넬라 판타지아

by 누리숲

오후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로 판초 우의 안쪽까지 빗물이 스며들었다. 등산화도 스며든 빗물로 흥건했다. 젖은 등산 양말을 숙소 화장실에서 쥐어짜니 '후드득' 하며 꽤나 빗물이 흘러나왔다. 양말뿐 아니라 기모 등산바지며 패딩 파카까지 축축했다. 2월 말, 분명 오전에는 맑고 화창한 봄날이었다. 그런데 오후 4시경부터 1시간 동안 맞은 폭우로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돼버렸다. 다행인 건 올레 4코스 종점에 안내소가 있어 잠시 비를 피하며 택시를 기다릴 수 있었다는 것이랄까... 저녁을 먹으러 나가기 전 젖은 옷을 갈아입고 샤워도 했는데, 몸이 으슬으슬 떨리기 시작했다. 거의 20km에 이르는 올레 4코스를 비를 맞고 걸었더니 몸은 파김치가 되었다. 양쪽 새끼발가락은 다시 물집이 잡혔고, 발목과 무릎은 걸을 때마다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은 통증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박 선생님의 전화였다. 스케줄이 조정되어 내일 함께 걸어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자원봉사자가 없어 막막했는데 다행이었다. 올레 안내사로 근무해서 시간을 내기 쉽지 않으셨지만, 자원봉사자가 없어 못 걷는다는 내 상황을 듣고 근무 일정을 조정하셨다고 했다. 선생님은 내게 몸이 괜찮은지 물어오셨다. 벌써 6일째 약 100km를 걷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오늘 비를 쫄딱 맞고 걸었다는 내 이야기를 듣고 걱정을 해주셨다. 순간 힘들다는 말을 할 뻔했다. 하지만 나는 쾌활한 목소리로 우중 올레가 체질인 것 같다고 호기롭게 대답을 했다. 내일도 비 올 확률은 70%인데...

누군가 내게 시각장애인이 왜 혼자 와서 제주올레를 걷느냐고 묻는다면, 너무 뻔한 답을 할 수밖에 없다. 아름다운 제주를 느끼며 걷고 싶은데 같이 올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아내와 아이는 모두 직장과 학교에 매여 있는 데다가 걷는 것을 끔찍이도 싫어한다. 활동보조인은 이성인데다가 역시 걷는 것을 싫어한다. 난 써야 할 휴가 일수가 열흘이나 남아 있었다. 어쩌면 제주 올레를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완주해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싶은 욕심도 한몫을 하고 있을 것이다. 암튼 시각장애인인 내가 혼자 와서 제주 올레를 걷기 위해 자원봉사자 연결은 필수적인데, 박 선생님이 내 상황을 알고 스케줄을 조정해 주셨다니 현재 내 몸의 아우성은 진통제에게 맡겨도 될 것 같았다. 만약 내가 몸 상태가 안 좋다고 선생님께 말해 '다음에 걷자'라는 말이 나온다면... 비 오는 날 혼자서 하루 종일 숙소에 있을 텐데,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차라리 비를 맞고 올레를 걷는 '우중 올레'가 덜 고역일 것 같았다.

통화 중에 박 선생님은 오십견인지 어깨가 안 좋다며 짧은 코스 중 하나인 14-1코스를 역올레로 제안하셨다. 나는 잠시 망설였다. 총길이가 9.3km인 14-1코스는 저지예술정보화마을에서 시작하여 방목하는 말들을 직접 만져볼 수 있는 문도지오름을 올라갔다 내려오게 된다(2025년 현재 문도지오름은 사유지로서 관광객의 출입을 제한하고 있음). 동네 언덕 같은 이 오름은 바닥이 매우 미끄러운데 게걸음으로 조심스럽게 내려오다 보면 끝에 중간 스탬프가 있다. 이어진 저지 곶자왈은 백서향으로 유명한 곳이다. 작은 밀림 같은 곶자왈을 통과하고 나면 오설록 녹차밭이 나타난다. 이곳이 14-1코스 종점이다.

이 코스의 난이도는 '하'로서 완주 시간은 정안인 기준 3시간 내외이다. 대부분의 올레꾼이 역올레를 선호하는데, 시작점인 저지예술정보화마을에만 식당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정올레로 걸어 점심시간쯤에 코스 종점인 오설록 차 박물관에 가면 식당은 없고 커피숍만 있어 점심밥을 못 먹는 낭패를 당하기 쉽다. 올레꾼들은 이 코스에서 빨리 걷는 편인데, 코스 중간에 공용화장실이나 쉴 만한 커피숍이 없기 때문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코스 길이가 너무 짧아 거의 비슷한 길이인 10-1 가파도 코스와 연결하여 다음 올레행에 걸을까를 고민하고 있었다. 간신히 시간을 내서 온 제주 올레에서 조금 더 걷고 한 코스라도 더 스탬프를 찍어 가야겠다는 욕심이 나를 몰아대고 있었다. 하지만 어렵게 시간을 내주신 선생님의 몸 상태와 내 지친 몸 상태를 고려할 때 14-1코스를 선택하는 게 최선일 듯했다. 망설이던 마음을 얼른 내던져 버리고 선생님께 냉큼 '예'라고 대답을 했다. 드디어 올레꾼들에게 말로만 듣던 그 백서향 향기를 맡을 수 있는 기회가 내게도 온 것이다.

비 내리는 서귀포 시장거리로 나가 저녁밥을 먹고 돌아왔다. 오후보다 비가 더 심하게 내리고 있었다. 만약을 위해 준비해 온 파스를 바르고 진통제도 먹고 침대에 누웠다. 온몸이 덜덜 떨렸고 뼈마디가 욱신거렸다. 두꺼운 이불 속인데도 뼛속까지 한기가 뚫고 들어오는 것 같았다. 내 입에서는 '끙끙...' 하고 앓는 소리가 났다. 과연 내일 이 몸을 하고 빗속을 걸을 수 있을까 하는 염려로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가 박 선생님과의 인연이 떠올랐다. 제주 올레에 빠지게 되면서 나는 1년에 서너 차례 올레를 걷는다. 한 번 올 때마다 혼자서 거의 일주일씩을 걷고 가는데 이런 도전을 할 수 있도록 여러분들이 도움을 주셨고 박 선생님도 그중에 한 분이셨다. 사단법인 제주올레를 통해 소개받은 자원봉사자 박 선생님은 제주가 고향이지만 오랫동안 외국에 나가 살다가 은퇴하면서 고향인 제주로 돌아오신 분이다. 외국어가 능통하셔서 제주공항 올레 안내소에서 안내사로 일하고 계신다.

나와 처음 만났을 때 선생님께서 인사치레로 내게 던진 말이 본인에게 화근이 될지 어찌 알았으랴! 언제든 올레 걷고 싶으면 연락하라는 선생님의 말을 성실히 지킨 나는 매번 제주에 올 때마다 선생님께 함께 걸어달라고 연락을 드렸으니... 아마 박 선생님은 내가 이렇게 자주 그리고 길게 제주에 올 거란 생각은 하지 못하셨을 텐데, 참 감사하게도 올레에 간다고 연락을 드리면 선생님은 항상 반갑게 맞아주시며 시간을 내서 함께 걸어주신다. 내일 점심은 내가 맛있는 걸로 사야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어느새 나는 기절하듯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튿날 우리는 14-1코스 종점인 오설록 녹차밭에서 만나 역올레를 시작했다. 밤새 비가 내렸지만 아침이 되자 그쳤다. 언제라도 비가 내릴 듯 하늘은 흐렸고, 바람은 장대 같은 삼나무숲에서 내려와 물기 어린 초록 녹차밭을 '쓰싹~' 하며 빗질하듯 내달리고 있었다. 미로 같은 저지 곶자왈의 숲속을 박 선생님이 이끌며 앞서고, 내 뒤에서는 선생님의 지인이신 간세공방의 안 선생님이 살펴주며 따라오셨다. 숲의 가장자리에서 중심으로 들어갈수록 얼핏얼핏 하늘이 개며 조명이 켜지듯 햇살이 어둠들을 가르며 쏟아지고, 달콤한 백서향 향기가 바람을 타고 우리 곁을 너울대고 있었다. 1시간 남짓 백서향 향기에 취해 곶자왈을 걷다 보니 지금 이 순간 살아 있음이 좋았고, 살아 있다는 증거인 몸뚱아리의 통증도 오히려 뿌듯함이 되었다.

숨골로 이어진 곶자왈을 삼십 분 정도 더 걷다가 임도를 만났다. 우리는 오전 간식을 먹으며 쉬기 위해 곶자왈로 이어진 코스에서 벗어나 임도로 들어섰다. 맑게 갠 하늘 아래 오르막 진 임도가 펼쳐지고 길가에는 키 큰 침엽수들이 햇살과 함께 출렁거렸다. 바람결 따라 백서향 향기가 실개천 되어 우리 곁을 스치고 지나갔다. 임도의 한쪽 끝, 삼나무 그늘 아래에 자리를 펴고 앉아 준비해 온 간식을 꺼냈다. 박 선생님은 다기 잔과 보이차 그리고 견과류를 챙겨 오셨고, 안 선생님은 삶은 고구마와 계란을 꺼내셨으며, 부족하지만 나는 에너지바 몇 개를 슬쩍 이것들 위에 얹었다. 선생님들은 아침도 못 먹었을 테니 어서 먹으라며 계란과 고구마 껍질을 까서 내 손에 연신 쥐여주셨다. 그리고 고운 다기에 따라주신 향기롭고 따스한 보이차 한 잔... 지난 며칠간의 피곤이 차 향기에 실려 사라져갔다.

올레 이야기로 수다꽃을 피운 뒤, 안 선생님은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며 작은 스케치북과 수채화 물감이 담긴 팔레트를 꺼내 길가에 무더기로 핀 백서향을 그렸다. 그 옆에서 박 선생님은 여느 때처럼 영화 미션의 '넬라 판타지아'를 오카리나로 연주했다. 나는 눈을 감았다. 오카리나의 한 음 한 음들은 물기 어린 들풀 위에 고이더니 어느덧 파이프 오르간 기둥 같은 삼나무를 휘감고 올라가 맑은 휘파람새 소리와 함께 고요한 숲속에 퍼지기 시작했다. '사르락' 대며 길가에 핀 백서향을 바람이 흔들고 갔다. 문득 내 삶이 고통스러울 때 지금 이 순간을 위로로 기억하리라는 것을 나는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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