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꿈을 그리다

by 최희숙


나의 탄생을 알리는 어머니의 태몽은 꽃이었다고 한다. 꽃밭을 지나는 길에 이름 모를 예쁜 꽃이 어머니의 시선을 붙잡았다. 그 꽃에 욕심이 생겨 뿌리째 뽑아, 품에 안고 귀가했다나. 그날의 태몽이 꽃이었다. 그 어머니가 지금 꽃을 그리고 있다.

어머니가 스케치북을 펼쳐 색연필로 그림을 그린다. 그리곤 그림들을 내게 보여 준다. 개나리꽃은 노란색으로 작게 그려 담장을 넘어갈 듯하다. 해바라기 꽃을 줄 세워 노래를 부르게 하기도 한다. 알 수 없는 꽃들이 활짝 웃고 있다.

어머니의 그림에는 꽃도, 나비도, 새도, 잠자리도 있다. 어머니는 보았던 것들을 기억해 그린다. 내가 어머니에게 스케치북을 사드린 일은 없다. 교회 분들이 어머니를 만나러 오시면 잘 그렸다고 더러 달라하여 가져가며, 새로운 스케치북을 사다 놓고 가기 때문이다. 감사하게도 어머니의 건강회복을 바라는 마음일 게다.
어머니는 그림에 다양한 색으로 이야기한다. 색이 곱다. 어머니 마음이다. 어머니는 반복적으로 똑같은 그림을 연결해서 그린다. 어머니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오로지 가족들을 위해 한 가지만 생각하고 살아오신 분이다. 그것들이 그림에도 투영되어 있다. 어머니는 그림 속에서 꽃일까? 나비일까? 아니면 새일까? 아마도 꽃이 되어 활짝 당신을 피우고 싶으신가 보다. 나비가 되고, 새가 되고, 잠자리가 되어 날고 싶으신 것은 아닐지 싶다.
배우지 않았어도 그림으로 스케치북을 채우니 보통 내공은 아니다. 더구나 지금은 병중이다. 복용하는 약으로 손이 떨고, 눈도 불편하다. 작은 그림을 표현하기에 힘든 때이기에 더욱 그렇다.
그림 그리는 어머니가 나는 좋다. 나는 아버지를 닮은 줄 알고 살아왔다. 친척들도 아버지를 닮았다는 얘기를 많이 했다. 그것이 아버지 닮아야 잘 산다는 어른들의 덕담인 줄 어찌 알았겠는가. 그렇지만 외모도 성격도 닮기는 했다. 나이를 한 살 더하면서 오히려 어머니를 더 많이 닮아간다는 것을 알아간다.
나도 꽃그림을 그린다. 어머니는 내가 그림을 배우고 회원전을 했어도 한번 와 보실 수가 없었다. 첫 번째 회원전에서 전시했던 그림은 어머니 방에 걸려 있다. 며칠 전에 주차장에 세워 놓은 빨간색 자동차를 보고 내게 전화를 했다. 퇴근했는지 확인하는 전화였다. 시계를 보니 5시였다. 회사에서 근무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괜스레 화가 나서 “지금 몇 시인데? 일해요”라고, 퉁명스럽게 얘기했던 것이 조금 미안했다. 어머니도 섭섭했을 것이다.
코로나19로 몇 해 못했던 회원전에서 전시했던 그림을 핸드폰으로 어머니에게 전송해 드렸다. 퇴근해서 보니 해바라기를 그리는 중이었다.
“엄마, 해바라기 꽃잎이 다 똑같지 않아. 큰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어. 꽃잎이 틀어져 있기도 하고, 여기 가운데는 좀 더 어둡게, 잎사귀가 초록색만 있으란 법 있나? 다른 색도 섞어서 칠해도 돼요.”
나도 배워야 할 것이 많으면서 어머니 앞에서 아는 체를 했다. 어머니는 얘기하는 것을 좋아하신다. 이렇게라도 살갑게 얘기하는 딸이 좋은가 보다. 그러고 보면 그리 얘기하고 다음 그림을 보니 좀 더 변화가 있어 보였다.
어머니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어머니는 여덟 살부터 밭에서 일하랴, 산에서 나무하며 동생들 돌보랴, 학교는 얼마 다니지도 못했기에 졸업장이 없다. 열여덟에 아버지를 만나 고단한 삶을 사셨으니, 정작 자신을 위한 꿈은 가져 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어릴 적에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라고 말해, 어머니를 섭섭하게 했던 일이 문득 떠오른다.
우리네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지 않은가. 어머니에게 모지스 할머니의 얘기를 해드린다. 내가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 때 들었던 얘기다. 그림을 한 번도 배운 적이 없었지만, 늦은 나이에 시작한 그녀만의 아기자기하고 따뜻한

그림이 어느 수집가의 눈에 띄어 세상에 공개되었다. 76세부터 10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 전 1,600여 점을 남겼다고 한다. 어머니는 모지스 할머니가 그림을 시작했을 때에 비하면 보다 젊다. 어머니는 “내가 니 나이만 되었어도 좋겠다.” 라 하신다. 사실 멋진 화가가 되지 않으면 어떤가. 어머니가 그림을 그리면서 건강을 회복만 한다면 그것보다 좋은 것이 없지 싶다.
꿈은 삶의 활력이다. 내가 그림을 배우기 시작하고 어느덧 다섯 해의 시간이 지났다. 얼마 전에는 화실 선생님이 삼 년 후에 전시회를 목표로 그림을 그려도 좋겠다고 하셨다. 아직도 그림을 그리면 어디쯤 마무리를 하고 완성되었다고 해야 하는지 모른다. 그림을 보고 있으면 이 부분을 더 해야 하고 처음부터 다시 그려야 하나, 고민을 하게 한다. 그런데 아무 생각 없이 그렸는데 그려놓고 보면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더 멋지게 끝나기도 한다. 이제 마무리해야지 하는데 미련을 두게 하는 그림도 있다. 삶도 그림과 같다는 생각을 한다.
잘 그린 그림만이 아니라 정서와 개성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낼 때 멋진 그림이라고 한다. 어머니는 어머니만의 그림을 그리고, 앞으로 더 그리게 될 것 같다. 그림 그리는 딸이 있지 않은가.

“엄마 이제부터 색을 좀 더 진하게 칠해보세요.”

누가 알 수 있을까? 언젠가 어머니와 딸이 함께 하는 전시회를 나는 꿈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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