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에 가렸던 맑은 햇빛이 초겨울 들판을 비춘다. 추수를 끝낸 논은 마치 하얀 마시멜로를 던져 놓은 것 같이 곤포들이 빛난다. 볏단을 세워 놓거나 쌓아 놓은 볏가리는 보이지도 않는다. 문득 어릴 적 고향의 논과 밭의 풍경을 떠올린다. 작두에 잘게 썬 소여 물로 볏짚이 물컹하게 끓어오르고, 아궁이로 타들어 가던 장작의 매캐한 연기가 뒤섞여 코끝으로 달려온다.
모네의 건초더미 그림은 낯설지 않다. 연작으로 그려진 작품들을 인터넷으로 접할 때면 왠지 모를 포근함과 편안함을 느낀다.
모네는 “중요한 것은 어디에나 있다. “라고 했다. 그가 본 것은 단순히 쌓여 있는 건초더미만은 아니었다. 그 위로 쏟아지는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대기와 빛, 그리고 계절의 변화에 따라 시시때때로 다른 풍경이었다. “색은 온종일 나를 집착하게 하고, 즐겁게 하고, 그리고 고통스럽게 한다.”라고 모네가 얘기했듯, 인상주의 화풍을 이끌었던 모네의 평생의 몰입은 빛을 읽어내는 것이었다. 그는 들판의 들풀들과 나무와 하늘의 구름조차 다른 순간들을 사진기가 앵글의 프레임에 포착해 놓은 듯 그대로 캔버스에 담았다.
어떤 대상을 그보다 더 세심하게 바라볼 수 있는 것인가? 모네는 건초더미 앞에 여러 개의 캔버스를 나란히 세워두고 변하는 여러 작품을 그렸다 한다. 그 건초더미 그림에 겹쳐진 아버지의 삶이 빛이 되어 건초더미 위로 쏟아진다. 그래서 사계절의 모네의 건초더미 그림과 내 아버지의 이야기를 함께 본다.
#아침, 봄
부드럽고 따뜻하게 쏟아지는 옅은 색감은 봄의 간지러움과 흩어져 피어나는 꽃들로 아지랑이처럼 피어난다. 이제 생동감 있는 대지의 숨결과 호흡을 감지하고 또 다른 생명들을 움트게 한다. 싱그럽고 온화한 빛을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하루갈이의 밭이었다. 그것은 쉽게 결정해서 시작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땅 힘이 부족하여 밭농사 짓기도 힘든 땅이었다. 아버지는 척박한 밭에 밭벼를 심었다. 땅에 대한 믿음이었고, 집중과 의지였다.
#점심, 여름
눈이 시리도록 쏟아지는 햇살 아래 그림자와 함께 거친 붓질에 쏟아지는 퍼플, 오렌지, 블루. 여러 가지 색이 대담한 빛의 강렬함 속에 먼 산과 하늘을 배경으로 건초더미 위로 익어간다. 때론 지나간 폭풍의 밤으로 그 햇살은 더욱 영롱하게 빛났을 것이다.
“볍씨를 뿌려 거둘 때까지 농부의 손은 여든여덟 번 거쳐야 쌀 한 톨이 생산된다.”라고 했던가. 논에 심는 벼도 아닌 밭벼를 심었던 아버지는 얼마나 더 많은 고단한 정성을 들였을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구릿빛 육체로 흘러내리는 땀방울들을 먹고 자라는 벼가 튼실한 뿌리를 내린다.
#저녁, 가을
화려한 향기를 머금은 하늘은 불그레한 불꽃으로 건초더미 사이로 쏟아져 들어온다. 불꽃은 그림자와 만나 보랏빛으로 창백해진다. 붉음과 밝음이 누런 풀들을 잎에 물고 타들어 가는 노을을 감상한다.
“농부는 추수하기 전 그 끝을 바라보지 않는다.”라고 했던가. 그러나 그 고단함을 잊게 해 주는 결실 앞에서 어찌 황금빛으로 출렁이는 밭의 작물을 바라보지 않을 수 있을까. 노동에 지친 허리를 펴고 바람에 땀을 식힌다. 내 아버지가 한 해의 농사를 끝내고 쌓아 놓고 바라보았을 볏가리가 풍요롭다.
#그리고 겨울
빛은 거의 잿빛으로 가라앉는다. 그림자도 숨어버린 건조한 대지 위로 울퉁한 골을 덮은 새하얀 잔해가 건초더미 위로도 내렸다. 쉽게 녹을 눈은 아니다. 멀리 산조차 적막한 계절을 지나려 삭막한 바람 속에 외로워 보인다. 나무들도 벌거벗은 몸을 서로 도열하여 건초더미의 배경이 되어 준다. 그러나 그 안에도 꿈틀거리는 생명의 움직임은 계속되고 있으리라.
아버지가 쌓은 볏가리도 내려앉은 하얀 눈을 덮고 있었다. 그해 겨울은 어느 해보다 모든 것이 풍족했다. 추수가 끝난 쌀가마니를 베고 누운 아버지의 겨울은 돌아오는 봄을 기다리고 있었다.
쌀 열 가마로 장만한 마을에 유일한 텔레비전이 세탁소 방으로 들어왔다. 전기가 마을의 어둠을 밝히는 빛이 되었다면, 아버지의 선택은 가난의 그림자를 지우고, 그 빛을 좀 더 삶에 들여놓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빛은 내 마을을 깨어나게 한다. 아버지의 시간을 지나 내게 전달된다. 나는 아버지의 넓은 밭에 심은 벼였고, 볏가리로 쌓여서 아직도 시간에 따라 변하는 빛과 함께하고 있다. 아침이슬과 바람과 뜨거운 태양, 그리고 저녁노을에 젖어들어 어둠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등불을 걸고 있다. 때때로 나는 시간 속에 빛을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