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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것부터 바로 잡아야 합니다

조직의 느슨함은 큰 문제로부터가 아니라 작은 것부터 시작됩니다

2년 간 남의 건물에서 더부살이와 셋방살이를 전전하다가, 어렵게 어렵게 현재의 사무실로 이전을 했습니다. 잊고 있었는데 현재의 장소로 이전한 게 벌써 9년째가 되어가네요. 서울·경기도 인근에 있는 회사 내 여유 공간을 수개월 간 찾아다니면서, 그래도 가장 만족스러운 곳이 현재의 장소입니다. 나름 직원들 출퇴근 거리와 사무실·작업장의 상태를 고려하여 결정한 곳이지요.

그러니까 이전 계획수립부터 보고, 장소 물색, 확보, 제반시설공사 및 장비설치 그리고 최종 이전까지 근 6개월 정도 소요가 된 것 같네요.



지금 돌이켜 봐도 참 힘들고 험난한 여정이었습니다.

사무실과 작업장 시설 및 장비의 설치 공사를 매일 같이 확인했습니다. 먼지가 풀풀 나는 공사 현장에서 한참을 지켜보기도 했고, 사무실 공사가 완료된 토요일 오후에 나와 배치는 잘 되었는지 눈으로 보고 다녔습니다. 이렇게 확인차 하도 돌아다녔더니 없던 탈장 증상도 생길 정도였으니까요.


이렇게 이전한 곳은 과거 사무실에 비해 훨씬 넓고 쾌적해서, 모두가 만족스럽게 여기는 곳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전한 후에도 우리만의 사무실과 작업장을 꾸미기 위해서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지만, 다들 흔쾌히 레이아웃 정리나 청소 등을 자발적으로 수행하였습니다.

이렇게 꾸며진 사무실과 작업장은 최고 경영층에게 각종 보고 및 시연회 등을 통해, 여러 차례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어디에 내봐도 손색없이 구축된 우리만의 공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사무실은 냉난방 시설도 열악했지만 건물 자체도 공장형으로 구축되어서, 흔히 말하는 '외풍(外風)'과 '웃풍'이 정말로 심했습니다. 제가 어렸을 적에 살던 집도 웃풍이 심해서 방안에 있던 물이 얼었을 정도였는데, 이전 사무실도 무릎에 담요를 덮어야만 겨우 추위를 견디면서 근무를 할 수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반대로 여름에는 너무 더워 개인 선풍기가 없으면 사무실에 앉아 있을 수가 없을 정도였지요.

그런데 지금 사무실은 시스템 에어컨을 통해 냉방과 난방이 다 되기도 하지만, 남향이라 그런지 따뜻한 햇살이 눈 부시도록 아름답게 들어오는 곳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눈에 자꾸만 거슬리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사무실과 회의실에 붙어 있는 벽시계입니다. 아날로그타입의 시계니까 조금씩 틀리는 것이야 이해할 수 있지만, 적게는 10분부터 많게는 3시간까지 틀리는 경우가 있었고, 심지어는 아예 하루에 2번은 꼭 맞는다는 멈춰있는 시계도 있었습니다.

시계.jpg [서로 다른 시간을 보여주는 시계들]

아주 소소한 것이지만 서서히 조직의 느슨함이 느껴지는 상징적 현상 중 하나로 느껴집니다. 예전 같으면 시간이 조금만 틀려도 누군가 나서서 배터리도 바꾸고 시간도 맞추곤 했는데...

왜 지금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방치하는 것일까요?



조직이 항상 긴장되어서 운영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느슨하게 풀어지기 시작한다고 판단이 되면, 조금이나마 잡아는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나중에 더 큰 문제로 커지지 않습니다.

큰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작은 사고가 여러 번 발생한다는 '하인리히의 법칙(Heinrich's law)' 또는 '1:29:300의 법칙'에 따르면, 어떤 대형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는 같은 원인으로 수십 차례의 경미한 사고와 수백 번의 징후가 반드시 나타난다고 합니다. 즉, 큰 재해와 작은 재해 그리고 사소한 사고의 발생 비율은 1:29:300이라는 것이지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수 자체가 아니라 큰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예방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도, 이를 수정하지 못했거나 무시했기 때문에 일어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실장에서 내려온 후 조용히 지낸 지 얼추 2년이 되었고, 어느덧 정년퇴직도 1년 남았습니다. 적극적으로 업무에 참여는 안 하지만 신규 프로젝트에 도움을 주는 정도, 그리고 가끔 시간이 되면 후배사원들 코칭도 하고 지내고 있습니다. 이런 저를 보고 제 동기 한 명이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합니다. 그냥 가만히 있는 게 도움이 되는 것이니, 눈에 거슬린다고 해도 나서지 말라는 것이지요.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일견 맞는 말이기는 해서 그냥 지켜보고 있기로 했습니다만, 자꾸 신경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네요.



단순히 시계 한 두 개의 시간이 안 맞는 것은 큰 문제는 아닙니다.

하지만 안 맞는 시계가 있고 이를 인지하고 있는 어느 누구도, 시간을 맞추기 위한 행동을 하거나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것이 신경 쓰입니다.

사소한 것조차 수정되지 않고 무시한다는 것은, 더 큰 문제에 대한 예방을 못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 조직을 현재와 같은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했던 것들이, 조금씩 무너져 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편이 아프네요.


오늘도 펭귄의 짧디 짧은 다리로 달리고 달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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