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퇴직하니 이전에 비해 좀 변한 것 같습니다(D-265)
처음 봤을 때부터 늘 느낀 것이지만 참 말 수도 적고 재미도 없고, 딱딱한 스타일의 입사 동기입니다.
원래 성격이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해병대를 갔다 왔다고 하니 이미지가 딱 부합하네요.
그래도 정이 깊은 친구라 제 결혼식에 선배차를 빌려와서 야외 촬영장소에 데려다주고, 다시 결혼식장으로 바래다주었지요. 그 와중에 뒤쪽에 따라오던 촬영 스태프 차가 빌려온 선배차의 뒤 범퍼를 받아, 범퍼가 파손되는 난처한 상황도 발생했던 기억도 있네요.
퇴직한 지 4개월째
작년 12월 중순에 정년퇴직을 축하하는 동기모임 이후 4개월 만에 만나는 것입니다.
그냥 전화해서 이런저런 안부를 묻다가, 한번 만날까 했더니 바로 O.K를 하네요.
장소를 선택하라고 했더니, 성남에서 광명까지? 굳이 이쪽으로 오겠다고 합니다.
하긴 정년퇴직자나 퇴직예정자나 시간이 없겠습니까? 가진 게 시간인데요.
그리 오래 만에 본 것도 아닌데 그래도 반갑더라고요.
조용한 전집에 앉아 삼합을 안주 삼아 막걸리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생겼던 일, 동기들의 근황, 퇴직 후 봉사활동 사항, 수입절벽에 대한 경험, 그리고 자식들 이야기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평소 이 친구 스타일이었다면 이렇게 한 곳에서 2시간이 넘도록 떠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냥 몇 마디 정도 하고 술 마시다가 헤어지곤 했는데, 퇴직 후 약간 변했다고 느껴지네요.
그런데 이야기를 하는 중 친구의 귀에 뭔가 끼워져 있어서 물어봤더니 '보청기'라고 하네요.
작년 말까지 전혀 보지 못했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물어봤습니다.
친구는 청력이 떨어진 것 같아서 병원에 갔더니, 심한 것은 아니나 계속 놔두면 더 안 좋아지니 바로 '보청기' 착용을 권유하더랍니다.
언제부터인가 아내와 아들이, 제가 말끝마다 "어?, 응?, 뭐?"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고 하네요.
그러고 보니 맞는 것 같은 게, 간혹 말을 정확하게 듣지 못하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병원에서는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러운 노화라고 했지만 저도 청력검사 시 왼쪽 귀는 정상인데, 오른쪽 귀는 고영역 주파수대에서 청력 손실이 있다고 합니다.
'보청기'는 한참 나이 드신 분들에게 해당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어느 틈에 벌써 저에게도 다가와 있었네요.
서글픈 미소
2시간 넘게 있었더니 좀 눈치도 보이고 해서 간단히 맥주 한잔 더하고 헤어지기로 했습니다.
대충 시간을 계산해 보니 얼추 4시간 동안 이야기를 한 것 같습니다.
버스정류장까지 걷다가 서로 가는 방향이 달라 잘 가라고 인사 후 헤어졌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가는 도중 친구로부터 문자 메시지가 날아왔습니다.
늦은 시간 덜컹거리는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의 문자를 쳐다보니 미소가 절로 나오더군요.
먼저 문자를 날리거나 답장을 잘 안 하던 친구가 저보다 먼저 문자를 보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불러줘서 고마워, 살펴가~~^^"이라는 살가운 표현을 33년만에 처음 썼네요.
나이가 들면 뇌의 감정적인 부분이 더 풍부해져서 눈물이 많아질 수 있다고 합니다.
제가 봐도 예전 같으면 별 것도 아닌 일인데, 요즘은 울컥하는 감정이 훨씬 많아졌더라고요.
지난 주말에 요즘 넷○○스에서 인기라는 '폭싹 속았수다'를 봤는데, 이때도 제법 눈물을 흘렸네요.
같은 날에 입사한 동기들이지만 나이차이가 있어서 먼저 나간 동기도 있고, 이제 나갈 사람도 있고, 아직도 시간이 좀 더 남은 친구도 있습니다.
'불사주야(不舍晝夜)'
공자가 흐르는 냇물을 보고 "가는 세월이 이와 같구나! 밤낮을 가리지 않고 앞으로 흘러가는구나"하고 탄식을 했다고 합니다.
사실 나이가 들어가는 시간을 누가 피할 수 있겠습니까.
제대로 살아보지 못한 것 같은데 벌써 정년퇴직할 때가 되었고, 머리는 백발이 되었네요.
하지만 무심히 흘러가는 세월을 탓하고 감상에만 빠져 있을 수는 없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정년퇴직 후 어떤 가치 있는 일을 할지에 대해 고민하고 꿈을 키워가야 할 것 같네요.
오늘도 펭귄의 짧디 짧은 다리로 달리고 달리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