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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행복한 하루였습니다(신라호텔 파크뷰에서)

날씨, 장소, 음식, 모든 것이 완벽한 환갑이었습니다(D-261)

오늘은 저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환갑날입니다.

올해 들어오면서 '벌써 나이가 이렇게 되었구나, 환갑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특별하게 달라질 게 없는 그냥 돌아오는 또 하나의 생일이라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환갑(還甲)은 세는 나이로는 61살, 만 나이로는 60세 생일을 뜻하는 한국의 전통문화로, 회갑(回甲)이라고도 합니다. 예전 한국인의 평균 수명이 짧았기 때문에 환갑을 맞이하는 것은 장수를 의미하는 것으로 중요한 생일이었습니다. 하지만 2024년 기준으로 평균 수명이 여성은 87.2세, 남성은 81.32세라고 하니 옛날과 같이 환갑잔치는 거의 안 하는 분위기입니다.


그냥 저녁식사 하는 걸로

그러다 보니 그냥 가족과 함께 간단하게 저녁식사를 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얼마 전부터 종합검진이나 교육일정을 4월 11일로 잡으면, 자꾸 다른 날로 일정 바꾸라고 하길래 왜 그렇까 하는 생각은 했습니다. 저도 '미련 곰탱이'는 아니니 아마 이날 저녁식사를 할 계획이구나 하는 정도는 감을 잡았지요.


며칠 전 저녁식사 시간에 아내가 이야기를 하더군요.

아들 녀석이 저녁식사 장소로 신라호텔 뷔페를 예약했으니 금요일 퇴근 후 바로 호텔로 오라고 하네요.

"아니 뭐 하러 호텔 뷔페까지 잡았나? 거기 비싼데 아닌가?", "뭐 대단하다고, 그냥 생일인데"하니 아내가 저에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그냥 애들 하자는 데로 하고, 감사하게 생각하면 돼"라고 하네요.


긴 말을 하면 잔소리를 더 들을 것 같기도 하고, 나름 아들이 생각하고 준비한 일인데 그냥 고맙다는 생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처음 가보는 신라호텔

예전 팀·실장 보직에 있을 때는 매년 2~3회의 글로벌 행사 진행 및 참석을 위해, 서울 내 호텔 여러 곳을 다녀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신라호텔에서는 단 한 번의 행사도 없어서 이번이 처음 방문입니다.


금요일 유연근무를 이용하여 1시간 먼저 퇴근을 하면서 모처럼 서울 시내로 차를 몰고 올라갔습니다.

비록 미세먼지는 있었지만 날씨는 화창했고 포근한 봄날입니다.

가는 길도 별로 막히지도 않아서 천천히 양보할 것은 다 양보하면서 운전하니 서울도 운전할 만은 합니다.


한적한 한남대교를 넘어 한남동에 들어서니 대통령 공관 인근에 수많은 사람들과 방송 취재차량이 한 차선을 점령하고 있네요(이 날이 윤 前 대통령 관저 퇴거일입니다). 차 안에 있는 데로 이렇게 시끄러운데 바로 앞에 보이는 초등학교는 어떻게 수업을 들을 수 있을는지 궁금하기는 합니다.


이제 남산 장충단로를 따라 언덕을 오른 후 국립극장을 따라 내려가니 건너편에 신라호텔이 보입니다.

저녁식사 시간은 5시부터인데 주차를 하고 보니 4시 10분입니다.

아들에게 전화를 했더니 아직 오는 중이라고 하니 제가 한참 먼저 온 모양이네요.


주차장에서 가파른 언덕을 오른 후 호텔 쪽으로 걸어가다 보니, 영빈관이 보이고 그 옆으로 팔각정으로 가는 산책로가 보입니다. 아직 시간도 많이 남았으니 가볍게 산책을 하기로 하고 방향을 돌려 올라가 봤습니다.

뭐 어디를 가도 한 바퀴 둘러보는 게 저 나름의 습관이니 이번에도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행동입니다.

산책로는 완만한 나무 계단과 흙길로 조성이 되어 있어 걷기에는 참 좋았습니다.

[각도에 따라 달라 보이는 신라 호텔, 로비의 샹들리에]

올라가면서 계속 호텔을 쳐다보니 서있는 위치마다 호텔의 모습이 조금씩 바뀌네요.

한 20분 정도 걸으니 덥기도 하고 얼추 4시 40분이 넘어 슬슬 호텔 로비로 향했습니다.


호텔 로비에는 다소 어둡기는 한데 그럴만한 이유가 있더라고요.

로비 천장에서 조용히 바람에 흔들리며 매달려 있는 7m 너비의 초대형 샹들리에 때문인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그리 커 보이지 않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모든 방문자들이 인증사진을 찍는 것을 보니, 나름 신라 호텔의 시그니처(Signature)인 모양입니다.

이 샹들리에의 이름은 '조합체(An Aggregation) 130121'이라고 합니다. 박선기 작가가 제작했으며 연약한 투명 낚싯줄에 몸을 맡긴 5만여 개의 아크릴 비즈가 가볍게 움직이며 조명 빛을 반사합니다. 처음 신라 호텔 로비에 걸린 것은 2006년이었는데 2013년 호텔을 리뉴얼하면서 작품의 전체적인 모양도 약간 바뀌었다고 하네요. 작품 제목에 붙은 숫자 '130121'은 수정한 날짜라고 합니다.

로비를 한 바퀴 돌다 보니 뒤편에 오늘의 저녁식사 장소인 '더 파크뷰(The Parkview)'가 보입니다.

5시부터 오픈이라고 했는데 벌써 몇 사람들은 줄을 서있더라고요.


아직 시간도 있고 가족들도 도착을 안 해, 로비에 서서 사람들도 구경하고 그림도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로비 회전문으로 사위가 들어오는 게 보입니다.

가벼운 인사를 한 후 사위하고 만나 이런저런 회사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덧 4시 55분이 되었는데 아직도 가족들한테 연락이 없네요.


사위가 딸애한테 전화를 하니 이미 뷔페에 들어가 있다고 합니다.

로비에 계속 있었는데 지나가는 모습도 못 봤고 도착했으면 연락을 했을 텐데 왜 안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사위랑 뷔페 입구에서 예약을 확인하니 룸에 있다고 하네요.


미쳐 덜 마친 깜짝 준비

안내해 준 룸의 미닫이 문을 여니 이미 아내와 딸, 그리고 아들이 뭔가를 하다 말고 저를 쳐다봅니다.

뭐지? 하고 한번 사방을 둘러보니 한쪽 벽면에 저의 환갑을 축하하는 플래카드가 붙어있습니다.

그리고 여러 개의 풍선, 꽃다발 등이 어수선하게 식탁 위에 놓여 있네요.


딸애는 미쳐 준비가 안 되었는데 아빠가 왔다고 아쉬워하더라고요.

가족들은 뭔가 더 꾸민 후 저를 맞이하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는 것 같은데, 저는 이 상태로도 너무 기분이 좋았습니다.

완벽한 준비가 안 되어 있어도, 저를 생각하고 애를 쓴 자체가 고마울 따름이니까요.

저를 위해 딸애가 열심히 준비한 플래카드 앞에서 영원히 기억에 남을 사진도 찍었습니다.

[환갑 기념 플래카드 앞에서 인증사진]

이러고 나니 총 2시간의 식사 시간 중 약 20분 정도가 지났습니다.

이제 서울 3대 뷔페 중 하나인 신라호텔 파크뷰의 음식을 맛볼 시간입니다.


배부르게 잘 먹었습니다

음식의 가짓수는 생각보다 많지는 않았는데, 먹어 본 음식들의 맛은 상당한 수준이네요.

딸애는 맛있는 게 너무 많지만 먹으려고 해도 임신 중기인지라, 배가 나와서 먹기가 힘들다면 투덜대고 있습니다. 사위도 음식이 모두 맛있다고 하면서 특히 항정살이 독특하게 맛있다고 여러 번 먹더군요.

저하고 아내도 먹어봤는데 이게 항정살인가 할 정도로 맛도 좋았지만 식감도 매우 특이했습니다.


가족들 모두 고기가 맛있다고 해서 저도 먹어봤는데 특히 LA 갈비, 안심, 양갈비는 웬만한 호텔 레스토랑에서 주 메뉴로 내놓아도 될 정도의 수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저는 육류보다는 생선회를 좋아하는 편인데 생각 외로 회 종류가 많지는 않더라고요.

그게 좀 아쉬웠는데 그래도 게다리는 정말 맛있어서 여러 번 먹었습니다.


그리고 생일이라 특별히 호텔에서 와인을 무제한 제공을 해주었는데, 차가 있어 안 마시려고 했지만 오늘 같은 날은 마시라는 아내의 허락(?)이 있어 마지못한 척하며 좀 마셨습니다(나중에 알고 보니 아들이 가지고 있는 카드 중에 와인을 무제한 제공받는 혜택이 있다고 하네요).

제가 좋아하고 즐겨마시는 바디감이 있는 와인 종류가 아니지만, 약간의 단 맛이 있고 제법 입에 맞아서 4잔 정도는 마신 것 같네요.


'더 파크뷰'의 실내 모습이나 음식 사진 등은 전문적인 분(?)들이 많이 올린 것이 있으니, 저는 제가 먹었던 음식 중 일부만 넣어봤습니다.

[와인과 맛있는 음식 들]

식사 후 정리를 하고 나오니 제법 어두워졌습니다.

지금 보니 로비에 있는 샹들리에가 조용히 흔들리면서 반짝이는 아름다운 모습이 잘 보이네요.


대리운전기사분을 불러 딸 내를 먼저 보내고 우리는 주차장까지 잠시 걸어갔습니다.

걷다 보니 한옥 건물 스타일의 연회장인 '영빈관'이 보여 잠시 포즈를 취했네요.

[영빈관, 호텔 앞 분수, 로비 내 샹들리에]


집에서 마무리?

집에 도착한 후 짐을 정리하고, 이번에도 거실 한편에 플래카드를 붙이고 추억으로 남길 사진을 좀 더 찍었습니다. 그리고 아까 제대로 보지 못했던 축하 케이크, 꽃다발, 돈 부채 등을 잘 정리해서 한 컷 남겼고요.

좀 번거롭다는 한 생각도 있었지만, 그래도 이런 기회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니 사진으로 많이 남겨야 하지 않을까 하네요.

[받은 선물과 벽에 붙은 환갑 기념 플래카드]

거실에 붙인 '펭귄맨 환갑!'이라는 플래카드를 보니까, 밤에 화장실을 가려고 거실에 나오면 깜짝 놀랄 수도 있을 것 같기는 합니다. 가운데 제 얼굴이 크게 나와 있으니, 꼭 사이비 종교 집단의 교주 같네요. ^^



날이 좋았고, 장소도 좋았고, 음식도 좋았지만 가족들이 저를 위해 준비한 것이 정말 좋았습니다.

이렇게 준비해 준 것을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지금까지의 인생은 잘 살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은퇴 후 남은 인생도 즐겁고 보람 있게 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환갑이었지만, 정말 행복했고 완벽한 하루였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라는 말이 계속 머리 속을 맴도네요.




어찌하다 보니 이번 글이 '정년퇴직, 1년간의 소소한 이야기'의 30편째, 마지막 편이 되었습니다.

30편이 되면 더 이상 현재의 브런치북에는 넣을 수가 없다고 하네요.

그래서 현재의 브런치북의 제목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연관성이 느껴질 수 있도록 새로운 브런치북을 만들고 있습니다.


앞으로 남은 기간에도 계속 소소한 이야기를 쓰기 위해 다음 브런치북을 곧 시작하고자 합니다.

다음 편에 계속... To be continued...


오늘도 펭귄의 짧디 짧은 다리로 달리고 달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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