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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텔스 임원의 등장

마치 도깨비 같이 신출귀몰한 게 참 독특하네요(D-286)

'스텔스(Stealth)'는 사전적 의미로는 '은밀하다'를 뜻하는 영어 단어이며, 주로 적군의 다양한 탐지수단에 들키지 않는 군사 기술이라고 합니다.

갑자기 스텔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얼마 전 공석(空席)이던 사업부장 자리에 타 본부에서 임원이 내려왔는데, 어찌나 은밀하게 움직이는지 마치 '스텔스'와 같아서입니다.



벌써 3개월이 넘었는데 아직 제대로 얼굴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냥 식당에서 지나가다가 우연히 한번 봤습니다. 그것도 팀장과 실장과 함께 이야기를 하면서 지나가길래 먼발치에서 '아! 저 사람이 신임 사업부장이구나'하고 인지했을 뿐이지요.


직장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꽤 많은 임원들과 같이 일을 했습니다. 그중에는 외국인 임원도 있었고요.

보통은 새롭게 부임하게 되면 직원들을 한자리에 모은 후 간단히 자기 경력에 대한 소개(자랑?), 부임 후 소감과 향후 조직 운영에 대한 철학 등을 이야기합니다. 이는 회사의 최소 단위인 팀장이 부임해도 빼놓지 않고 하는 일종의 요식행위라고 할까요. 대면으로 하기 어려웠던 코로나 시절 때도 영상회의를 통해 했습니다.


저희 실도 본사 소속이지만 형편 상 본사와는 다소 떨어진 별도의 장소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담당 임원들도 자주 오기보다는 팀장과 실장을 본사로 부르는 편이지요. 그래도 조직을 맡고 있는 사업부장으로서는 최소한 일 년에 수회는 방문을 해서 직원들과 만나고, 업무 현황도 듣고, 식사도 하는 등 나름의 조직 관리를 위한 노력을 하기는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신임 사업부장의 스타일은 참 독특하긴 합니다.

저는 오늘 보면서 부임 후 처음 저희 사무실을 방문한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벌써 4번 정도 왔다고 합니다.

다만 조용히 와서 팀장과 실장하고 회의를 하고, 보고할 것이 있는 직원 1~2명한테 보고를 받은 후 본사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고 아주 조용하게 말이지요.


오늘도 오전 중에 팀장과 실장하고 회의를 하고, 식사는 구내식당에서 한 모양입니다.

팀장과 실장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을 보니, 아마 사업부장은 식사 후 바로 본사로 돌아간 것 같네요.



예전 조그마한 텃밭에 토마토를 심었는데, 열매가 잘 열리기 위해서는 곁순제거와 가지치기를 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만능 뿅 망치인 인터넷으로 내용을 숙지한 후 텃밭에 가서 곁순을 열심히 제거하고 있는데, 지나가시던 어르신 한 분이 저희를 보고 거꾸로 일을 한다고 꾸짖으시네요. 그러니까 토마토 열매가 열리는 본줄기를 자르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뭐 그래도 나중에 자잘한 토마토 열매가 잔뜩 열리기는 했는데, 인터넷으로 잘못된 지식을 습득한 경우 꼭 문제가 발생하더라고요.


혹시 신임 사업부장도 실에서 제공한 조직도를 통해, 직원들의 얼굴과 이름 그리고 업무에 대한 정보를 숙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네요. 저와 같이 인터넷으로 배운 잘못된 정보로 토마토 본줄기를 자르듯이, 직원을 서류로만 판단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 말입니다.


특히 우리와 같이 본사와 떨어진 곳에 있는 조직은 불이익을 많이 당했기 때문이지요.

얼굴을 보고 이야기하면서 얻는 정보와 남을 통해 들은 정보는 분명하게 차이가 나는데도, 단지 귀찮거나 번거롭다는 이유로 실천을 안 하는 경우를 많이 봤고, 그래서 실 평가에서 불이익도 당해 봤으니까요.



직원들 입장에서는 임원을 자주 만나는 것이 불편하기도 하고, 달갑지 않을 수가 있기는 합니다.

과거 사업부장이 사무실에 오면 실장과 팀장이 나가서 안내하고, 일일이 직원들과 인사시키는 등의 잡스러운 일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달가워하지 않는 직원들은 자리를 피하는 경우도 있었고요.


어쩌면 이번에 부임한 신임 스텔스 사업부장은 그러한 것을 알고 미리 대처한 것일 수도 있네요.

특히 전략부서에 오래 있었다고 하니 그런 상황을 더 잘 인지하고 있을 수도 있고요.


사람의 성격과 취향은 참 다양한 것 같습니다.

적극적으로 나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도깨비와 같이 소리소문 없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사람도 있으니 말입니다.


회사 생활은 하면 할수록 재미있는 일이 계속 생기는 것 같습니다.

마치 고구마 덩굴을 캐듯이 말입니다.


오늘도 펭귄의 짧디 짧은 다리로 달리고 달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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