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수업
몇 년 전 어느 날 동네를 산책하다가 우연히 주말농장을 발견하고 직접 따주는 싱싱한 풋고추 몇 개를 얻어와서 먹어보니 꿀맛이었다.
마누라가 장바구니에 담아 오는 밍밍한 고추 그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약간 맵사 하면서도 상큼한 그 맛, 어릴 때 보리밥에 고추장 푹 찍어 아삭아삭 씹던 바로 그 맛이었다.
내친김에 당장 농장 주인을 수소문하여 여남은 평 남짓한 텃밭을 분양받았다.
다이소에서 파는 천 원짜리 상추와 쑥갓씨앗 몇 봉지 사 와서 뿌린 다음 며칠 후에 가봤더니 온밭에 새싹들이 무거운 흙더미를 들치고 올라오고 있었다.
귀엽고 기특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는 어린 새싹을 솎아 밥 한 덩어리 양푼이에 담고 고추장 한 숟갈 넣고 참기름 뿌려 쓱쓱 비벼 먹는 그 맛에 그냥 살살 녹는다.
뽑아 먹다가 다못먹어 봉지 봉지 사서 이웃에 인심 쓰기도 하고 친구들 불러 한 보따리씩 뽑아줘도 한참 남는다.
초보 시절에는 탄저병으로 고추농사를 망치기도 했고, 빨리 자라게 하려고 욕심부려 비료를 한 움큼씩이나 넣어줘서 말려 죽일 때도 있었지만,
그러나 이제는 나도 제법 숙련된? 농사꾼 이 되었다.
농사는 배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체험하는 것이다.
잘 자란 작물밭에는 잡초 따위는 자랄 틈이 없다는 사실도 알았다.
다들 모종을 사서 심기도 하지만 나는 꼭꼭 씨앗을 뿌린다.
새싹을 키우는 맛이 한층 귀엽고, 솎아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부추. 돌미나리. 돌나물. 취나물등은 한번 심어두면, 뜯어먹어도 금방 또 자란다.
마누라가 부추전을 무척 좋아해서 올해 한고랑 더 심었다.
작년에 등산 가서 취나물 몇 뿌리 데려와서 밭 한 귀퉁이에 심었더니 제법 먹을만하게 자랐다.
전문 농사꾼은 화학 농약을 쓰지만, 나는 농약을 안 쓴다.
대신, 은행잎. 자리공 뿌리. 먹다 남은 소주. 식초등이 훌륭한 농약 재료가 된다.
오이. 가지. 토마토. 참외등을 심어, 오다가다 따먹는 맛 또한 비할 데 없이 좋다.
이제는 밭 한 바퀴 둘러보는 것이 유일한 낙이다. 하루라도 밭에 나가지 않으면 혓바늘이 돋는다. 며칠 전 뿌린 씨앗이 올라오나, 배추벌레가 생기지나 않았나? 눈뜨기 바쁘게 달려 나가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다. 산뜻한 새벽공기도 마시며 내친김에 뒷산 한 바퀴 돌며 유산소(有酸素) 운동도 하니 이야말로 꿩 먹고 알 먹기다. 가리 늦게 이 일을 결심한걸 무척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몇 포기의 채소를 가꾸며 느끼는 소소한 즐거움, 밭둑에 앉아 모든 시름 다 잊고 새파랗게 자라고 있는 작물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인생 뭐 별거 이던가, 이게 바로 행복이 아닌가 싶다.
돌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