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유공자 2편
퀴논에 도착해 맹호 부대 연병장에 늘어선 우리는 이세호 사령관의 훈시를 들었다.
"여러분들은 6,25 때 공산주의자들의 침략을 물리쳐준 자유 우방국들처럼 자유를 위해 참전한 만큼 자유한국의 명예에 한 점의 오점도 없도록 용감하게 싸워주기 바란다".
사실, 우리의 관심은 무엇보다 어디로 배치되느냐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목숨이 달린 문제다.
조마조마한 기다림 끝에 맹호 26 연대 챠리포대로 명령 났다. 주특기고 뭐고 필요 없었다. 포병의 포자도 모르는 내가 포병 부대로 배치되었다.
그런데, 26 연대는 위험지역이라 늦게 출발할 수 없어 내일 새벽에 출발이란다.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다."
입대하여 훈련 마치고 전방에 배치받은 동료들이 하던 말이 생각났다.
나와 같이 26 연대로 배정된 동료들이 갑자기 웅성 웅성하며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주특기가 360(가설통신) 이니까 위험하지 않은 영내근무만 할 것이라 생각했던 건 헛된 망상에 불과했다.
다들 나처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튿날 날이 밝자 연병장에 대기한 군용 트럭 행열에 올라, 한편 두려웠지만 한편 신기한 이국정취에 빠져 내가 전장의 한가운데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마저 잠시 잊었다.
마을 근처를 지날 때, 새까맣고 자그마하게 생긴 애들이 까만 아랫도리 하나만 걸치고 맨발로 따라오면서 "따이한 만세 쵸코렛 하나 주세요 과자 주세요 c레이션 주세요 ".
제법 한국말을 잘도 했다. 나는 비위에 '안 맞아 먹다 남은 c레이션을 던져 주면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릴 때 동네 뒷산에서 미군들이 상륙훈련을 마치고 떠나면서 묻어 버리고 간 뒤 쓰레기통을 뒤져 쵸코렛이랑 콩통조림 등을 주워 먹던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욕심 많은 나는 구덩이의 흔적만 보이면 무조건 파보다가 미군들 똥을 손가락 가득히 묻혀 낭패를 본 기억이 났다.
사막의 먼지를 듬뿍 뒤집어쓰고 드디어 차리포대에 도착했다. 마을이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산등성이에 자리 잡은 부대였다.
여기는 신고식도 없고, 줄빳다도 없어서 좋았다.
A레이션 (터키고기나 콩통조림)으로 저녁을 때우고 방카에서 점호를 받고 있을 때, 갑자기 "땅콩 땅콩 타타타 " 어디서 콩 볶는 소리가 나길래 작은 창틈으로 내다보니 마을 근처에 영화 한 편이 펼쳐지고 있었다.
베트콩과 민병대 간에 교전이 벌어진 거다. 예광탄이 교차하는 모양이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잠시 후, 미군건쉽(공격용 헬기)과 우리 포대 105mm 포가 포탄을 퍼부어 뾰족한 산봉우리를 평평하게 해 버린 후에야 잠잠해졌다.
이게 바로 전쟁이구나 하면서도 그러나 아직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삼류극장에서 영화 한 편을 보고 난 느낌이었다.
며칠 후, 베트콩 들이 출몰했던 지역에 관측병으로 수색작전을 나갔다.
물. c레이션. 총. 수류탄등 한 짐 가득 챙기고 관측장비. 지도 등도 빠트리지 않았다.
일열 종대로 행군했다. 맨 앞에 경험 많은 선임병(첨병)이 앞장서고 그 뒤에 중대원들이 따르고 관측병은 언제나 제일 뒤에 따라간다.
다른 병사들은 앞을 보고 총을 겨눈 체 행군하는데 나는 항상 뒷걸음으로 가다시피 하니 훨씬 더 불안했다.
베트콩들이 정글에서 금방 튀어나와 따발총이라도 쏘고 달아날 것만 같아 가다가 뒤돌아 보고, 가다가 또 뒤돌아 보고, 때로는 등골이 오싹하며 소름이 돋을 때는 총구를 정글 쪽으로 겨누며 헛기침을 해보기도 한다.
으쓱한 곳을 지나다가 발길에 차이는 해골을 발견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라곤 했는데 몇 번 보니 그것도 장난감처럼 보였다.
야간 매복작전 시에는 정글 깊숙한 곳에 자리를 잡고 텐트를 친 후 앞쪽에는 크레모어( 터질 때 앞쪽으로만 발사하는 수류탄)를 나란히 설치한 후 스윗치를 잡은 체 밤새 숨을 죽인다.
불빛이라곤 담뱃불조차도 일절 금지다.
과연 그게 기습하는 적을 막을 수 있을까 생각되지만 우리 국군의 용맹을 알고 있는 적들은 감히 접근할 엄두도 낼 수 없었다.
교전하다가 멀리 도망가는 베트콩 들을 발견하면 지도 위의 좌표를 찍어 105mm 곡사포를 유도한다.
포탄으로 베트콩을 잡는 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들은 마치 쥐새끼들 같아 정글 속 으슥한 곳에 땅굴을 귀신같이 파고 들어가 찾아낼 방법이 쉽지 않다.
오죽 답답했으면 미군들이 온산의 그 많은 정글을 고엽제로 다 태워 없애려 했을까! 그때는 고엽제가 그렇게 무서운 줄도 모르고 만져도 보고 그 위에 텐트도 치고 야간매복도 했는데 내 몸에 얼마나 많은 다이옥션이 축적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건조한 날씨로 피부가 약간 가려워도 감기가 걸려 기침을 심하게 해도 혹시, 고엽제 후유증이 아닌가? 심히 걱정되기도 한다.
작전중 제일 고통스러운 것은 무엇보다 갈증이다.
출동 시 수통 4개를 허리춤에 달고 가지만 고지를 몇 개 넘다 보면 수통도 바닥이 나고 소변이라도 받아 마시고 싶어진다. 실제로 자신의 소변을 받아 마신 병사도 있다.
어쩌다 바윗돌에 고인 청태 낀 빗물이라도 발견하면 엎드려 폭풍 흡입 하곤 한다.
하루는 어느 고지를 점령하여 점심으로 c레이션을 까려고 각자 자리를 잡는 중이었다.
그때 갑자기 " 펑" 하며 흙먼지가 덮쳐 천지를 분간할 수가 없었다.
잠시동안 무서우리만큼 고요한 침묵이 흘렀고, 흙먼지가 걷힐 때쯤 희미하게나마 김병장이 쓰러져 있는 게 보였다.
바로 옆에서 자리를 잡던 김병장이 부비츄랩(베트콩지뢰)을 밟은 것이었다.
그의 발목이 댕강 잘려서 저만큼 나가떨어져 있었다.
얼른 뛰어가 그를 부축하고 솟구쳐 오르는 피를 멎게 하기 위해 혁대를 풀어 허벅지를 동여맸다.
그때였다. 자신의 발목이 달아난 다리에서 솟구치는 피를 보자 "아~나는 끝났다 " "내 총 좀 집어줘" 하며 절규하기 시작했다.
나는 얼른 그의 총을 집어 저쪽으로 치워 버렸다.
그는 긴급 요청한 구급 헬기에 실려 후송되고 말았으며 그 후 그의 소식은 알 길이 없었다.
그는 이번 작전을 끝으로 귀국할 거고 귀국하면 곧 제대하여 결혼도 할 거라며 예쁜 애인 사진도 보여주며 자랑하곤 했었는데...
어쩌면 그가 그 부비츄랩을 밟지 않았다면 내가 밟았을지도 모른다.
ㅡ3편 계속예정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