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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임원과 일해 보니...

한국인과 외국인 임원의 일하는 스타일

아주 우연한 기회에 실장 때, 외국인 임원과 3년 정도 함께 일한 적이 있는데 좀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사원부터 부장, 팀장과 실장까지 한국인 임원과 오랫동안 생활하면서 느껴보지 못한 것들이 많이 있더군요. 그중 몇 가지 차이점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장점과 단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점에 대한 것입니다.



한국의 많은 회사들이 글로벌 확장을 하면서, 외국인 임원들이 많이 늘어난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지극히 폐쇄적이고 군 스타일의 저희 회사의 경우도 새로운 도전의 개념으로, 외국인 임원이 대거 영입된 것을 보면 그렇습니다.

처음 본부 내 최고 수장을 유럽 출신의 외국인 임원에 앉히고, 바로 밑의 사업부장도 역시 유럽파 외국인 임원이 들어오니 멘붕에 빠졌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몇 개월 정도 해외 파견을 나갔던 경험이 전부인 제 입장에서는, 해외 주재원으로 보통 4년 이상을 지낸 다른 실장이나 팀장 들에 비해 영어로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왔습니다.

'미리 영어공부를 해놓을 걸, 기회가 있을 때 해외 주재원을 나갔다 왔어야 했는데, 이제 실장에서 내려가야 하나' 등등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에 맴돕니다. 하지만 이미 발생한 일이니 피할 수 없는 게 현실이네요. 제 한때의 모토가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인데 '피할 수도 없지만 즐길 수도 없는 상황'이 되었네요.

그런데 함께 일하면서 영어로 제 생각을 100% 전달 못하는 답답함은 있었지만, 의외로 업무를 수행하는 데는 편안하고 안정적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한국인 임원과 다른 점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기도 하고, 제가 만났던 외국인 임원이 좀 달라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외국인 임원과 일하는 게 더 합리적이고 효율적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한번 차이점을 보면 이렇습니다.


1. 존칭이 없습니다. 당연할 것은 같은데 그냥 이름으로 부르니 편하더군요. 카카오나 일부 기업에서는 오래전부터 직급이나 직책을 붙이지 않고 그냥 영어 이름(별칭)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 한국 기업에서는 성에 직급이나 직책을 꼭 붙여 사용하기 때문에, 간혹 승진을 했는데 과거의 직급이나 직책으로 부르는 실수가 이따금 있습니다. 한국인과 외국인 모두 영어 이름을 사용하니 실수할 일도 없지만, 회의 자리에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게 좋았습니다.


2. 편견이 없습니다. "○○은 누구의 줄(Line)이다", "○○는 어느 학교 또는 어느 지역 출신이다", "저 실은 별로 중요한 업무를 하는 곳이 아니다"와 같은 생각을 안 합니다. 그저 보고를 받으면서 느낀 사항을 가감 없이 평가에 반영합니다. 그래서 한국인 임원 시절에는 중요도가 떨어지는 조직은 열심히 보고를 해도 별반 관심이 없습니다. 외국인 임원은 보고를 받으면서 본인의 판단 하에 해당 업무가 중요한지 아닌지를 결정합니다. 그 조직이 중요한지 아닌지가 아니라, 업무의 중요성과 시급성에 대한 것에 포인트가 있는 것 같습니다.


3. 아집과 고집이 적습니다. 본인의 생각과 다른 의견을 내더라도 우선은 듣고자 합니다. 참석한 대부분의 팀/실장이 봤을 때 분명히 잘못된 생각을 말하는데도, 가능하면 당사자를 설득하려고 노력합니다. 물론 결국 설득이 안되면 본인이 알아서 결정을 하지만, 그래도 최대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서 놀라웠습니다. 과거에 경험을 비추어 봤을 때, 한국인 임원이었으면 아마 고성(또는 욕설)을 지르거나 당장 나가라고 했을 법합니다.


4. 권한을 확실하게 위임합니다. 본인이 승인한 일에 대해 실 단위에서 진행하는 일은 믿고 맡깁니다. 보고를 통해 진행사항을 확인하고 조언을 하거나, 추가 요청을 하는 경우는 있어도 '감 나와라 배 나와라'하는 일은 없습니다. 믿고 맡기기 때문에 더 열심히 일하는 분위기가 형성됩니다.


5. 최종 판단은 본인이 합니다. 연말이 되어 진급 사정을 할 때면, 제가 경험한 한국인 임원은 각 실장을 불러놓고 '진급자 중 누구는 꼭 진급시켜야 하는지', '진급자 리스트에서 누구를 위로 올릴 것인지, 아래로 내려놓을 것인지' 등을 마주 앉아서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다 보니 실장 사이에 다소 언짢은 말도 오가고, 불쾌한 일도 생기곤 합니다. 외국인 임원은 각 실장을 따로 만나서 '진급자의 역량이나 왜 진급이 되어야 하는지' 등을 실장을 통해 확인합니다. 절대로 실장들을 한 자리에 모아서 조율하게 하지 않더라고요. 본인이 각 실장들의 의견을 듣고, 이를 종합하여 최종 결정을 합니다. 결국 개인의 실적을 기반으로 진급자를 선정하니 공평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6. 지원 사격을 적절하게 합니다. 사장님이나 경영층에 보고할 일이 생겨서 외국인 임원하고 같이 보고를 들어가면, 중간에 끼어들지 않고 마지막에 추가로 본인의 의견을 피력합니다. 보고자가 착각하거나 말문이 막히는 경우에 한 해 나서서 추가 설명을 하는 정도입니다. 한국인 임원처럼 보고자가 보고를 하는 도중에 끼어들어 본인이 더 잘 아는 것 같이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없습니다.


7. 경영층과 쉽게 이야기를 나눕니다. 보고를 하다 보면 경영층에서 결정하거나 지원해야 할 일이 생깁니다. 이때 머뭇거리지 않고 바로 찾아가거나, 기회를 만들어 해당 사항에 대해 이야기를 합니다. 한국인 임원은 부담스러운 이야기일 경우 차일피일 미루던가, 아예 보고를 안 하고 본인만 알고 끝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무래도 다소 경직된 한국의 조직문화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한국 임원은 어려운 보고가 있으면 주말에 사적으로 골프를 치면서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골프는 비즈니스다'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8. 필기에 집중하지 않습니다. 깜짝 놀란 것이 회의를 해도 노트와 필기구를 가져오지 않습니다. 그냥 경청하며 궁금한 사항은 바로 물어보면서 해결해 나갑니다. 한 번은 궁금하기도 해서 "왜 메모할 것을 안 가지고 다니냐?"라고 물어보니까 "내용을 메모하면 상대방의 설명을 놓칠 수 있어서, 최대한 듣고 이해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아는 한국인 임원 한 분은 경영층이 하는 말의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메모한 후, 이를 직원들에게 메일로 전달하던데 정말 큰 차이가 있는 것 같네요.


9. 골프를 안 칩니다. 골프는 스코틀랜드가 그 기원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고, 유럽도 골프 인구는 계속 증가한다고 하던데 의외로 골프를 잘 안 칩니다. 회사에서 골프장 부킹 티켓, 식음료 티켓 등을 제공하면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더라고요. 골프보다는 테니스와 같은 운동(?)을 주로 합니다.


10. 와인을 좋아합니다. 당연하지만 와인을 즐겨 마시고, 선물로도 자주 줍니다. 덕분에 여러 차례 마실 기회가 있어서 나름 괜찮은 와인이 어떤 것인지 배우기는 했습니다. 한 번은 한국 와인을 답례품으로 주었더니 좋아하더라고요. 그러고 보니 한국 와인이 해외 품평회에서 잇달아 좋은 점수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11. 가정적입니다. 한국 임원들은 주말이 더 바쁘다고 합니다. 경영층과 골프도 쳐야 하고 각종 모임이나 애경사에 참석을 하다 보면, 가정에 소홀할 수밖에 없습니다. 외국인 임원은 골프도 안치고, 정말로 빠질 수 없는 모임이 아닌 이상, 주말은 가족과 함께 보내는데 주로 한국의 핫한 곳을 찾아다니더라고요. 갔다 와서는 사진으로 주말에 갔던 곳을 보여주기도 하고, 다음에는 어디로 가면 좋을지 등을 물어보기도 합니다.



외국인 임원이 한국인 임원에 비해 더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능력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외국인 임원이 저와 같이 일했던 사람과 같은 스타일은 아닐 것입니다. 분명히 문제가 있는 사람도 있고, 훨씬 편엽 하고 형편없는 능력의 소유자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인 임원도 인간적으로나 업무적으로 모두 출중한 분도 계십니다.

다만, 제가 30년 간 한국인 임원과 지냈다 보니, 짧은 3년 간의 외국인 임원과의 생활이 더 마음에 와닿는 것 같아서 생각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오늘도 펭귄의 짧디 짧은 다리로 달리고 달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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