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갑'에서 오늘은 '을'이 되니 마음도 달라지네요
"협력사는 상생의 파트너이고, 그들의 품질이 곧 우리의 품질이자 자부심입니다."
갑의 위치에 있을 때, 저는 늘 이 말을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 말이 지닌 무게를 진심으로 헤아리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흔히들 협력사와의 관계를 '불가근불가원(不可近 不可遠, 너무 멀지도 않게 너무 가깝지도 않게 하라는 뜻)'이라 말합니다. 적당한 온기를 나누는 사이이지만 결코 흐트러지지 않도록 냉정한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말. 그것이 발주처(갑)와 계약 상대자(을) 사이를 가장 현명하게 잘 정리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협력사 입장에서 마주한 현실은 달랐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비즈니스 에티켓이었을 그 '거리'가, 누군가에게는 회사의 존립을 건 절박한 사투의 공간입니다. 특히 단 한 곳의 발주처(갑)에만 의존하는 업체라면, 그 거리는 더욱 아득하고 위태로운 절벽과도 같았을 것입니다.
지난날, 대기업 위치에서 조언이나 제언이라면서 툭툭 던지던 말이 협력사에는 어떤 어려움을 주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저 머릿속에서 생각나는 데로, 대기업 기준으로 업무에 대한 조언이랍시고 이야기를 꺼낸 것이었습니다. 대기업의 잣대로 중소기업의 현실을 무시하고 맘대로 재단한 것은 아니었는지, 이렇게 서있는 위치가 바뀌게 되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게 된 뼈아픈 진실입니다.
우물 안 개구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껏 대기업이라는 깊고 안전한 우물에 안주하고 있다, 드넓은 세상으로 나오고 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우물 안에서 누려온 안온함이 실은 얼마나 보잘것없는 우매함이었는지를.
부끄러움에 절로 얼굴이 붉어집니다. 잠시 사무실 밖을 내다보니 많은 직원들이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업무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할 터인데, 발주처의 황당한 제안에 대한 대응까지 감내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들의 노고에 새삼 머리가 숙여집니다.
지금이라도 이런 뒤늦은 깨닫음을 얻게 된 것에 깊이 감사합니다.
화려한 무대의 조명이 꺼진 뒤 시작된 이 두 번째 무대에서는, 관념적인 구호가 아닌 현실적이고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는 인간적인 마음으로 살아갈 것입니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위해 펭귄의 짧디 짧은 다리로 달리고 달리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