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로 떨어진 꽃

by 최희숙

캔버스 가득 붉은 동백꽃을 그린다. 누군가 동백꽃을 눈물로 뚝 떨어지는 꽃이라 했던가.

동백꽃은 내 어머니와 닮은 꽃이다. 그런데 어머니가 지금 침대에 누워 신음소리로 그저 딸을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오늘은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인가 보다. 다른 날은 운동한다며 문밖에 서 있기도 하고, 얘기도 잘하는 날이 있었다. 그러니 가늠할 수가 없다.
어머니 누워 있는 모습이 마치 떨어져 땅에 누워 시들어가는 동백꽃 같다. 언젠가 아버지는 어머니가 제일 좋아하는 꽃이 동백이라 했다.

어머니가 즐겨 부르던 '동백아가씨'

노래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붉은 동백 앞에서의 고백이 있었을까.

이제 칠십 초반인 어머니고 보면 아직 저리 많이 아파 누워 있을 나이는 아니지 싶다.
어머니는 참으로 힘겹게 세상을 누구보다 강하게 살아오신 분이다. 아버지는 환갑이 얼마 남지 않을 때쯤 뇌출혈로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 갔다. 다행히 깨어나기는 했지만, 그 후로 두 번의 병원 생활에도 안면을 비롯한 반신 마비로 어머니의 간호를 받아야 했다. 15년의 세월이었다. 가장의 책임이 주어진 어머니는 요양보호사로 환자분들을 돌봐드리며 굵은 땀방울을 수도 없이 흘리셨다. 다행히 아버지가 옆에 계시니 힘을 내서 더 열심히 일하고 밝게 웃으시며 일했던 것 같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정성으로 처음 만나셨을 때부터 마지막까지 생을 이어 가셨으니 하늘에서 맺어 준 천생연분이었나 보다.
어머니는 하루도 빠짐없이 교회에 나가 새벽기도에 참여했다. 남편과 자식, 손주들을 위해 기도했다. 새벽기도를 위해 교회로 걸어갈 때 한 걸음 떨어져 걸어오는 아버지가 있어 든든하다 했다. 그러다 지병이 아닌 감기 기운으로 병원 진료를 받다 쓰러져 응급실에서 의식 없이 폐렴으로 보름 만에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언제나 어머니 곁에는 아버지가 함께였다. 아버지는 말수가 적고 어머니에게도 자식들에게도 엄하고 곁을 잘 주는 분은 아니었다. 두 분이 더러 싸우셨던 기억도 없지 않다. 그러나 열여덟에 백 년 기약을 맺고, 오십여 년을 함께 했으니 그 슬픔을 어찌 헤아릴 수 있으랴.
어머니의 눈은 언제나 맑고 고왔다. 어렸을 때 왜 나는 엄마를 안 닮았을까 이따금 물어보기까지 했다. 어머니의 아픔은 눈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눈앞에 떠다니는 어른거림에 불편함을 호소하셨다. 안과 진료 후 수술을 권유받고 수술을 하게 되었다. 그 며칠 후부터 잠도 이루지 못하고 눈앞이 번쩍인다며 혼자 계시는 것이 무섭다 했다.
집에 모셔 와 병원도 다니고 약도 챙겼지만, 점점 무너져 가는 듯했다. 고집은 더 세어지고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고 약도 넘기지 못했다. 게다가 침대에 앉지도 못하고, 누우면 일어나지도 못하였다. 병원에 입원해도 보호자가 항상 옆에 있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처음에는 갑자기 일어나는 발작에 수없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달래고 어르며 어머니가 어린 나에게 했듯이 어머니를 안고 “이제 엄마가 딸하고, 내가 엄마가 될게 “라며 많이도 울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어머니의 거짓말 같은 모습을 보게 되면서 혼란에 빠지기도 한다.
우울증이었다. 변덕처럼 바뀌는 상황을 보면서 점차 매정한 말도 하게 되고, 그러다 달래 고를 반복하며 점점 어머니의 증상에 무뎌져 가고 있다. 꾸준한 약물치료와 가족들의 관심과 편안한 맘으로 살아야 한다지만 어머니는 이제 혼자였다. 자식이 있어도 손주가 있어도 오로지 자신 안에만 갇혀 있었다. 다리가 너무 아파서 걷지 못하겠다고 하고 몸도 여기저기가 아프고 불편하다 하셨다. 무엇인가 아무것도 모르겠다.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모르겠다고 하셨다. 지금 어머니의 우울증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어머니는 한평생을 주어진 역할과 책임을 감당하면서 나무가 상처 난 부분에 옹이를 만들며 나이테를 키워 가듯이 그렇게 안으로 쌓기만 했다. 누구에게도 자신의 속내를 보이시지 않으셨다. 비가 내려야 하듯이 사람의 슬픔에는 수많은 눈물을 쏟으며 태산 같은 서러움을 풀어야 한다.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누가 나를 알까 그래서 답답함을 느낀다. “라고만 할 뿐이다.


캔버스 가득 떨어진 동백꽃을 그린다. 유화로 바탕을 칠하고 덧칠하고 몇 번을 원하는 색감을 얻기 위해 붓을 움직여야 한다. 하나둘 쌓으며 그린 꽃송이마다 이런저런 어머니의 삶을 들여다본다. 다음에는 동백나무에 활짝 핀 동백꽃을 담으려 한다. 동백나무가 계절을 돌아 다시 꽃을 피우듯이 어머니의 밝고 건강한 모습을 다시금 볼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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