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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크리스마스 하루의 일과

아내와 단 둘이서 보낸 2024 크리스마스

결혼 31년 차인데 올해 크리스마스가 아내와 단 둘이서 보낸 첫 크리스마스인 것 같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결혼 한 바로 그해 12월 22일에 딸애가 태어났기 때문에, 아내와 단 둘이 보낸 적이 없는 셈입니다. 생각 없이 허겁지겁 살아온 세월을 뒤돌아 보니, 아내에게 잘해주지 못한 것이 많아서 미안한 생각이 듭니다



오늘따라 아들도 크리스마스이브부터 약속이 있어 나갔고, 오후 늦게야 들어온다고 하니 정말로 아내와 둘이서만 하루를 지내야 하네요.

그래도 아침부터 할 일이 있어서 심심하지 않은 크리스마스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9시부터 영화 관람이지만 8시가 좀 넘어서 집을 나섰습니다. 아들이 부탁한 물건을 당근 구매자에게 전달해줘야 해서입니다. 물건을 건넨 후 평소와는 다른 방향으로 영화관 쪽으로 갔는데, 생각보다 춥지 않아 걷기는 좋았습니다.


아내가 미리 예매한 영화는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인 '모아나 2'입니다. 좀 의외였습니다.

평소에 애니메이션을 좋아하지 않는 아내가 선택했다는 것은, 어지간히 볼 영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찍 도착하여 기다리면서 아내는 '모아나 1'에 대한 내용을 스마트폰으로 사전 학습(?)을 한다고 합니다. 그래야 '모아나 2'를 이해하면서 본다고요. 저는 1편을 봤으니 대충 내용은 알고 있습니다만, 아내가 좋아하는 스토리가 아닌 것은 확실합니다.



상영관 안으로 들어가니 아침 9시인데도 제법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습니다. 대부분 아이를 동반한 가족이나 연인들로 보이는데, 아마 우리가 가장 나이가 많은 듯해서 좀 신경이 쓰이네요. 그런데 앞으로는 이렇게 둘이서 영화를 볼 일이 많을 것 같으니 차츰 적응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드디어 영화가 시작합니다. 내용은 직접 관람하시거나 인터넷 서핑을 하시면 아실 것 같습니다만, 저는 '모아나 1'이 더 재미있었습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답게 춤과 노래가 많이 나오면서 초반부터 약간 지루하다고 느껴졌을 때, 살짝 아내 쪽을 봤는데 졸고 있습니다. 역시 저만 지루한 게 아닌 모양입니다. 디즈니 애니의 특유의 '권선징악과 정의 사회 구현'을 실현하고 영화는 막을 내렸습니다.

극 중 가장 기억이 나는 대사가 "항상 다른 길이 있다"입니다. 영어로 여러 번 들었는데 저는 "There's always another way"로 들었는데 맞는지는 모르겠네요.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항상 다른 길은 있다'라고 생각했는데, 영화에서도 나오니 가슴에 콕 박히더라고요.

이렇게 영화 한 편을 보고 나니 오전이 다 지나갔네요.



예나 지금이나 아침 영화를 보고 나면 점심시간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바로 아래층에 있는 뷔페 형식의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향했습니다. 원래는 아내가 VIP(?)라서 예약을 하고 가면 되는데 이미 예약이 모두 마감이 되었더라고요. 그런데 막상 가보니 바로 입장이 가능한 것으로 보아, 아마 크리스마스 대목이라 예약을 조기에 막은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느끼는 것 중 하나가 입맛이 별로 없다는 것이지요. 집밥이 지겨워져 막상 외식을 하려고 하면 '뭘 먹지? 어디로 가야지?' 하는 생각부터 합니다. 그래서 뷔페와 같은 곳이 먹고 싶은 것을 골라 먹을 수 있어 맘 편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뷔페에서 먹고 나오면 항상 후회를 합니다. 너무 많이 먹었다는 생각과 굳이 이 돈으로 여기를 왔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음식을 담으면서 한번 훑어보니 대부분 가족 단위이며, 우리 나이 또래가 있기는 한데 자식들 또는 손주들과 같이 온 것으로 보입니다.

그중에 눈에 띄는 한 사람이 있었는데, 헤드셋을 끼고 혼자서 식사하는 손님이네요. 우리 부부와 같이 둘이 온 경우도 드문데, 혼자 4인석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뷔페에서도 혼자 식사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였으면 합니다. 요즘 혼밥을 즐기는 젊은 층도 많지만, 나이 든 중장년 층에서도 혼밥을 즐기고자 하는 경향이 있으니까요. 혼자 4인석에 있는 모습이 좀 안쓰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대단한 멘털이라는 생각도 드네요.



이렇게 많은 양의 식사를 하면 혈당이 빠르게 상승하기도 하고, 오랜 시간 고혈당을 유지하기 때문에 식후운동은 필수입니다. 그래서 식사 후 인근에 있는 공원에서 걷다가 집에 가기로 했습니다. 해가 좀 비치니 온도도 오르고 바람도 안 부니 산책하기는 딱 좋은 날이네요. 한 시간 동안 운동을 하고 집으로 향하면서, 모처럼 아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제 정년이 1년 남았으니 정년 후 생활에 대한 걱정이 많은 나이입니다. 그래서 노후생활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습니다. 아내로부터 노후자금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참 고맙다는 생각을 합니다. 지금까지 제 월급을 잘 관리하고 불려놓아서, 풍족하지는 않지만 남은 여생을 살아가는데 지장이 없게 만들었으니 말입니다.



이렇게 2024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또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결혼 후 처음으로 아내와 단둘이서 지낸 크리스마스이지만, 앞으로는 자주 있을 것 같습니다.

벨지움에 있는 예전 업무 파트너에게 '보내준 선물에 대한 감사 인사와 가족 모두 건강하고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카톡'을 보내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하루가 참 짧습니다.

그냥 우두커니 있었을 때는 길게 느껴지지만, 막상 잠자리에 들 때면 참 짧은 하루라고 생각되네요.


오늘도 펭귄의 짧디 짧은 다리로 달리고 달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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