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은 분홍빛이다. 소설 <소나기>의 소녀가 입었던 분홍스웨터가 소년을 설레게 하고 소녀의 마지막을 함께 했듯, 그 마음을 표현한다면 사랑은 수줍은 분홍빛이다.
사랑이 내게 찾아왔다. 세상의 사랑은 첫사랑이다. 우연처럼 한눈에 반해버린 사랑이다. 꽃길을 하염없이 걷고 싶었다. 때로는 일하는 시간을 잠시 멈추게 하고, 잠자는 시간을 잊게 했다.
새벽의 기척에 귀 기울였다. 촉각을 곤두세워 오직 하나만 생각했다. 오감을 건드리며 마음에 울렁울렁 일기도 했다. 사랑은 흥분으로 마음이 가라앉지 아니하고 들떠서 두근거렸다. 때로는 말도 못 하는 불안과 초조이기도 했다. 나의 구애는 언젠가 영원한 동반자와의 동행이 될 것을 기대했다.
지금의 나를 하나의 색으로 표현한다면 분홍빛이다. 같은 분홍이어도 맑고 투명하며 선명한 분홍빛으로 마음 설레는 빛을 띠고 있다. 삶에서 가까운 분홍색을 떠올려보면 그것은 가장 행복한 순간과 이어진다.
나의 분홍빛의 시작은 진달래꽃이다. 어릴 적 봄이면 나무하는 아버지를 따라 산에 올랐다. 아버지의 지게가 채워질 때까지 나는 진달래꽃을 품에 안았다. 나는 누구보다 욕심이 많았다. 진달래꽃을 꺾을 때면 진달래나무에 하나씩 피어 있는 꽃보다는 꽃이 여러 개 달려 있는 꽃대만 골라 꺾었다. 내 눈에 가장 아름답고 풍성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살면서 무언가를 찾아 나서는 나의 또 다른 감각의 시작이었는지 모른다. 꽃대를 따라 정신없이 분홍빛에 물든 나비가 되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어디쯤 내가 보이지 않으면 나의 이름을 불렀다. 그런데 그 진달래꽃 빛이 요즘 내게로 왔다.
장롱 안에 오래전 구매해서 옷걸이에 걸어 두었던 분홍빛 원피스가 눈에 들어왔다. 처음 그것을 보았을 땐 한번 입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용기를 낼 수 없었다. 그대로 옷걸이에 걸려 나이를 먹고 있었다. 이제는 원피스를 꺼내 입을 때가 되었나 보다.
대상을 가리지 않는 무작위 선택의 무법자인 바이러스 앞에서 어찌 되었든 나는 피해 가리라. 하지만 오만의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다. 본의 아닌 반성의 시간을 갖고 타인을 위해 나의 자유로움에 잠시 휴식의 시간을 주었다. 공식화된 이유였기에 누구의 간섭도 없었지만, 아픈 밤이었다. 새벽은 덜 아프게 깨어나고, 낮은 그래도 조금 더 견딜 수 있었다. 밤이면 더 고통스러웠다. 모든 에너지가 숨 고르는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전달되지 않는 삶의 에너지로 모든 고통은 밤에 더 온 육신을 휘감아 들어오는지 모른다. 그를 만나러 가지 못할 것 같아 불안했다. 그래서 나는 분홍빛 장미를 캔버스 위에 그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나는 아픈 육체적 고통에서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 편한 마음을 찾을 수 있었다. 내 사랑처럼 그것은 아직 미완성이다.
장미꽃을 스케치하고 원하는 분홍빛 색감을 고른다. 파렛트 위에 나이프로 여러 색을 만들어 본다. 물감에 있는 색은 분홍빛이어도 내가 원하는 색상은 아니다. 그래서 빨강에 흰색을 더하고, 노란색도 조금 더해본다. 빨강에 흰색을 더하고 파랑을 섞어 보기도 한다.
같은 색을 더하고 가감하는 것에 따라 또 다른 분홍색이다. 꽃잎을 덧칠하고 캔버스를 채워 나간다. 활짝 핀 장미꽃과 숨어 있는 봉우리가 분홍빛으로 물든다. 그것은 내가 그에게 받는 징표에 대한 나에게 주는 선물이다. 지금 나의 비밀을 공유해 줄 누군가가 필요하기도 하다. 누군가 흉을 본다 한들 어떠하랴. 내가 하고 있으니 로맨스이다.
사랑한다는 건 지키고 지켜보는 것이라 했던가. 세상의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었다. 그러나 사랑하고 있는 내가 변해 가고 있다. 지금은 그냥 사랑하면 된다.
사랑에 빠진 여인 하나 캔버스에서 분홍빛 꽃잎을 입고 홍조를 띠며 웃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