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재의 <탱크>를 읽고서
인간이 느끼는 가장 끔찍한 고통은 무관심일 것이다. 내가 겪는 아픔을 아무도 몰라줄 때, 그것은 배가 된다. 우리 엄마가 그랬다. 엄마는 가난 속에서 많은 사람에게 배신을 당해왔다. 가족한테 기대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 제빵 말고 아무것도 못하는 남편, 지적 장애를 가진 장남, 그리고 사춘기로 인해 방문을 닫은 나 때문이었다. 그때 나는 엄마한테 물어보았다.
"엄마는 이렇게 힘들 거 알면서 왜 저런 아빠랑 결혼한 거야?"
"꿈속에서 하나님이 나타나셨어. 그분이 너네 아빠를 만나라고 하셨지."
엄마의 눈빛은 꺾지 못할 만큼 살아 있었다. 엄마는 일요일이 되면 교회에 나갈 정도로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나는 속으로 천불이 끓어올랐다. 하나님이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한 사람의 인생을 망쳤는가. 그리고 그것에 넘어간 엄마는 얼마나 나약한 영혼을 가진 사람인가. 나는 엄마가 불쌍해졌다. 어쩌면 엄마를 통해 왜 사람들이 종교에 기대는지 알 것만 같았다. 그 이유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준 책이 있다.
소설 <탱크>에 등장하는 도선, 둡둡, 루벤, 황영경, 손부경 모두 삶에 기댈 곳 없는 인물이었다. 양우와 손부경을 제외한 나머지는 '탱크'라 불리는 컨테이너를 종교적인 존재로 삼았다. 루벤이 '탱크'의 개념을 처음 들여왔고, 한국에 그것을 소개한 사람이 '황영경'이었다. 그녀의 여동생 손부경은 이런 것이 사이비라며 말려도 황부경은 스스로를 믿어야 삶이 잘 된다며 '탱크'를 지켜냈다. 결국 자신의 동생까지 '탱크'를 관리하게 만들었다.
'탱크'안에서 원하는 걸 이루는 방법은 기도이다. 황영경이 만든 커뮤니티에서 예약한 사람만이 안으로 들어가 기도할 수 있다. 그 결과가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위로를 받았다는 리뷰들이 있다. 그리고 정말 둘도 없는 친구가 된 두 사람이 있다.
양우와 둡둡이다. 둡둡은 소위 '게이'라고 불리는 동성애자이다. 그가 커밍아웃을 하자 아버지는 폭력을 사용해 그를 억누르려고 했다. 둡둡은 자신을 이해해 준다고 생각했던 엄마에게까지 폭언을 듣자 집을 뛰쳐나왔다. 결국 '탱크'에 제 발로 들어가 기도했다. 일평생을 함께 살아갈 친구를 달라고.
그렇게 양우라는 친구가 나타났다. 양우도 말하는 게 어눌할 정도로 외로운 친구였다. 양우는 자신을 필요로 한 사람이 생겼다는 사실이 좋았고, 결국 둡둡을 자신의 집에 살게 했다. 근데 문제가 있었다. 양우는 '탱크'에서 벌어진다는 일을 '사이비'로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둡둡은 양우를 데리고 '탱크'로 데려간 적이 있었다. 양우는 기대했다. 그래도 둡둡은 자신보다는 나은 인간이니 그곳도 괜찮은 곳일 거라고....
그런데 '탱크'란 곳은 쓰레기들이 주변에 즐비한 녹슨 컨테이너에 불과했다. 양우는 둡둡에게 물어보았다.
"정말 이 컨테이너가 너랑 나를 이어줬다고 생각해? 이것 덕분에 네가 같은 삶을 지향하는 친구들을 만났다고 생각해? 혹시 다른 사람의 기도가 이뤄진 것도 본 적 있어? 그럼 그게 정확히 어떤 식으로 이루어졌어? 지금도 그 기적이 지속되고 있어?"
정말 어떠한 비난의 의도도 없는, 호기심으로 생겨난 질문이었다. 그러나 둡둡은 양우를 오해해 속을 긁는 말을 하고 말았다.
"하긴 너는 가족이 없으니까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알 리가 없지."
이후로 둘은 완전히 갈라진다. 둡둡은 짐을 싸고 집을 나와 양우가 그를 애타게 기다리게 만든다.
어쩌면 둡둡은 스스로 두 번 버림받았다고 느낄 수 있다. 첫째, 자신을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부모님에게 모진 짓을 당했다. 둘째, 자신의 편이 되어준다던 친구가 자신의 믿음에 칼을 베려고 했다. 둡둡이 동성애자라는 사실과 컨테이너를 믿는 마음이 누구에게 해를 끼치지도 않는데 말이다.
내가 양우였다면 둡둡에게 이런 말을 했을 것 같다.
"그동안 많이 힘들었겠다. 나도 보탬이 되고 싶어. 저런 컨테이너는 아니더라도 내가 너만의 컨테이너가 되어줄게. 힘들면 나한테 안겨. 내가 들어줄게."
믿음은 사람마다 생김새가 다르다. 그렇다고 해서 어떤 믿음은 옳고 그르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다. 내 믿음을 인정받고 싶으면 타인의 믿음도 감싸주면 좋겠다.
인간이 느끼는 가장 끔찍한 고통은 무관심일 것이다. 내가 겪는 아픔을 아무도 몰라줄 때, 그것은 배가 된다. 우리 엄마가 그랬다. 이제 나는 엄마를 그냥, 이해하려고 한다.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에는 어떠한 '근거'도 필요하지 않으니까.
모든 이야기를 다 말해주면 스포나 다름없기에 다음 내용을 읽고 싶다면 소설 전내용을 읽어보기 추천한다.
종교라는 소재를 넘어 믿음에 대해 고찰해볼 수 있는 좋은 책이다.
(홍보 아님. 내돈 내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