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광

by 돌무리

낚시광


오랜만에 부슬비가 하염없이 내리는 걸 보니 이제 장마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려나 보다. 갑자기 어릴 때 놀던 고향 생각이 난다. 내 고향은 산골 중 산골이다. 마을위쪽 이장골에 그렇게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은 깨끗한 저수지 하나가 있다.

언제나 발가벗고 헤엄치고 놀던 곳이며 물이 맑아 깨끗한 붕어나 피라미들이 바글바글 했다. 특히 오늘 같이 비가 올 때면 저수지 상류엔 잡다한 고기들이 새물내를 맡고 다투어

모여든다. 이때를 놓칠세라 검정 고무신 거꾸로 신고 뒷산 대나무 숲에서 가늘고 긴 신이대 하나를 툭 잘라 와서 어머니 바느질 통에 있는 나이론줄 한 발과 바늘 한 개를 훔쳐 숯불에 달구어 끝을 구부려 매달면 훌륭한? 낚싯대 가 완성된다. 호미로 담밑에 파보면 지렁이가 버글버글 하다. 그놈을 한토막 낚싯바늘에 꿰어 저수지에 담그기만 하면, 금방 낚싯대 끝이 끔벅끔벅한다. 이때를 놓칠 새라 잽싸게 힘껏 낚아채면 손바닥 만한 은빛 붕어가 "휘익"소리와 함께 하늘을 가르며 등뒤 밭고랑에 툭 떨어져 퍼덕거린다. 낚시 바늘의 미늘이 없어 조금만 늦어도 빠져 달아나기 때문이다.

너무 힘껏 낚아채면 큰 놈은 주둥이만 찢어져 달려올 때가 많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도 모르고 잠시만에 한 주전자를 채울 수 있다 비늘치고 다듬어 초장에 찍어 한입 넣으면 입안에서 슬슬 녹는다. 금방 잡아 회치면 살점이 오도독오도독 소리가 나며 씹는 맛 또한 일품이다. 붕어회가 그렇게 맛있는 줄을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공부도 않고 돌아다닌다고 맨날 꾸짖으시던 아버지도 내가 붕어만 잡아오면 환한 얼굴로 막걸리부터 찾으셨다.


그 후에도 나의 광적인 낚시행각은 계속 이어졌다.

아마 어릴 때부터 몸에 밴 유전자 탓인지도 모른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한때는 낚시에 빠져 며칠간 연속 밤낮으로 원정을 다녔다.

그때 잡은 고기는 몇 트럭이나 되지 않을까 싶다.

어떤 때는 온종일 붕어 얼굴 한번 못 봐도 고래만 한 붕어가 매달려 올 거라는 기대감에 찌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밤새도록 천장에 매달려 끔벅 거리는 찌를 보다가 동트기 전 낚시가방 둘러메고 삼립빵 두어 개 챙겨 넣고 식구들 몰래 집을 빠져나와 저수지행 새벽차를 탄다.

잠시라도 자리를 비운사이 고래만 한 잉어가 물고 도망칠까 봐 점심도 빵쪼가리 뜯으면서 찌에서 눈을 떼지 않고 심지어 소변볼 때도 뒤쪽으로 고개를 돌려 찌만은 놓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얼굴이며 팔뚝이며 그을려 새카맣게 변하고 몸은 비쩍 말라 마치 베트콩같이 변해가고 말았다.

거기다 담배는 하루 두세 갑씩 떨고 넣고.

(낚시하면서 할 수 있는 건 담배 빠는 것밖에.)

장가가서도 나의 낚시 행각은 계속됐다.

처음에는 마누라도 애들 데리고 도시락 사들고 와서 거들었고, 애들도 마치 소풍이나 온 것처럼 즐거워했다.

그러나 비린내 나는 생선을 한 바구니씩 잡아올 때는 눈살을 찌푸리며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어머니께서는 나를 볼 때마다 혀를 끌끌 차면서 안타까워하셨다.

" 네놈 살 좀 쪄서 뿌옇게 변한 모습 언제나 볼 수 있으려나?"

그래도 나의 낚시중독은 좀처럼 끊을 수가 없었는데, 우연히 기회가 찾아왔다. 당시에는 걸렸다 하면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였던 폐결핵진단을 받고서야 낚싯대도 몽땅 부러트려버리고 내친김에 담배마저 끊고 말았다.

그 후 다행히 폐결핵도 완치되고 낚시 끊고 담배 끊어 살도 붙고 몸도 뿌옇게? 되었으나 , 아들의 변한 모습을 끝내 보시지 못하고 돌아가신 어머님께 못내 아쉽다.


그럭저럭 세월도 흘러 어느 날 향우회 카특방에 어릴 적 대나무 꺾어 낚시했던 추억 글을 올렸더니 고향 후배 한 명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아직도 낚시가 골프 보다도 더 재미있다면서 같이 낚시 다니자고 했다.

그는 60여 년 만에 만났는데, 나름 성공하여 자그만 회사를 몇 개나 가진 사업가가 되어 있었다.

어느 날 낚시가방에 낚싯대를 비롯한 낚시도구 일체를 챙겨 와서 같이 가자고 하여 따라나섰던 게 다시 시작하게 된 동기가 됐다.

똥 먹던 개 제버릇 못 버린다고 또다시 낚시에 빠지기 시작했다.

즐거웠다. 행복했다.

그런데, 그 행복도 오래가지 못했다.

전부터 앓고 있던 척추관협착 증세가 도지기 시작했다.

정확하게 낚시를 다시 시작하고부터다.

담당 의사도 금지명령을 내렸다.

후배는 물론, 낚시하면서 정들었던 친구들로부터 왜 안 나오냐고, 연일 성화가 끊이질 않았다. 같이 점심도 먹고 낚시시합도 하며 정들었던 친구들인데..

운명인걸 어쩌랴!

그러나 당분간 낚시는 못하더라도 그동안 쌓은 정이야 끊을 수 있으랴?

이따금 가서 옆에서 훈수나 두면서 남은정을 나누고 싶구나

고맙다 낚시광 친구들아.

그리고 미안하다.

2025.. 7.10. 돌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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