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도 재료가 될 수 있다고요?

<눈이 부시게>를 읽고서

by 등불

가상 인터뷰입니다.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 있으니 읽기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A.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있죠. 이거에 동의하시나요?

B. 다짜고짜 질문에 갑작스럽네요. 음, 저는 아니라고 봐요. 오늘 소개할 드라마 <눈이 부시게>에도 나오듯, 시간이 지나도 아물지 않는 고난이 있잖아요.


A. 저 드라마가 시간과 관련한 이야기인가 봐요?

B. 네, 맞아요. 여기서 소재가 되는 물건은 손목시계인데요. 시간을 돌릴 수 있는 대신 그 대가로 그 사람의 시간이 빨리 흘러갑니다. 아나운서를 지망하던 스무세 살 혜자가 교통사고로 죽은 아버지를 되살리기 위해 시계를 돌리다 오히려 자신이 80대가 됩니다.


A. 한순간에 늙어버린다는 설정.. 자칫 어디서 많이 봐온 것 같네요?

B. 하지만 혜자는 후회하지 않고 그 속에서 지금을 살아가려고 노력합니다. 시간의 대가로 꿈과 멀어졌지만 마트에서 홍보대사로 일하는 등 비슷한 일들을 해나가고요. 집안에 늘어진 시간이 많아졌지만 그걸 활용해 일 나가시는 아버지 도시락을 싸주고 어머니 미용실 일을 도와줍니다. 무엇보다 썸을 타던 준하의 할머니 빈자리에 자신이 살며시 채워줍니다.


A. 그렇다면 오늘 인터뷰의 메인 주제인 고난은 어디에 있나요?

B. 사실 지금까지 말씀드린 내용은 알츠하이머 병을 앓은 혜자 할머니의 상상이었습니다.


A. 네????? 그러고 끝인가요?

B. 저도 많이 충격받았는데요. 당연히 저기서 끝을 낼 작가님이 아니십니다. 저는 혜자의 그런 상상이 과거 고난을 어느 정도 치유할 수 있는 장치로 보았습니다. 상상 속에서 혜자가 좋아하던 준하는 사실 그녀의 남편이었습니다. 그 당시는 1970년대로 군사 독재가 시행되어도 이상할 리 없었죠. 하필이면 준하의 직업은 기자였습니다. 준하는 경찰의 강압적인 수사와 고문으로 목숨을 잃고 맙니다. 혜자는 갑작스러운 남편의 공백에 두려움을 느껴 아들 대상을 엄하게 키웁니다. 그 죄책감 때문인지 상상 속에서라도 아들을 더 많이 사랑해 주려고 노력합니다. 아들의 딸이 되어서요...


A. 혹시 상상 속에 나온 혜자의 아버지는 사실 아들 대상이었단 말인가요?

B. 네, 맞아요. 그리고 혜자의 어머니는 사실 그녀의 며느리였습니다. 자신을 친엄마처럼 챙겨주던 며느리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이 들어 상상 속에서라도 더 잘해주고 싶었던 거죠.


A. 그렇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정도의 고난이 찾아오면 이렇게 상상 속에서 대리만족하라는 말로 이해하면 될까요?

B. ㅎㅎㅎ 그것도 단기적인 면에서는 좋다고 생각해요. 제가 질문을 드려볼게요. 초등학교 때 고난이라고 생각한 사건이 무엇이었나요?


A. 딱히 없었던 것 같은데.. 음... 운동회 달리기 때 애들 보는 앞에서 넘어진 순간..?

B. 그렇다면 그 순간이 아직도 생각나서 삶을 괴롭히나요?


A. 그건 아니죠.

B. 맞아요. 고난을 아직도 기억하고 힘들어한다는 건 그 속에 분명 가치가 숨어있다는 말이에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고난은 그 사람을 정말 사랑했기에 가능한 일이겠죠.


그리고


알츠하이머 혜자 옆에는

여전히 아들 대상과 며느리, 어릴 때부터 친하게 지낸 애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고난 속에 힘들어하느라

지금 이 순간을 놓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고난이라고 부르는 때에도 눈이 부신 날은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 있을 테니까요.


A. 오늘을 살아라... 말씀 감사합니다.


B. 그렇다면 드라마에 나오는 명대사 소개하며

오늘 인터뷰는 여기서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의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는 달큼한 바람, 해 질 무렵 우러나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거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______ ________ ____!>


빈칸에 들어간 말이 궁금하다면 <눈이 부시게>의 대본집이나 드라마 영상물을 감상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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