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에 밟히는 모든 것들이 각자의 소리를 냅니다(D-289)
긴 인생을 살지는 않았지만 평안한 일상이 계속되면, 왠지 모를 불안한 감정이 생기곤 합니다.
은퇴 후 경제적인 문제, 은퇴 후 재취업에 대한 고민, 장인 장모님의 건강, 딸애의 안전한 출산, 아들의 결혼 등 어쩌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일을 항상 머릿속에 넣어 두고 있어서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점심식사
보통은 주말에 아내와 아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오늘은 아내가 약속이 있어 모처럼 아들과 단 둘이서 점심을 먹게 되었습니다.
식사하러 걸어가는 동안과 식사하는 내내 참 오랫동안 이야기를 했네요. 이왕이면 술 한잔하면서 이야기를 했으면 좋았겠지만, 아들이 술을 못 먹으니 그냥 맨 정신에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당연 화두는 아들의 직장 상황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아들 회사 내 문제가 기사에도 뜨고 하니, 지켜보는 부모입장에서는 마냥 궁금하고 답답하고 걱정도 됩니다. 어차피 시간이 해결을 해주겠지만, 좋은 쪽으로 잘 처리되었으면 하는 심정뿐이지요.
예전과 달리 시대가 바뀌다 보니, 부모라도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냥 오랜 시간 살아온 인생의 선배로서의 조언이라고 할 정도이지 결정은 오롯이 본인의 몫이니까요.
그래도 자신의 진로와 미래에 대한 생각이 확고한 편이라, 제가 걱정할 필요는 없고 믿어야겠지요.
나 홀로 산책
식사 후 아들은 회사 일이 있어서 집으로 향했고, 저는 혼자서 인근 공원으로 운동 겸 산책을 떠났습니다.
며칠 동안 미세먼지로 인해 외출이 어려웠는데, 모처럼 맑은 하늘을 보고 깨끗한 공기를 마시니 좋네요.
도로변 인도를 따라 한참을 올라가 공원에 도착하니, 부모랑 같이 온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뛰어다니는 모습이 보입니다. 잠시 공원 안내도를 보면 참 갈 곳이 많은 곳입니다.
한 겨울 내내 좁고 답답한 집 안에 웅크리고 있다가, 봄이 되니 개구리가 뛰어나오듯 아이들도 여기저기서 출몰합니다. 공원 내 놀이터 인근에는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 즐거운 웃음소리, 칭얼거리거나 울어대는 소리 등이 어우러져 정신이 없습니다.
이런 소리를 뒤로 하고 흙길을 혼자 걷고 있습니다.
가만히 걷다 보니 "사각사각" 흙길을 밟는 소리가 들립니다.
길 위에 있는 조그만 돌, 가는 모래, 떨어진 나뭇가지 등을 밟을 때마다 하나하나씩 들립니다.
재미있는 소리이기도 하고 일정한 리듬감이 있는 소리여서인지 듣고 있으니 마음이 편해지네요.
인생은 기복이 있습니다.
올라갈 때도 있고 내려올 때도 있고, 좋은 때도 있고 안 좋을 때도 있습니다.
좋을 때는 몰랐던 것을 안 좋아지면 꼭 깨닫게 되더라고요.
그때가 참 좋았다고요.
힘들고 맘이 답답할 때는 밖으로 나가 걸으면 좋겠습니다.
그냥 주변에서 들리는 잡다한 소리를 들으면서, 발 닿는 데로 힘이 있는 데로 걷다 보면, 어느덧 마음은 한결 가벼워집니다.
걷기는 나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이고, 책으로도 얻지 못하는 무언가를 가득 채워주며 버릴 것은 버리게 해 준다. - 임마누엘 칸트 -
오늘도 펭귄의 짧디 짧은 다리로 달리고 달리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