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국가유공자다
우리 집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대문에 걸어놓은 유공자 명패를 보고 첫마디가 "유공자입니까?" 하고 묻는다.
그때마다 나는 자랑스럽게
"그래요" 하며 내가 유공자인 사유를 늘어놓곤 한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의 손자 손녀들에게도, 인터넷 수리기사에게도, 도시가스 점검원에게도....
유공자 중에도 제일 하급축에 드는 참전유공자이지만 유공자임을 자랑스럽게 말한다. 내가 월남참전을 하게 된 건 어쩌면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1970년 입대한 나는 훈련을 마치고 그 유명한 울진삼척 무장공비 출몰지역인 울진군 부구면 해안경비 분대에 배치되었다.
따블백 한 개를 메고 해안가 나지막한 분대막사를 찾아가니, 약아빠지게 생긴 선임하사와 눈이 부리부리하게 생긴 병장이하 상병, 일병까지 아홉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 저녁때 점호시간 최고참 병장이 모두 모래사장에 계급순 일열횡대로 집합시켰다. 그야말로 신고식이었다. 줄빳다 신고란다.
순서에 따라 아홉 대를 맞고 나니 하늘이 노랗게 변했다.
하필, 바로 위 상관인 일병이 폭행 사고자로 형을 마치고 직전에 배치되었다고 한다. 군대 생활이 편하려면 직속상관을 잘 만나야 한다는데 하여튼 인복은.....
눈알이 특히 노랗게 생긴 이놈의 빳다맛은 지독히 맵고 아팠다.
그날밤 모포 속에서 펑펑 쏟아지는 눈물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이튿날부터 고된 시집살이가 시작되었다. 막사청소, 취사, 야간경비, 주간보초, 심지어 고참병장 연애편지 대필까지 (고참병장은 바닷가 마을 과부의 딸과 연애 중이었다.)
항상 배가 고팠다.
2주마다 중본에서 타오는 1종(눌린 보리쌀 섞인 쌀)은 딴살림 사는 선임하사님 집에 한 포대 내려놓고 와야 한다. 하루는 새벽 순찰을 다녀온 고참들이 어부들한테서 생선 한 바켓을 얻어와서 나보고 맛있게 끓이라며 던져줬다. 막사옆 바닷가에 들고 가서 비늘도 떼고 창자도 꺼내고 깨끗이 다듬은 다음 끓이려고 하는데 마침, 물이 떨어졌다.
물을 길으려면 1km 넘게 떨어진 옹달샘까지 가야 한다.
바닷물로 끓이면 어떨까? 괜찮은 아이디어 같았다.
민물로 끓여도 어차피 소금을 넣어야 하니까, 마찬가지 아닐까??
고기반 바닷물 반을 넣고 푹 끓였다. 구수한 냄새가 코를 진동했다. 이제 간을 볼 차례다. 한 숟갈 떠서 맛을 보는 순간 아~이게 웬일이야! 소태맛! 쓴맛 때문에 입에 댈 수가 없었다.
바닷물에는 엄청난 소금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큰일 났다! 살점이 해져서 뿌옇게 된 아까운 국물을 모래사장에 몽땅 다 쏟아부어 버렸다. 옹달샘으로 뛰어갔다. 땀을 뻘뻘 흘리며 물 한비켓츠 들고 와서 솥에다 붓고 다시 푹 끊였다.
다행히 쓴맛은 사라졌다.
그러나 살점은 다 버리고 뼈다귀만 남았으니, 그나마 뼈다귀 한 점에 멀건 국물 한 사발씩 퍼서 저녁때 내놓으니 고참들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드디어 악바리 박상병이
"이 새끼 왕거니는 다 건져 처먹고 뼈다귀만 내놨네"
하니까, 사고자 일병이 톡 나서더니 내가 버릇을 단단히 고쳐 주겠다며, 모래사장으로 나와서 엎드려뻣쳐!
덕택에 물통 드는 장대로 엉덩이부터 발목까지 빨간 사람이 되고 말았다.
그날도 모래사장에 코를 박고 한없이 울었다.
그럭저럭 6개월이 지나 교차훈련을 위해 우리 부대는 사단 본부로 들어갔다. 어느 날 px에서 고교동창 친구를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무척 반가웠다. 그는 중대 행정반에 근무 중이었다.
하루는 px에서 맥주를 마시다가 그가 엉뚱한 제안을 했다.
"우리 월남안갈레?"
그때 까지는 눈곱만큼도 생각해 본 적 없었던 터라 별로 반응이 없자,
"우리 둘 다 주특기가 360 (가설통신) 이니까, 영내 근무만 하므로 절대 안전하다"
귀가 얇은 나는 솔깃했다.
그래? 그럼 한번 신청해 볼까? 술김이기도 했지만 또다시 다음 달이면 해안분초로 가서 *뺑이칠 일을 생각하니 끔찍했다. 며칠 후 월남파병 명령이 내려왔다. 그런데, 친구 놈의 이름은 없었다. 행정반이라 중대장이 신청 시 빼버렸단다.
갑자기 무서워졌다.
외로워졌다.
혼자 끝이 안 보이는 사막 한복판에 버려져 있는 느낌이었다.
중대장에게 뛰어갔다. 나는 장남이라 갈 수 없다고 빼달라고 애걸복걸했다. 그러나,
군대에서는 명령이 나면 따를 수밖에 없단다.
친구 놈이 쭈뼛쭈뼛 다가와 "석수야 잘됐잖아? 나는 가고 싶어도 못 가는데". 위로하는 친구가 오히려 야속하게 느껴졌다.
실망하실 부모님 모습도 걱정됐다.
이튿날 영내보초를 나갔다가 내무반에 들어가기가 싫었다.
막사뒷산 숲 속 나무밑에서 고민고민 하다가 스르르 눈이 감기고 말았다.
비몽 사몽간에 호랑이에게 쫓기기도 하고 인민군에게 잡혀 가기도 하는 사이에
내무반에서는 점호를 하다가 난리가 났다. 김석수가 총 들고 탈영을 했단다. 중대원들을 풀어 영내 온산을 수색하고 있었다. 잠결에 뭔가 웅성웅성하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중대원들에 의해 삑 둘러싸여 있었다.
차라리 꿈이었으면 싶었다. 무장해제를 당하고 중대장에게 끌려가서 귀에 들어오지도 않은 훈계를 듣고
내무반으로 들어가 그 지긋지긋한 내무반장의 빳다 세례를 또 받았다.
며칠 후, 파월장병 사전 교육장인 오음리로 전송, 이곳은, 훈련병이 실수로 놓친 수류탄을 온몸으로 덮쳐 산화한 고 강재구 소령의 동상이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실전과 같은 훈련을 마치고 드디어 부산항으로 실려가서 맹호부대 파병배를 탔다. 박정희 대통령도 참석한 환송식에서 우쭐한 것도 잠시,
"그 이름 맹호부대
맹호부대 용사들아"
태극기의 물결도 사라지고 생전처음 타보는 배에서 창자까지도 몽땅 들어낼 것 같은 뱃멀미와 싸우며 일주일 만에 겨우 도착한 퀴논항 드디어, 나의 참전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ㅡ2편 계속예정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