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팀장 25, 치열하게 다툴 것인가 조용하게 즐길 것인가?
모두 본사 소속이지만 무척 다른 두 개의 팀이 있습니다.
A 팀은 기획과 업무 종합을 수행하는 사업부 내 핵심인 팀입니다.
B 팀은 실업무를 수행하는 사업부 내 변방인 팀입니다.
누가 더 중요한 일을 할까요?
A 팀은 경영층에 보고하기 위한 기획서를 만들고 있습니다.
실무자는 글로벌 현실의 분석 및 컨설팅 자료를 통해, 필드에 적합한 기획서를 작성합니다.
팀장은 좀 더 도전적이고 혁신적인 방안을 기획서에 담기를 원합니다.
실무자는 필드의 어려움과 불만을 이유로, 현실성에 기반한 기획서를 다시 만들었습니다.
팀장은 현실보다는 경영층의 눈높이에 맞춘 미래 지향적 방안이 넣어지길 원합니다.
실무자는 팀장의 의견을 반영한 기획서를 만들어 제출합니다.
팀장은 이를 경영층에 보고하여, 좋은 평가와 눈도장을 찍고 나옵니다.
경영층은 A 팀의 기획서를 보고 받으면서, "이제 곧 글로벌 Top으로 갈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합니다.
실무자는 이런 경험을 통해 어떤 기획서가 경영층 맞춤형 보고인지 알게 됩니다.
다음번에는 더 잘하리라고 다짐하고 노력한 결과, 보고서의 달인이 됩니다.
B팀은 실업무에 집중하느라 바쁘지만, 그래도 기획서를 만들어야 합니다.
실무자는 자신의 업무를 효율적으로 개선하고, 더 좋은 품질 확보 방안을 담은 보고서를 작성합니다.
팀장은 좀 더 도전적이고 혁신적인 방안을 보고서에 담기를 원합니다.
실무자는 자신의 일에 대해 경쟁사 수준 이상으로 달성할 수 있는 조금 무리한 방안을 보고서에 넣습니다.
팀장은 현실을 잘 알고 있어, 더 이상 높은 방안을 요구하지는 못합니다.
팀장은 이를 경영층에 보고하여, "수고했다"는 말을 듣고 나옵니다.
경영층은 B 팀의 보고서를 보고 받으면서, "알아서 잘하겠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실무자는 결재된 보고서에서 약속한 사항을 달성하기 위해 추가로 더 노력해야 합니다.
다시는 이렇게 '도끼로 내 발등을 찍는 일'은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업무 수행 방식은 다릅니다.
A 팀은 경영층 결재본을 필드에 공지하며, 이를 수행하라는 지시를 내립니다.
필드에서는 현실적이지 않다는 불만을 표출하며, 지시사항에 대해 소극적으로 대처합니다.
A 팀은 필드의 진척사항을 수시로 확인하고, 문제점을 경영층에 보고합니다.
필드에서는 마냥 버틸 수는 없으니, 구시렁대면서 하는 시늉이라도 내기 시작합니다.
A 팀의 관심과 확인은 어느 사이에 사그라듭니다.
필드에서도 본사의 칼끝이 무뎌짐을 느끼고 있습니다.
A 팀은 또 새로운 기획서를 작성하느라 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A 팀은 오늘보다 나은 보고, 내일보다 더 나은 보고를 위해 부지런히 새로운 보고서를 만들고 있습니다.
B 팀은 보고된 경영층 보고서를 기반으로, 일정별 상세 실천방안을 수립합니다.
실무자는 관련팀과 협의하여, 실행에 필요한 예산과 지원을 확보해야 합니다.
B 팀은 자신이 보고한 업무에 대해, 진척사항과 문제점을 경영층에 보고합니다.
실무자는 수립된 일정에 맞춰, 미흡하더라도 보고한 사항을 실행에 옮깁니다.
B 팀은 이렇게 실행한 결과를 경영층에 보고합니다.
경영층으로부터 "수고했다, 앞으로도 문제없도록 잘해라."라는 말을 듣습니다.
B 팀의 일은 오늘보다 나은 내일, 내일보다 더 나은 미래로 한 발짝 다가가고 있습니다.
동등한 무게를 갖는 조직일까요?
두 팀 모두 회사에 필요한 팀이라는 데는 이견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소속된 팀원들의 생각은 어떨까요?
저울에 올려놓은 두 팀의 가치라는 무게도 똑같다고 생각할까요?
두 팀 모두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부단하게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소속된 팀원들의 생각도 그럴까요?
노력의 결과가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회사의 이익에 일조한다고 생각할까요?
두 팀 모두 경영층으로부터 수고했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런데 말의 무게는 어느 팀에 더 쏠려있을까요?
보고 받은 내용 중 어떤 것이 기억에 남을까요?
세상은 공정하지도 않지만, 남과 비교하고 사는 것도 우리네 인생입니다.
그러다 보니 우월과 열등이라는 감정을 갖게 됩니다.
회사 생활은 철학을 논하는 곳이 아닙니다.
우월함은 곧 승자이고, 이는 더 많은 것을 가져갈 수 있는 기회를 갖습니다.
열등함은 곧 패자이고, 가질 수 있는 것도 뺏길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입니다.
승자는 자기보다 우월한 자를 보면 존경하고 배울 점을 찾고, 패자는 질투하고 그 사람의 갑옷에 구멍 난 곳이 없는지 찾으려 한다. by 탈무드.
그러니 아무리 좋은 명언도 현실 앞에서는 한낮 공허한 메아리로 느껴집니다.
직장 생활을 치열한 다툼 속에서 남보다 앞선 삶을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뒤 편에서 조용히 관망하며 즐기는 것이 좋을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승자이던 패자이던 자기가 만족하면 그게 최선일 수도 있고요.
오늘도 펭귄의 짧디 짧은 다리로 달리고 달리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