀란드


현재 인구가 555만 명인 핀란드가 세계사에 등장한 것은 12세기경인데 스웨덴 십자군이 핀란드 원주민을 정복하면서이다. 십자군 원정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동쪽에 있는 핀족의 땅(Fin land)을 차지하려는 스웨덴의 침략 전쟁이었다. 그리고 동쪽에서는 발틱해(Baltic sea) 확보를 위해서 어떻게든 서쪽으로 진출하려는 러시아가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서쪽으로 진출하려는 러시아와 이를 견제하려는 스웨덴 사이에 끼인 약소국 핀란드는 말 그대로 '고래 싸움에 새우등' 신세였다.

핀란드는 13세기 초부터 19세기 초까지 스웨덴의 지배를 받았고, 1809년부터 1917년 까지는 러시아의 공국(公國 _ 러시아의 공작이 통치하는 영지)으로 실직적 지배를 받았다.



이렇듯 고난의 역사를 가진 핀란드는 장 시벨리우스 Jean Sibelius (1865~1957) 보유국이다. 그는 수도 헬싱키에서 100여 km 북쪽에 위치한 작은 도시 헤멘린나 Hämeenlinna에서 군의관의 세 자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아홉 살부터 피아노를 배웠고 열다섯부터는 군악대장에게 바이올린과 작곡법을 배웠지만 가족의 반대로 헬싱키 대학 법학부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의 음악에 대한 마음속 열정은 꺾이지 않았다.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헬싱키 음악원에 입학하여 바이올린과 작곡법을 배웠으며 이후 베를린으로 유학을 다녀왔다. 그는 유학하면서 조국의 민족적 정체성에 대해 인식하고 고민했으며, 이런 고민은 그의 음악에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그는 핀란드의 역사와 신화, 신비로운 자연 그리고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곡들을 작곡했다. 그 결정체가 교향시 <핀란디아>이다. 



1899년 시벨리우스는 러시아의 압제에 저항하는 예술인들의 연극 공연 <역사적 정경> 피날레 곡으로 '핀란드여 깨어나라' 작곡하고 직접 지휘하였다. 그리고 공연 후 <핀란디아>로 개작(改作)했다. <핀란디아>의 원작 제목이 '핀란드여 깨어나라'인 것이다. <핀란디아>는 핀란드인들의 저항 시이자 제2의 국가로 사랑받는 국민음악이 되었다. 


<핀란디아 찬가>

아! 핀란드여, 보라
이제 밤의 위협은 물러나고
공포는 사라졌으니
찬란한 아침에
종달새는 다시 영광의 노래를 부른다
천국의 대기가 충만하다
어둠의 힘은 사라지고
아침 햇살이 승리하였으니
너의 날이 다가왔다
나의 조국이여!

아! 핀란드여, 일어나라
당당하게 걸어가라
너의 과거는 자랑스럽게 기억되리니
아, 핀란드여, 일어나라
노예의 흔적을 몰아내고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어라.
억압에 굴복하지 않았으니,
자랑스러운 아침이 오리리라
나의 조국이여!


다음 해인 1900년 7월 2일에는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핀란드의 유명 지휘자인 로베르트 카야누스(Robert Kajanus 1856~1933)가 헬싱키 필하모닉을 지휘하여 <핀란디아>를 초연했다. 제정 러시아의 속국 핀란드가 세계만방에 독립의지를 공개적으로 천명한 사건이었다. 시벨리우스 나이 35세였다.



시벨리우스 <핀란디아>가 파리에서 초연된 뒤 7년, 대한제국의 이준 열사(1859~1907)는 1907년 파리의 북쪽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서 을사늑약(1905년)의 부당함과 일제의 침략 야욕을 세계만방에 알리려 하였으나 일제의 방해로 제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자 순국했다. 이준 나이 48세였다.


강대국과 접해있는 나라의 역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매한가지로 고달팠다. 그래서인지 아득히 먼 나라인데도 애틋한 동병상련의 마음이 생긴다.



연주를 모두 끝내고 인사하는 지휘자 잉키넨과 KBS 교향악단


레퍼토리 연주가 모두 끝났다. 나도 청중들도 열렬히 박수를 보냈다. 몇 번의 커튼콜 뒤에 드디어 잉키넨이 조용히 해달라는 손짓을 하고 어눌하게 우리말을 했다.


캄쌉니다. 앙코르 시벨리우스 휜란디아~


순간 우레와 같은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앙코르 곡이었지만 오히려 뜻밖 횡재를 만난 듯한 기분이다. 



https://youtu.be/qOSaT6U4e-8

핀란드 국영방송 YLE 에서 방영된 핀란드 태생의 유카 페카 사르스테가 지휘하는 헬싱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핀란드 방송 교향악단 협연. <핀란디아 찬가> 합창이 포함되어 있다


곡의 시작은 핀란드인들의 가슴속에 쌓여있던 응어리를 토해내듯 느릿하고 육중한 서주로 시작하며 금관악기와 팀파니가 장엄하게 연주한다. 뒤이은(1:20~) 현과 목관 사운드는 압제 속 삶을 회상하며 탄식하는 듯하고 이어서(3:08~) 급박하게 고조되는 관악기와 현악기의 행진곡 빠른 연주는 민중들에게 저항을 독려하는 듯하다.


후반부에 이어지는(5:30~) 평화롭고 경건하기까지 한 민요풍 선율은 독립 후의 평화로운 미래를 노래하며 민중들을 위로한다. 이 부분에는 핀란드 시인 베이코 코스겐니에미가 쓴 <핀란디아 찬가>를 합창하기도 하는데 마치 머나먼 외국에서 애국가를 듣는 듯 감동적이다. 마지막(7:20~)에는 다시 한번 독립의지를 확인하며 고동치는 강렬한 관현악으로 끝난다.


때로 음악은 다분히 정치적이다.




참고   [이 한 장의 명반, 안동림]  

           [더 클래식 셋, 문학수]  

           [열려라 클래식, 이헌석]

매거진의 이전글 두 천재의 치열한 삶_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