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헤어졌던 순간에는... 26화

약간 피폐한 로맨스 소설

by 맑고 투명한 날

"요즘 신입들 말이야. 어떻게 생각해?"

"자기주장이 강하고..."

"버릇없고 윗사람 공경 안 하고 자기 할 일도 제대로 하지도 못하면서 권리만 주장하고... 안 그래. 싸기지 없는 새끼들."

"..."


과장은 평소 맺힌 게 많았는지 내 말을 중간에 끊고 들어와 하고 싶은 말을 막 했다.


"자네처럼 눈치가 좋아야 하는데 말이야. 요즘 것들은 고생을 몰라서 그런지 너무 싹수가 없어."


과장은 계속해서 투덜거렸다.

세상이 변하고 있는데 과장은 그 변화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거 같다.

그러면 도태된다.


세상은 과장 같은 사람에게 따라오라고 하지 않는다.

자기가 알아서 시류를 읽고 거기에 맞추지 못하면 그냥 망가지고 쫓겨나는 거지.


"최대리만 해도 내가 지하 주차장에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잖아."

"아니... 어떻게 그걸 아세요?"

"내가 모르는 게 어디 있어. 다 알지."


과장은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원래 우리 팀원 중에서 최대리가 제일 먼저 회사에 오는 거 잘 알아. 그래도 내가 제일 먼저 온 걸로 해주려고 회사에 먼저 도착해도 차에서 내리지 않고 기다리잖아. 그런데 요즘 것들은 대리도 과장을 이렇게 생각하는데 완전히 빠져가지고 출근 시간 2 ~ 3분 전에야 겨우 천천히 기어 들어오니... 어이구."

"..."

"그뿐이 아냐. 인사도 제대로 하는 놈 하나 없고. 일처리도 마음에 안 들고... 조금이라도 뭐라고 하면 두 눈 동그랗게 뜨고 일부러 그러는 건지 멍한 표정이나 짓고. 안 그래 최대리?"

"저야 뭐..."

"그게 다 고생을 안 해서 그래. 배가 불러서 그런 거라고. 그러니까 윗사람 알기를 개떡으로 아는 거야."


왜 과장이 오늘 나에게 함께 담배를 피우자고 했는지 알 거 같았다.


"내가 더러워도 우리 아들딸 때문에 이 거지 같은 회사를 그만두질 못해."


그러면서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보기 시작했다.


"우리 애들이야. 어때 잘 생기고 예쁘지?"

"시원시원하게 생겼네요."


그냥 형식적인 말인데 그 말에 과장은 무척 기뻐했다.


"그래서 말인데... 우리 딸 어때?"

"... 어떠냐니요?"


굉장히 뜬금없는 말이었다.


가뜩이나 지금 난 두 여자 사이에서 힘든데, 무슨 소개를 받나.

거기다 나에게 보여준 핸드폰 속 사진은 포토샵을 엄청 했는데도.

솔직히 별로 끌리는 외모가 아니다.


"요즘 딸 가진 부모가 제일 걱정을 많이 하는 게 뭐야. 바로 제대로 된 놈 찾아서 소중한 딸과 결혼시키는 거잖아... 그런데 요즘 다들 영 시원찮아서... 그런데 최대리면 아주 좋은 신랑감이지. 윗사람에게 깍듯하지. 대인관계 원만하지. 눈치 빠르지. 거기다 학벌도 좋고..."

"좋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야. 장난 아니고 진짜 생각 있으면 한 번 잘해보자고. 우리 애들이 지금 둘 다 지 엄마하고 미국에 있는데. 내가 잘 말해 놓을 테니까..."

"너무나 고마운 말씀인데요... 마음만 받겠습니다."

"허. 이 사람... 마음 바뀌면 말하라고. 알았지."

"예."


띠리리링...


그때 과장 핸드폰이 울렸다. 과장은 액정화면을 보더니 인상을 썼다.


"아직 업무 시작도 안 했는데 왜 날 찾고 지랄이야. 지랄은..."


아무리 편한 사이라도 여긴 분명 사회인데 과장은 말을 너무 막 했다.

그러니까 신입 사원들이 과장을 좋게 보지 않는 것이다.

그걸 자기만 모른다.

참 불쌍한 사람...


"나 먼저 사무실에 갈 테니까. 천천히 와."

"저도 금방 가겠습니다."

"천천히 와. 바람도 많이 쐬고."


그렇게 과장이 사라졌다.


딩동...


그때 핸드폰 알람이 울렸다.

인사과 고 대리였다.


[지금 어디야?]

[회사 옥상이지.]

[금방 갈 테니까 기다려.]

[그래.]


난 멀리 보이는 한강을 보았다.

한강 다리 위에는 수많은 차들이 달리고 있다.


조금만 있으면 본격적인 출근 시간이라 차는 엄청 막힐 것이다.

그걸 알면 나처럼 일찍 출발하면 되는데... 사람들은 그걸 멍청한 짓이라 생각한다.

일찍 출근한다고 돈을 더 주는 것도 아닌데 왜 그래야 하냐면서...

모르겠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 다른 거니까.

어떤 게 정답인지, 그건 자신이 가장 잘 아는 거다.


"여기 있었네."

"응."


인사과 고 대리는 오자마자 담배를 입에 물었다.


"입사 한지 얼마 안 된 신입들이 이번 달에만 6명이 그만두었어."

"방금 전 과장님이 그것 때문에 열변을 토했는데."

"김 과장이랑 같이 있었어?"

"응."


고 대리는 김 과장이란 말에 인상을 썼다.


"그분 아이들이 전부 미국에 있고 자긴 한국에 남아 기러기 아빠라고 하던데... 참 불쌍하네."

"뭐가 불쌍해. 다 자기 생각과 계획대로 사는 건데."


고 대리는 잠시 날 바라보았다.


"그 사람 조만간 잘린다."

"뭐?"


놀라운 말이다.

자긴 라인을 잘 타서 절대 잘릴 일이 없다고 장담하던 과장님인데.


"이번에 황이사 라인은 모두 내보내는 걸로 최고 윗선에서 결정 본 거 같아."

"황 이사라면... 회장님과 사돈일 텐데..."

"그래. 그런데 그 결혼한 자식들이 대판 싸웠나 봐."

"그런다고 황이사 라인을 정리해?"

"사내 정치에서 밀리면 다 그런 거지 뭐."

"무섭네..."


가뜩이나 이런 문제 말고도 신경 써야 할 게 많은 난데.

잘 다니고 있는 회사까지 대규모 숙청을 한다니...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아주 확실한 건 아닌데... 이번에 외국에서 관리자급으로 대규모 유입을 하려나 봐. 당연히 그 자리 만들려면 인사이동이 있어야 하고 회사에서 나갈 사람을 정해야 하니까. 황 이사 라인 정리도 그 연장선상에서 하는 거 같고 말이야."

"혹시 나도...?"


불안했다.

아버지나 엄마에게 경제적으로 손을 벌리지 않으려면 이 회사를 잘 다녀야 하는데.

앞으로 정리될 김 과장과 친한 모습을 보이면 재수 없게 나도 같이 정리될 수 있었으니까.


"그야 나도 잘 모르지. 위에서 하라면 하고 까라면 까는 건데."

"이런 젠장..."


나도 모르게 화가 확 올라온다.

평소 난 김 과장님과 잘 지내고 있었는데. 이게 이런 식으로 독이 될지는 몰랐다.


"너무 걱정 마. 과장급 이상 자리를 만들려고 하는 거니까. 큭큭큭."


고 대리는 내 반응이 재밌다는 듯 킥킥거렸다.


"그럼 다행인데... 김 과장님도 안 됐다. 기러기 아빠로 살면서... 맞다. 방금 전에 딸 사진까지 보여주면서 날 사위로 삼겠다고... 날 좋게 평가해 주셨는데..."

"큭큭큭... 그 사람은 아무한테나 자기 딸 사진을 보여주고 사위 삼겠다고 하는 사람이야."

"뭐?"

"나도 자기 사위 삼겠다고... 아니지 거래처로 만나는 사람한테도 다 그러는 거 같던데."


고 대리는 그 말 후 갑자기 정색을 하더니 내게 바짝 얼굴 대고 말했다.


"김 과장 조심해라. 앞에선 그런 식으로 하지만 뒤로는 네가 신입 사원들 잘 관리를 못해서 자기가 힘들다고... 너 업무 평점을 아주 형편없이 준 사람이니까."

"뭐라고?"

"신입 사원들이 김 과장 평가를 한 내용이, 회식을 강제로 하자고 하고 강압적으로 자기들을 대한다고... 맞다 꼰대 같다고 그러던데."

"그... 그랬어?"

"그래, 그러니까 그 사람 너무 걱정할 필요 없다는 거야. 어차피 다른 사람 뒤통수나 치고 꼰대 같은 짓만 했으니까. 황이사 라인이 아니어도 조만간 정리될 그런 사람이다 이거지. 그러니까 너나 잘해. 앞으로 올 윗사람과 합을 잘 맞추라고."


고 대리는 담배꽁초를 재떨이에 비벼 끄고는 출구로 천천히 걸어갔다.


"나 먼저 간다."

"그래."


뒤돌아서 손을 흔드는 고 대리.

아침부터 기분이 엄청 심란하다.


나도 모르게 담배를 또 입에 물었다.

사는 건 참... 힘들고 괴롭다.


띵...


그때 지소영 문자가 왔다.


[오빠, 결정은 했어?]


"후우..."


문자를 보며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온다.

정말이지 머리가 터질 것 같다.


신경 써야 할 것도 많고 결정해야 할 것도 많고.

하지만 그 결정을 잘못하면...

나의 어린 시절처럼 악몽이 시작되겠지.


[아니 아직...]


지소영에게 문자를 보내고 난 뒤.

차로 꽉 막힌 한강 다리를 바라보았다.


내 인생이나 한강 다리나 시원하게 뚫리는 날은 언제쯤일까...





27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